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먹는 복이 있는 편이다. 내 인생에 돈이 붙었던 적은 거의 없지만 먹을 걱정을 해본 적은 없다.
민박집에서 식사를 담당했던 일은 내 인생 가장 큰 먹을 복 중 하나였을 것이다. 설탕만 많이 넣으면 맛있다고 감탄하는 풍이 오빠와 입맛은 섬세하지만 요리하는 사람을 존중해주었던 양치 오빠, 그리고 다정한 몽슈 언니 덕에 나는 내가 먹고 싶은 걸로 식사를 준비할 수 있었다. 먹고 싶은 걸 사고 영수증을 내면 그만이었다. 먹고 탈이 나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재료도 좋은 걸 썼다. 부엌에 냉장고 하나, 마당에 커다란 냉동고가 하나 더 있었다. 식당이나 마찬가지였다.
파리 시내에서 한국 음식점을 운영하는 분이 사장님이어서 종종 식재료가 대량으로 들어왔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승합차를 타고 오빠들과 무채, 겉절이 같은 반찬을 가지러 음식점에 들르곤 했다. 하루 일과를 마친 후 양치 오빠나 풍이 오빠가 운전하는 승합차 옆좌석에 앉아서 반찬을 가지러 가는 시간은 무척 즐거웠다. 종종 파리 시내를 빙 돌아서 드라이브를 했다.
그리고 닭이 들어오는 날이 있었다. 생닭 몇십 마리가 잔뜩 들어오는 것이다. 오빠들은 그 날을 질색팔색 했다. 치킨 왕국 한국에서는 생닭도 말끔하게 손질되어 시중에 나오지만 프랑스는 그렇지 않았다. 제거되지 않은 털이 꽤 붙어있었고, 목부분도 길게 붙어있어 보기에 그로테스크했다. 닭이 들어오면 그 닭의 껍질을 홀딱 벗겨서 토막 낸 후 냉동 보관하는 작업을 했다.
주로 손님들이 없는 시간에 식탁에 모여서 했다. 목부분의 늘어진 닭껍질을 뒤집는 걸로 시작한다. 몸통을 한 손으로 단단히 잡고 살살 껍질을 잡아당긴다. 제대로만 하면 중간에 끊어짐 없이 한 번에 벗겨진다. 하지만 미끄덩해서 손에서 놓치기가 십상이다. 오빠들은 그로테스크한 모양도 그렇지만 미끄덩한 촉감에 진저리를 쳤다.
나는 첫날, 생닭이 쌓여있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으나, 껍질을 벗기는 일에 점점 빠져들었다. 나쁘지 않았다. 여태껏 보던 것과는 조금 다른 닭이었지만 껍질을 잡고 뒤집으면 다 똑같았다. 요령을 익히니 작업 속도가 빨라졌다.
"너 엄청 잘하네."
오빠들은 닭들과 한참 씨름했다.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흑기사라도 된냥 오빠들 것까지 열심히 껍질을 벗겼다. 막내라고 늘 챙겨주는 오빠들한테 도움이 되니까 기뻤다.
"나나야, 이걸로 뭐 만들 거야?"
우리가 매일 나누는 이야기는 오늘 저녁 뭐하지, 내일 아침 뭐하지 였다. 함께 먹을 것을 고민하고 요리하는 날들이었다. 일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다정함에 가까웠다. 요리를 할 때면 편안하고 천하무적이 된 기분이었다. 정성껏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는 이를 보면 마음이 충만해졌다. 민박집에서 요리를 하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깨달았다. 나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닭들은 차례차례 토막이 나서 냉동고로 들어갔다. 그것은 닭볶음탕, 닭갈비, 찜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