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자현 Oct 24. 2021

오후 4시, 문 닫으면 시작됩니다.

여기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일하고  있어요.

“여기 몇 시에 문 닫아?”

“고객님, 저희 영업시간은 오전 9시에서 4시까지 입니다.”

“그것밖에 안 해? 어제 내가 4시 조금 넘어서 왔더니 문 닫았더니만. 4시에 끝나고 좋네? 적게 일하고 많이 벌고. ”

“저희 직원들 출퇴근 시간은 8시 반부터 5시 반까지 법정 근로시간을 준수하고 있습니다. 시간 내서 방문하셨을 텐데 문이 닫혀있어서 속상하셨겠어요. 제가 최대한 빠르게 업무 처리하겠습니다”




또 시작이구만. 어렵게 시간 내서 찾아온 고객님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지만, 4시에 문 닫고 집에 간다는 오해는 속상하고 억울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업무량과 잦은 야근으로 힘듬을 토로하며 내가 부럽다 말할 때, 야근 없고 빨간 날은 다 쉬는 것이 좋다며 우리 회사에 입사하고 싶다던 대학 후배를 만날 때면 나도 모르게 억울함이 터져 나온다. 직장생활 어디든 다 똑같다. 어렵고 힘든 거. 그런 소문이 어디서 났는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아닙니다. 다 각자 나름의 고충이 있다. 세상의 중심에서 소리치고 싶다. 여기 이 건물 안에 업무에 찌든 사람들이 갇혀있어요. 꺼내 주세요 저부터요. 제발.  


오후 4시. 영업장 문을 닫으면 마감업무가 시작된다. 직원들이 각자 시재를 맞춰보고 이상이 없으면 모출납에게 시재를 넘긴다. 그럼 모출납 직원이 전체 금고의 시재 마감을 한다. 이상 없음을 확인한 현금을 금고에 보관하고 보안시스템을 작동시켜 금고문을 닫는다. 그 후 오늘 하루 동안 쌓인 서류를 정리하고 결재를 올린다. 보관할 수 없는  개인정보가 담긴 서류들은 그날 전량 파쇠 하여 정리한다. 그리고 각종 대행업무 서류는 (공과금, 타 금융기관 입금 수표, 공제 청약 업무) 스캔 후  마감, 정부기관의 금융정보조회 요청서 회신, 법원 판결문에 의한 후속 조치들을 완료한다. 그 후 고객관리 활동으로 그날 고객들을 대상으로 전화를 걸어 업무 확인을 하고 (고액 현금 출금이 이상이 없는지, 신규 가입한 고객들에게 감사의 인사 기타 등등), 내일 방문 예정인 고객들에게 확인 전화를 한다 (예적금 만기, 대출 연장 기간 등등). 여기까지 법정 근로시간 내에 완료한다면 야근은 면하겠지만 아직 남은 업무가 너무 많다. 그뿐인가 교육도 들어야 한다.


계속 바뀌는 정부 정책들과 금융 관련 교육은 끝이 없다. 누가 대학교를 졸업하면 시험 안 본다 했는가. 승진을 위한 시험도 시험이지만 업무수행 능력을 향산 시키기 위한 교육들은 점점 더 난이도가 높아진다. 자격증도 취득해야 하고 또 어렵게 얻은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 보수교육도 주기적으로 받는다. 그리고 금융기관들은 각 회사별로 직원 연수원이 따로 있는데 매년 입교하여 주기적으로 업무 관련 집중 교육을 받는다. 물론 시험을 통과해야 나올 수 있다. 산속에 있는 연수원에서 하루 종일 수업을 듣고 저녁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할 때면 가끔 서럽다. 언제까지 시험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회사에 들어가면 평생 편하게 살 줄 알았는데… 아 좋은 회사가 아닌가? 쉿.


다들 쉬는 줄 아는 주말에도 가끔 출근을 한다. 거짓말이 아니다. 혹시 새마을금고의 산악회나 봉사활동 동호회를 본 적이 있는가? 새마을금고와 회원들이 함께하는 각종 행사들은 사회공헌을 위한 좋은 활동이지만 이 역시 직원들의 업무량 증가의 원인이기도 하다. 행사 준비부터 진행 및 사후 관리도 직원들의 업무다. 그동안 산은 바라만 보고 살아왔는데 회사 조끼를 입으면 누구보다 빨리 정상에 올라간다. 

 

결재를 마친 실무책임자 전무님이 이사장님 결재를 받는 동안 남은 직원들이 회의실에 모여 교육을 받기로 한다. 대충 들었다고 하고 빨리 집에 가지 뭘 또 회의실에 모이라고 하냐… 짜증이 나지만 먹고살라면 참아야지. 앞에 놓인 교육자료나 보며 시간이나 때워야겠다. ‘ 감정노동자 보호법 의무교육 : 나의 감정 들여다 보기.’ 산업안전보건법에 의거한 감정노동자를 위한 법정 의무교육으로 일 년에 한 번 교육을 받는다. 교육 자료를 읽는데 많은 생각이 스쳐간다. 


고객응대를 하는 일은 즐거운 일도 많지만 힘든 일도 많다. 고객 서비스라는 말로 고객들의 요청에 모두 응해야 하지만 실상 현장에서는 힘든 경우가 많다. 각종 규제와 법에 위반하는 일은 고객이 원한다고 해서 할 수 없다. 나의 일은 분명 법에 의거하고 있고 규제가 존재한다. 입사 후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현장에서 고객들의 요청을 거절하는 일들이 많아졌고 또 거절로 마음 상한 고객들의 불평불만들을 들으며 점점 지쳐갔다. 고객과 법 규제 그 사이에 낀 새우처럼 등이 터지기 직전.  나는 지금 지쳐있는 것이 분명하다. 나의 마음을 살펴봐야겠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본 일기에 적힌 회사생활은 재밌고 행복한 일들이 더 많았다. 힘든 날도 있었지만 분명한 건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재밌고 행복한 일들이 더 많았다. 일기장엔 업무가 많아서 야근하는 것이 불만이지 않았다. 오히려 야근할 때 영업장 문을 닫고 옆자리에 앉은 선배들과 이야기도 많이 하고 업무지식을 배우는 시간이 많아 좋다고 적혀있었다. 업무 관련 교육도 즐거웠다. 연수원에서 만난 다른 지역 직원들과 친목도 쌓고 업무 관련 정보도 공유하며 즐겁게 공부했었다. 또 그렇게 공부해야 내가 좀 더 고객들에게 도움이 되는 직원이 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가끔 가는 주말 야유회도 재밌는 일들 중 하나였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 스스로 불행하다 생각했을까. 지쳐있는 나의 짜증은 늘어갔고 항상 표정을 잃은 체 고객응대를 했었었을 것이다. 이런 나의 마음을 고객들도 다른 직원들도 느꼈을 텐데… 정신이 번쩍 든다. 지금이라도 나의 마음을 돌아보고 예전의 밝은 나로 돌아가고 싶다. 교육자료에 적힌 스트레스 해소법을 읽어본다. ‘ 글을 쓴다…’ 좋은 생각이다. 글을 쓰자. 나의 글을 읽은 사람들이 금융창구를 방문했을 때 기다리는 것에 너무 짜증을 내지 않았으면 한다. 조금만 더 직원들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이곳엔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자 얼른 시작하자.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전 11화 달력은 일인당 한부씩 드려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