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하게 울리는 알람. 짧은 숨을 내뱉고 다시 찾아온 아침을 맞이한다. 이불을 정리하고 어제 입었던 외투를 걸친다. 달그락, 자전거 고정대를 내리고 편의점에 출근하는 과정은 그저 적막할 뿐이다.
이이즈카는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너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할까? 왠지 자전거는 그녀에게 너무 크고 무겁고, 출근길로 향하는 다리는 지루하도록 길게 느껴졌다.
“나는 사람들을 짜증 나게 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아”
남을 탓하는 대신 스스로에게 실패자라는 꼬리표를 부착한 이이즈카는 진상 고객에게도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한다. 그리곤 그녀는 다시 1센티쯤 작아진다.
자신의 집 안에서조차 편안하게 웃을 수 없다. 퇴근 후에는 컵라면으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고, 멍하니 자리에 앉아있다. 예능 방송을 틀어놨지만 웃는 건 티브이 안 패널들 분이다.
엄마가 보내준 야채 소포는 집 한구석에 손도 대지 않은 채로 방치되어 있다. 아직 직장 생활을 하는 줄로만 아는 엄마와의 통화는 불편할 뿐이다. ”응응 잘 다니고 있지..“ 대충 대답 후 끊는 통화.
이이즈카는 옷장에 걸려있는 정장이 불편하다.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그 정장은 취직이 확정된 후 들뜬 마음에 구매했을 것이 분명하다. 아마 부모님과 함께 백화점에 가지 않았을까. 하지만 아래위 깔끔하게 차려입고 간 첫 직장에서는 혼나고 상처받던 순간들만 겹겹이 쌓였다. 순간순간의 아픔이 그녀 어깨 위로 가슴 위로 머리 위를 억눌렀으리라.
매일 지나치던 다리를 건너다 ‘나 하나 없어진다고 신경 쓰는 사람이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 그때. 그녀는 도망치듯 회사를 그만뒀다.
그러다 우연히 중학교 동창 오오토모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달그락, 같은 소리만 들리던 이이즈카의 삶에 점차 다른 소리를 입혀준다. 동구르르 볼링이 구르는 소리부터 짠 술잔이 마주치는 소리, 또 꺄르르-하는 자신의 웃음소리까지.
과거에 사로잡혀 있던 그녀가 일상의 소소함을, 그러니까 당장의 현재를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누구나 펼치고 싶지 않은 챕터가 있는 법이다. 상처받고 실패하고 넘어졌던 기억. 이이즈카는 사실 오오토모도, 함께 편의점에서 일하는 동료에게도 아픈 순간이 있던 것을 확인한다.
그들은 숨지 않고 자기의 삶을 꾹꾹 눌러 걸어가고 있다. 챕터를 끝내 넘기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그들은 이이즈카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책을 한 장 넘길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그리고 그 용기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다.
컵라면만 먹던 이이즈카가 엄마가 보내준 식재료로 요리에 도전하는 것이 참 반갑고 기특했다. 간장이 떨어진 줄 몰라 중간에 조림에서 카레로 노선을 변경해야 했지만.
아직 어설플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는데 예전만큼 두렵지 않다.
우리네 삶을 현미경으로 확대해 보는 것 같은 영화다. 우리 삶에는 돋보이는 부분을 비춰주는 스포트라이트도, 장면을 극대화하거나 아름답게 보여주는 배경음악도, 견뎌내야 하는 챕터를 빠르게 건너뛸 수 있는 기능도 없다.
그런 적막함과 공허함, 약간의 지겨움을 그대로 옮겨 담았다. 그래서 현실에 지쳐버린, 어쩌면 우리 모습을 닮은 주인공 이이즈카를 응원할 수밖에 없다.
오늘을 살아내면 되는 건데, 우리는 자꾸 어제를 흘깃거리고 내일을 걱정한다. ‘오늘’도 편히 숨 쉬며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이즈카와 함께 오오토모를 만나며 깨닫게 된다. 사실 별것 아닌 일이다. 직장을 그만둔 것도, 거기서 아픈 기억을 가지고 나온 것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내는 것도. 사실 모두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살아가고 있는 것, 살아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기특하다. 늘 스스로를 토닥거려야 한다. 이이즈카의 편의점 동료가 한 말처럼 말이다. “매일 아침 눈 떠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되게 기특하지 않아요?“
지금 당장 먹고 있는 아삭한 샐러드 맛을 음미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눈물 흘릴 만큼 웃어도 보고, 토독토독 빗소리에도 심취해 보며 오늘 하루를 온전히 살아가길 바란다. 나도, 지금 어딘가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너고 있을 이이즈카도. 아침에 눈 뜨면 '나'에게 보내는 칭찬도 잊지 말기.
원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0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