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키르기스스탄
내 인생에서 최장 기간 떠나는 3개월의 여행을 앞둔 9월 24일. 이른 저녁에 시작한 배낭 준비는 남편과의 수다와 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끝이 날 줄 모르고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싱글벙글 치킨까지 뜯어가며 패킹 파티를 즐겼다.
25일 아침, 장기간 비울 집과 애틋한 작별 인사를 했다. 집을 떠나는데 나타난 흰나비 한 마리가 꼭 우리 집을 지켜줄 것만 같아 안심하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하나, 둘 공항에서 모여 두 명에서 다섯, 다섯에서 여덟이 되어 그랜드 투어 완전체가 되었다.
인천에서 알마티까지 7시간이 걸려 밤에 도착했다. 아직은 더운 한국의 9월과 달리 알마티의 공기는 초겨울 같이 찼다. 공항 앞 도로를 가득 채운 차들의 경적 소리가 시끌벅적하게 우리를 맞이했다. 로컬 앱으로 부른 택시 두 대를 타고 도시 외곽에 위치한 숙소에 도착했다. 늦은 밤이었지만 우리는 한 방에 모여 여행에 대한 설렘을 안주 삼아 맥주 한 캔씩 하며 첫날을 마무리했다.
나의 마지막 일과는 그랜드 투어 저널 쓰기였다. 노트를 펼쳐 첫 장을 채우는 즐거움을 느꼈다. 이 공책에 담길 앞으로의 이야기들을 상상하며 신나게 써내려 갔다. 계획부터 실행까지 모든 일을 맡은 엄마와 이모만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여행이다. 덕분에 다 큰 성인인 어른 아이들 다섯 명(동생 부부, 친구, 남편과 나)은 마음 편하게 따라다니면 된다는 게 정말 감사했다.
나에겐 유학 시절에 만난 카자흐스탄 친구들이 몇 명 있다.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고려인이라며 한국을 좋아하고 우리는 가족이라고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동, 서양의 매력이 섞인 외모는 이국적이면서 친근한 느낌을 준다. 같은 핏줄을 물려받은 얼굴에 비치는 나와 닮은 모습에 내적 친밀감을 느꼈다. 친구들이 한국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 것처럼 나도 한국인으로서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는 나라가 카자흐스탄이었다. 그래서 꼭 와보고 싶었던 이 나라에서 주어진 딱 하루의 시간은 소중했다.
설렘 가득 시작한 아침,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약간 쌀쌀해 걷기에 완벽한 날이었다. 외곽에 위치한 숙소에서 시내까지 한적한 공원과 마을을 지나며 도시 구석구석을 눈에 담았다. 내 마음이 주말 같아서였을까? 화요일이었는데 주말 같은 느긋함이 곳곳에 풍겼다.
유유히 걸어 알마티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인 그린 바자르에 도착했다. 2층에 지하까지, 처음 들어선 건물 뒤에 또 다른 건물까지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바자르다. 제철 과일은 뭐가 있는지, 현지 음식은 어떤 게 있는지 보느라 눈이 바쁘게 돌아갔다. 방금 전까지 느릿하게 돌렸던 고개는 2배속이 되었다. 인원이 많으니 살 수 있는 간식거리도 많아 사과, 포도, 복숭아, 치즈 등 양손 가득 샀다.
카자흐어로 알마는 사과, 알마티는 사과의 아버지, 또는 사과로 가득한 도시를 뜻 한다. 그러니 이곳 사과는 얼마나 맛있을까? 기대가 컸다. 시장 구경을 마치고 나와 바로 사과를 꺼냈다. 테니스 공보다 조금 작은 알마를 쥐고 한 입 베어 먹었다. 아삭아삭 했고 적당히 달달한 즙이 입안을 채웠다. 달콤하고 상큼했다. 겨울 붕어빵, 여름 팥빙수 부럽지 않은 최고의 간식이었다.
오후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스키장인 쉼불락 산에 갔다. 케이블카를 타고 노란 옷으로 갈아입는 중인 나무 숲 위를 올랐다. 분명 방금 전까지 가을이었는데 도착한 곳에는 여름 동안 녹지 않은 눈이 우리를 맞이했다. 슬러쉬처럼 시원한 설산과 황금빛으로 물든 나뭇잎이 겨울과 가을의 모습을 함께 선보였다.
두 계절의 경계에 선 아빠는 사위들과 마신 현지 예거마이스터 한 잔에 흐뭇하게 웃었다. 여자만 셋인 우리 네 가족에게 생긴 남자 멤버들은 아빠의 술잔을 채우고 적적함은 비워 주었다. 술 메이트가 생긴 아빠도 그런 아빠를 보는 나도 기뻤다.
