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에게 시리즈 열 두 번째 이야기
신념에게
어제는 비가 내리는 창밖을 보며 당신을 떠올렸습니다.
젖은 신발과 우산 손잡이 사이로,
문득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졌어요.
어릴 적엔 당신을 쉽게 찾았던 것 같습니다.
학교 끝나고 뛰놀던 놀이터에서,
"내가 꼭 해낼 거야"라고 다짐하던 그 목소리 속에
당신이 조용히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나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당신은 점점 흐릿해졌어요.
학창시절 책상 위에 쌓인 시험지,
출퇴근길 지하철의 무거운 공기,
그리고 "이게 맞나?"라는 질문들 사이에서
당신을 놓친 날들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늘 제 곁에 있더군요.
2023년 여름, 모든 걸 포기하고 싶던 밤.
무인양품 일기장에 "조금만 더..."라고 적던 손끝에서
당신이 다시 손을 내밀어 주셨던 것 같아요.
당신은 참 묘한 존재예요.
보이지 않는데 느껴지고,
잡히지 않는데 단단하고,
때로는 무겁게 저를 짓누르다가도
어느 순간엔 날아오를 수 있게 해주니까요.
처음엔 당신이 곧고 단단한 줄 알았어요.
부러지지 않는 강철 같은,
흔들리지 않는 벽돌 같은 존재로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당신은 곧아서 단단한 게 아니라 유연해서 단단하더군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비를 맞고도 꺾이지 않는 나뭇가지처럼,
삶의 굽이굽이를 따라 휘어질 줄 아는 당신이요.
가끔 당신을 의심할 때가 있어요.
"정말 이 길이 맞을까?"
"당신이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걸까?"
그럴 때면 창밖 나무들,
편하게 마시는 커피 등
오히려 진지하지만은 않고
행복한 느낌을 받는 순간
당신이 "기다려 봐"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당신 덕분에 알게 됐습니다.
삶이란 게 완벽한 답을 찾는 게 아니라,
당신을 붙잡고 한 발씩 내딛는 과정이라는 걸요.
실패해도, 넘어져도,
당신의 유연함이 있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걸요.
그러니까 부탁 하나만 할게요.
제가 흔들릴 때마다,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조용히 제 어깨를 두드려 주세요.
그 작은 신호만 있으면,
저는 또 당신을 믿고 걸어갈 테니까요.
고맙습니다, 신념.
당신이 제 안에 있어 줘서,
어제보다 조금 더 유연하지만 단단한 제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제 손을 놓지 말아 주세요.
2025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