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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게

만물에게 시리즈 열 한 번째 이야기

by 만물에게


눈에게


3월인 오늘도 눈이 꽤나 내렸습니다.


매년 만나는 당신이지만, 늘 볼 때마다 마음이 묘해집니다.


이번겨울은 당신을 좀 일찍 만났습니다.

2024년 11월에 당신을 듬뿍 담게 될 줄이야.


창문에 뿌옇게 김이 서린 그 순간, 당신은 소리 없이 세상 위로 내려앉았고.

당신이 내리는 소리는 다름 아닌 누군가가 내뱉는 “어,눈온다” 였죠.

하얀 숨결처럼 부드럽게, 마치 땅을 위로하듯이.


그리고 지금, 3월이 되었는데도 당신은 여전히 내 곁에 와서 조용히 인사를 건넵니다.

이제는 아마도 마지막 인사였을 겁니다.


지난 날 아이슬란드에서, 당신을 정말 많이 만났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설원 위로 당신이 전부인 세상을 만났어요.


바람이 당신을 데리고 이리저리 흩날릴 때, 나는 숨을 멈추고 당신을 바라봤습니다.

그곳의 당신은 더 자유로워 보였달까요.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채, 그냥 되고 싶은 대로 존재하더군요.

그 광활한 하얀 세상 속에서 우리는 한없이 작아졌고, 동시에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당신이 주는 고요함마저 마치 세상의 모든 소음을 삼켜버리는 마법 같았습니다.


당신은 왜 그렇게 조용히 내려오는 걸까요?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그 긴 여정 속에서, 왜 한 번도 소리를 내지 않고 말이에요.


당신이 쌓일 때면 세상이 숨을 죽이고, 바람이 불면 당신은 속삭이듯 흩어져버립니다.

흩어지는 침묵이 마음을 어루만집니다.


당신이 많이 내리던 날, 밖을 보는데 모든 게 하얗게 덮여 있더군요.


그 순간 시끄럽던 생각들, 어지럽던 감정들까지도 당신에게 덮여 잠잠해졌습니다.


궁금합니다.

혹시 당신은 저처럼 가끔 모든 걸 내려놓고 싶어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걸까요

아니면, 이 세상이 너무 떠들썩해서 잠시라도 쉬라고 당신의 몸을 던져주는 걸까요


당신이 쌓일 때마다 잠시 멈춰 서서 저를 돌아보곤 합니다.


하얀 입자들이 천천히 내려와 땅에 닿고, 또 쌓이고, 그러다 바람에 흩날립니다.

그 모습이 꼭 삶의 한 장면 같기도 해요


부드럽게 내려앉았다가도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는 당신을 보면서, 나도 가끔은 그렇게 가볍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지금보니,

차갑고, 부드럽고, 또 한없이 고요한 당신은, 어쩌면 제가 꿈꾸는 모습인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의 차가운 겉모습 속에 따뜻함이 숨겨져 있는 것처럼,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집니다.


이제 올해 연말의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동안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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