우리 여행의 시작이자 알마티에서의 모든 게 처음이었던 날, 알차고 촘촘한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빈티지 감성의 거리는 평온했고 알마티의 알마는 달콤했다. 나와 닮은 사람들을 보고 사촌 집에 온 것 같아 마음도 편했다.
잠에서 깨면서 여행이 끝났다고 착각해 아쉬워하며 깼다. 이제 시작한 여행인데 벌써 끝을 예고편으로 봐버린 것이다. 내가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내든 끝이 날 땐 아쉽겠지. 그러니 최대한 후회가 남지 않게 즐겨야 한다는 다짐으로 새로운 날을 시작했다.
하루의 시간을 보내고 알마티를 떠나는 날. 카자흐스탄에서 육로로 국경을 넘어 키르기스스탄으로 넘어가는 여정이었다. 360도 사방이 뻥 뚫린 사막 위의 지평선, 저 멀리 나란히 줄지어 선 산맥을 지났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었나 싶은 구름에 둘러 쌓인 설산맥,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드넓은 초원, 자연이 뽐내는 멋을 만끽하며 달렸다. 사진작가인 남편의 셔터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나는 턱이 나갈 때까지 넋을 놓고 온 로드 트립이었다.
이 날 지나온 평야의 광활함은 가늠하기 어려운 스케일인데 지도를 보니 납득이 됐다. 총 247km였던 이동 거리는 서울에서 대구까지와 비슷하다. 이 경로를 지도에 그리면 우리나라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카자흐스탄 지도에 그려진 선은 발크하쉬 호수보다 짧다. 이렇게나 거대한 나라를 떠나는 게 많이 아쉬웠지만 새로운 나라에 대한 기대도 아주 컸다.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쉬케크 외곽에 있는 알라 아르차 국립공원으로 데이 트립을 떠났다. 비쉬케크 시내부터 이어지는 강의 이름을 딴 공원이다. 해발 4000m가 넘는 봉우리가 세 개나 있는 텐산(天山) 산맥의 북부에 위치한 알라 아르차. 공원 입구에 도착하자 해발 1500m의 찬 공기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첫 번째 한 일은 단체 스트레칭이었다. 구호에 맞게 발목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뒷다리 늘려 주고 앞 무릎 눌러주며 몸을 풀었다. 4일째 함께 식사하고 매일 붙어 있었지만 8명이 함께 한 스트레칭은 꼭 단합 대회 나갈 때처럼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해 주었다.
건강을 위해 맨발 걷기를 좋아하는 엄마, 아빠, 이모는 초입부터 신발을 벗어 알라 아르차의 땅을 온전히 맨살로 즐겼다. 나도, 아이들도, 하나둘씩 따라 벗었다. 지압과는 평생을 멀리 한 나는 걸음걸음마다 찌릿함을 느꼈다. 뒤뚱뒤뚱 어설프고 코믹하게 걸었다. 발란스를 잡기 위해 양팔을 벌려 안간힘을 쓰다 보니 어느새 춤사위를 선보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프다고 이마에 주름이 잡히는 게 아니라 웃겨서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간단한 점심을 위해 강 옆 잔디에 자리를 잡았다. 덕분에 고통의 댄스 타임은 금방 끝날 수 있었다. 엄마는 스카프와 손수건을 펼쳐 놓고 그 위에 빵, 과일, 초콜릿을 플레이팅 했다. 금세 파인 다이닝 부럽지 않은 피크닉 테이블이 차려졌다. 원대한 설산과 빙하수가 흐르는 강을 보며 즐긴 소풍이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The Broken Heart, 두 쪽으로 나뉜 심장처럼 생긴 바위였다. 바위까지의 길은 가파르고 멀었다. 이끼 덮인 바위 숲을 넘고 앞을 가로막는 가지를 헤치며 나아갔다. 네 발로 기어야 오를 수 있는 미끄러운 언덕도 넘어야 했다. 험준한 산행에 찬 숨만큼 머리는 비워졌다. 바위에 서서 내려다보니 올라온 길이 아득했다. 해발 2377m의 차가운 공기는 온탕에서 뺀 땀을 식혀주는 바깥공기처럼 시원하고 달가웠다.
바위까지의 산행은 그랜드 투어를 떠난 나의 여정과 닮았다. 네 발로든 두 발로든 넘을 수 없는 길은 없었듯이 어떤 변명도 이겨내고서야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오르기 전에는 까마득했던 길도 도착해서 내려다보니 작아 보인 것처럼 두고 올 수 없다고 생각한 현실도 와보니 그래 보였다. 정상에서 맞은 바람은 길을 오른 자만이 느낄 수 있듯 이 여행에서 맛볼 새로운 경험 또한 떠났기에 누릴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