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마주친 로베르네 집 무슈

by 이유


파리에 두 번째 방문하면서 좋았던 것은 그리운 곳에 다시 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무프타 거리의 치즈가게 강아지는 같은 장소에서 꾸벅꾸벅 햇빛을 즐기고 있었고, 마레 지구의 건물 외벽에는 아케이드 그라피티가 여전히 앙증맞았다. 다시 방문하기까지 일 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체감으로는 몇 년은 더 되는 것 같았다. 그리움을 품은 대상은 사람이 아닌 장소였지만 파리가 나를 친구처럼 알아봐 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마비용(Mabillon) 역에서 가까운 곳에 세라팽이라는 레스토랑이 있었다. 합리적인 가격에 맛 좋은 프랑스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어서 자주 방문하던 곳이었다. 다시 파리에 온 기념으로 세라팽을 가기로 했다. 가장 좋아하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서 길을 나섰다. 민박집에 머무는 언니 두 명과 함께였다.

7호선을 타고 가다가 쥐시으(Jussieu) 역에서 10호선으로 갈아타는 길을 좋아했다. 내가 만난 지하철의 예술가 중, 그곳에서 연주하는 이들의 음악이 가장 멋졌다. 세라팽으로 가려면 그 길을 지나야했다. 검은 곱슬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오는 젊은 여성이 앉아서 노래를 불렀다. 나는 주머니가 가볍지만 예의를 표하려, 감동을 준 예술가 앞에 동전을 내려놓았다.

지하철을 나와서 레스토랑으로 향하는데 낯익은 사람이 저 앞에 걸어가고 있었다. 누더기 연미복에 탑 햇 까지 쓴 키가 큰 남자. 그는 바로 지난해, ‘로베르네 집‘에서 만난 예술가였다.

“무슈!”

나는 주저 없이 달려가서 점프하듯 어깨를 툭 쳐버렸다. 일단 그를 불러 세웠는데, 이름도 모르는 그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모자 장수 토끼처럼 연미복을 입고 어딘가로 바삐 걸어가던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나를 봤다. 내가 누군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동안 불어 공부를 열심히 했던 나는 불어를 총동원해서 우리의 만남을 설명했다. 작년, 여름, 로베르네집!

나의 횡설수설 불어를 듣더니 그의 얼굴이 이내 얼굴이 환해졌다. 아~! 하고 무언가를 기억하는 외마디를 냈다.

“여기서 이렇게 마주치다니, 이런 신기한 일도 있네요!”

나는 불어 회화 책에서 보고 외운 문장을 말했다. 이 문장을 써먹을 일이 생기다니, 신기해하면서.

다정하고 깍듯한 그의 태도는 여전했다. 나를 기억하지 못했을 지도 모르지만 반겨주고 안부를 물어봐 주어서 고마웠다.

“로베르네 집 소식 들었나요? 지금은 문을 닫은 상태예요. 다시 문을 열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다시 문을 활짝 열었지만, 당시 파리시의 퇴거 명령에 맞서던 로베르네 집은 문을 닫게 된 상태였다. 그는 슬픈 표정으로 그 내용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나의 불어 실력은 그다지 좋지 않아, 그가 덧붙인 더 긴 말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내가 못 알아듣는 걸 알아채고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만나서 정말 반갑다고 파리에서 좋은 시간 보내기를 바란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차렷 하더니. 오른손으로 우아한 곡선을 그려 모자를 벗으며 공들여서 무릎을 굽히고는

"마드모아젤."

하는 게 아닌가.

작별인사로구나. 순간, 저만치서 날 바라보는 언니들을 비롯하여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 모든 파리 풍경이 일시 정지한 듯했다. 엉뚱하지만 정중한 인사에 그만 뭉클하고 말았다. 파리가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장소가 멋진 신사를 통해 나에게 친밀하고도 따뜻하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나도 이런 인사를 영화에서 본 적이 있다. 꽃무늬 원피스 자락을 양 손에 잡고 무릎과 고개를 굽혀 인사했다.

"무슈"

살짝 눈물이 났다. 마치 오래 기다린 친구의 답장을, 우표가 붙어있는 손편지를 받은 것만 같았다. 파리로부터.

우리는 고개를 들고서는 "Au revoire"라고 말했다.

다신 못 볼 사람들처럼 아듀 (Adieu)라고 하지 않고, 내일이라도 다시 만날 사람들처럼 또 보자, 오 흐부와(Au revoire)라고 인사했다.

언니들이 놀란 눈을 하고서는 다가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희한한 사람을 붙잡아 세워놓고.”

“그 인사는 또 뭐고.”

나는 언니들에게 작년에 로베르네 집에서 만난 화가라고 설명했다. 이상하게도 가슴이 오래오래 콩콩 뛰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콩콩 뛰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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