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와 유럽, 총 97일간의 여정
2023년 8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지 1년이 되던 때였다. 나의 사업 파트너인 내 동생과 친구는 몇 년 전부터 하던 다른 사업의 마침표를 찍고 우리 셋의 새 사업장에 몰두하려던 참이었다. 1년 동안 두 사업체를 동시에 운영하느라 둘 중 어디에도 제대로 몰두하지 못해 양쪽 사업장 모두에게 죄책감만이 씁쓸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몸뚱이는 셋인데 왜 두 개를 감당하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 됐었는데 이제는 하나에 몰두할 수 있겠지 하는 실낱 같은 희망이 보였다.
하지만 예상했던 희망은 실존하지 않았고 눈앞에 놓인 현실은 “힝 속았지?” 하며 더 어려운 난관과 함께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미팅을 하기 위해 만나면 허공을 바라보고 정적이 흐르는 시간이 잦아졌다. 수차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대화를 나눴지만 진전이 없었다. 우리 셋 모두에게 번아웃이 온 것이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저 우리가 부족한 거라고, 최선을 다 하지 않은 것이라고 스스로를 꾸짖고 괴롭혔다.
답답함과 좌절감이 어깨를 묵직하게 짓누르고 있던 참에 아무래도 쉼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마침표를 찍었으니 쉼표를 찍어 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다다랐다. 한 1-2주 정도 여행을 다녀오자고 마음먹었다. 이 소식을 제일 먼저 엄마에게 알렸다.
엄마는 여행이 삶이고 삶이 여행인 사람이다. 어디에 가도 현지인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현지 음식과 문화를 스폰지처럼 흡수하면서 농도 짙은 진액 같은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다. 한국에 있는 시간보다 해외에 있는 시간이 많은 엄마도 마침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때였다. 우리의 여행 소식에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반가워했다. 그리고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이 참에 온 가족이 함께 떠나는 건 어떻겠냐고. 나와 내 동생의 남편들도 함께 가자고. 그리고 최소 한 달 정도는 가야 한다고.
우리가 선망하는 여행가인 엄마를 따라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은 잿빛 같던 우리의 눈빛을 초롱초롱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길어야 2주를 생각했던 거지 한 달이나 사업장을 비워두고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2주는 귀여워도 한 달은 무책임한 거라는 생각에 사로 잡혔지만 우리 셋 모두 마음과 머리가 따로 놀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우리의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언제나 마음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니까. 가기로 결심한 이상 뒤도 돌아보지 말자고 되새기며 전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동을 거는데 남은 관문이 있었다. 바로 나와 내 동생의 남편들이었다. 둘 다 각자 일이 있는데 우리보다 현실적인 두 남자를 설득하는 단계가 필요했다. 설득의 숙제는 나와 내 동생이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외국인인 남편은 한국에 와서 어학당을 다니고 한국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 한창 한국 사회생활에 적응을 하던 중이었던 남편에게 훌쩍 떠나자는 말은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었다. 하지만 60대가 되신 부모님과 결혼한 자식들이 모두 함께 여행을 떠나는 기회는 다시 안 올 수도 있다는 생각과 가보지 못한 여행지에서 느끼고 배울 경험들 또한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남편과 몇 날 며칠 동안 대화하며 남편 또한 함께 떠나고 싶은 마음을 깨닫고 우리 인생의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치지 말자는 결심이 섰다. 동생 부부도 비슷한 절차를 밟고서 우리와 같은 결정을 들고 모이게 되었다.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일주일 정도의 시간 동안 이뤄 낸 결심이 모여 우리 여정의 스타트를 끊게 되었다.
그렇게 모이게 된 멤버는 엄마, 아빠, 엄마의 친구이자 여행 메이트인 이모, 동생 부부, 동생과 나의 비지니스 파트너인 친구, 남편과 나, 총 8명이 되었다. 여덟 명이 다 함께 모여 이 여행의 주최자이자 리더인 엄마의 브리핑을 들었다. 여행 루트를 짜다 보니 한 달은 너무 짧다고 했다. 엄마는 아무래도 두 달은 필요할 것 같으니 두 달은 어떻게 안 되겠니? 하며 물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도 우리에겐 큰 결심이 필요했는데 두 달이라니?
당혹스러웠지만 엄마와 이모가 함께 짠 여행 루트는 아주 매혹적이었다. 브리핑을 조금 듣다 보니 어느새 여행은 두 달로 확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엔 세 달은 가야 한다는 충격적인 발표가 있었다. 말도 안 되는 기간이었다. 자리를 비우는 기간이 늘어날수록 한국에 두고 갈 사업장을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엄마와 이모는 설득의 여왕들이다. 인생을 멋지게 살아온 엄마의 유혹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2주간 짧게 쉼표를 찍기 위해 떠나기로 했던 계획이 어느새 3개월의 여정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인생에 다신 없을 구성원이 모여 가장 오랜 기간 대장정을 떠나게 된 것이다.
18세기에 영국 귀족들이 자녀들을 유럽 대륙으로 장기간 여행을 보내는 문화가 있었는데 그 여정을 그랜드 투어라고 한다. 자국의 땅을 벗어나 다양한 문화와 예술, 역사를 배워 견해를 넓혀 오라는 영국 귀족의 혜안으로 훗날 본국의 번영을 책임지고 역사에 굵은 한 획을 그은 자녀들을 배출해 낸 멋진 유학 프로그램이다.
엄마는 이 여행의 타이틀을 ‘그랜드 투어’라고 명명했다. 우리가 이 여행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우리가 가진 팔레트를 다채롭게 채우길 바랐던 것이다. 국부론을 쓴 아담 스미스와 독어권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는 괴테도 다녀온 그랜드 투어를 나도 경험할 생각에 설렜다.
글에 제목이 없으면 사회적 사망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제목이 비로소 글이라는 작품에 존재를 부여한다는 뜻이다. 여행에도 타이틀이 생기니 그럴싸한 명분을 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랜드 투어’라는 역사 깊은 제목은 나에게 위로였다. 한국에 두고 떠나는 현실에 대한 죄책감을 쓸어 주는 빗자루 같은 위로. 대책 없이 떠나는 것 아니냐는 마음의 소리를 잠재워 준 귀마개 같은 위로.
외국인인 남편의 유럽 비자 신청부터 3개월간의 여행 루트, 그리고 무려 8명의 비행기표 티켓팅까지 모든 준비를 3주 만에 마치고, 9월 25일, 카자흐스탄으로 8인 대가족 여행의 첫 발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