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과 점심식사

by 이유

“오늘 내가 정말 맛있는 거 사줄게. 먹고 싶은 거 말해 봐.”

언니가 말했다. 5월의 파리였다. 우리는 4월에 만났다. 언니는 민박집에서 한달 동안 머문 손님이었다. 이제 언니가 떠날 때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둘만의 점심식사를 하자고 했다.


우리는 민박집 도미토리실에서 거의 한달 동안 함께 지내며 자연스레 친해졌다.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화, 옷 스타일이 비슷했고, 언니도 나도 책을 무척 좋아했다. 언니랑 있으면 나는 자주 웃었다. 거짓말처럼 아름다운 4월의 파리에서.

종종 함께 외출도 했다. 공원에 하릴없이 누워있기도 하고, 셰익스피어 서점에 가기도 했다. 생 마르텡 운하를 따라 걷고, 혼자서는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할 멋진 가게들을 용감하게 들어갔다.

20대를 살고 있던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잘 풀리지 않는 연애이야기,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 일하면서 겪었던 이야기, 그리고 꿈에 대하여. 언니는 꾸준히 글을 쓰고 있었다.

“나는 에세이를 쓰고 싶어.”

언니가 말했다.

“내 책을 낼 거야.”

그렇게 분명한 꿈을 가진 언니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부러웠다. 나의 꿈은 막연하다는 것을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깨달았다.

“나도 글을 쓰고 싶은데......”

언니에게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써야할지 잘 모르겠어요.”


언니와 함께하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 우리는 그동안 하지 못한 것을 하기로 했다. 파리에 여행 온 사람이라면 대부분 했을 일, 샤이요 궁에서 에펠탑을 보는 것이었다. 언니는 느긋하게 지내다 보니 떠날 때가 되도록 파리의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지 못했고, 나에게는 조금 다른 이유가 있었다. 제대로 에펠탑을 정면으로 보고, 그 앞에서 찍은 사진을 남긴다면 지금 파리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실감이 나서, 이 꿈이 깨질 것만 같았다. 다시 초라하고 불투명한 한국의 일상으로 순간 이동할 것만 같았다. 내가 파리에 있다는 사실이 꿈은 아닐까, 자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하늘이 또렷했던 그날 오후. 에펠탑을 보아도 꿈은 깨어지지 않았다. 여기는 정말 파리이고, 나는 ‘여기‘에 있었다. 나는 꿈속에 있는 게 아니라 내내 현실 속에 있었다. 이게 뭐라고 두려워했을까. 정면으로 보는 일을.

우리는 에펠탑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이제 슬슬 배가 고파져서 점심을 먹으러 가야했다. 하지만 먹고 싶은 걸 말하라니.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다. 예산을 얼마정도 생각해야 할지, 언니는 어떤 걸 먹고 싶을지, 마지막으로 둘이서 함께 먹는 점심인데 어느 동네에서 먹으면 좋을지. 나는 질문의 요점을 벗어난 것들을 잔뜩 고민하고 있었다. 언니는 내가 뭘 먹고 싶은지를 물었을 뿐인데.

나는 갈팡질팡하다가 눈에 띄는 작은 레스토랑을 가리키며, 여기가 좋겠다고 말했다.

언니는 의아한 눈으로 나를 봤다. 딱 봐도 손님이 없고, 맛 집 같아 보이지 않는 곳이었던 것이다. 메뉴를 보다가 언니가 말했다.

“여기서 먹고 싶은 거 맞아?”

그렇다고 말했다. 메뉴에서 두 번째로 저렴한 파스타와 가장 저렴한 샐러드를 주문했다.

음식이 나왔다. 향을 낸 기름에 요리 한 것도 아닌, 넙대대한 파스타가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아무런 소스도 없이)마치 면사리 추가 처럼 나왔고 레몬 한 조각이 덩그러니 접시 한편에 놓여있었다. 샐러드는 초록색 풀들만 수북했고, 소금, 식초, 올리브오일이 테이블 위에 무심히 비치되어 있었다. 딱 봐도 맛없는 한 상이었다. 파리에서 먹었던 가장 맛없는 식사였다. 맛없는 걸 찾기 힘든 그, 파리에서.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아무 맛이 나지 않는 파스타를 입안으로 구겨 넣었다. 푸성귀를 소금, 식초, 올리브 오일에 버무리고 있는데, 언니가 선물이라며 리본이 달린 것을 내밀었다.

독특한 질감의 종이로 만든 노트였다. 표지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상큼해지는 쨍한 핑크색이고, 속지는 다양한 색깔로 구성되어 있었다. 뭐라도 쓰고 싶게 만드는 노트였다.

“여기다가 글 많이많이 써. 글은 그냥 쓰면 돼.”

뭉클했다. 이제 파리에 언니 없이 있어야 하는 구나. 파리에 지내는 동안 익숙해지지 않는 일은 정든 사람들과 헤어지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맛없는 점심을 마지막으로 먹고 있다니! 배가 부르지도 않았다.

“그런데 말이야, 너는 왜 먹고 싶은 걸 사주겠다는 데 이러니?”

그러게 말이다. 나는 뭘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망설이고, 아끼는 것일까. 원하는 걸 말하는 일이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파리에 있는 동안 언니가 준 노트를 채워갔다. 일단 좋아하는 것을 적기 시작했다. 오래 간직하고 싶은 순간, 감정을 적었다. 그림도 그렸다. 글을 쓰기에 주춤하는 마음이 들면 언니가 해준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짐했다. 누가 맛있는 걸 사준다고 할 때는 정말 먹고싶은 걸 말하자.

자주 가는 서점에는 언니의 에세이가 벌써 여러 권이다. 나는 여전히 언니의 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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