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박집에 쌓여있는 책들을 정리하다가 다 찢어진 여행책자 하나를 펼쳤다. 민박집에는 손님들이 두고 간 여행 책들이 많았다. 그것들은 대부분 들고 다니기 편하게 분할 되어있거나, 알록달록 다양한 색깔의 펜으로 표시가 되어있었다. 몽파르나스 묘지에 브랑쿠시의 '키스'가 있다는 글을 발견했다.
브랑쿠시의 키스. 남녀가 두 팔로 서로를 꼭 끌어안고서 입술을 맞댄 조각상. 나는 그 단순하고 미련하리만치 하나가 된 연인을 직접 보고 싶었다.
브랑쿠시는 파리에 가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스물여덟의 브랑쿠시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를 떠나 파리로 향했다. 뮌헨에 다다르자 여비가 떨어졌다. 가난했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파리까지 걸어가기로 결심했다. 나는 '키스'가 있는 몽파르나스 묘지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아침부터 몽파르나스 묘지에 갔다.
처음 가본 타국의 묘지, 그러니까 파리의 묘지는 참 예뻤다. 굉장히 컸는데, 시내 한복판에 이렇게 커다란 묘지가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우리나라의 묘지는 생활권에서 동떨어져 있어서 죽음이 삶에서 한 발짝 비켜난 느낌이 있는데, 파리의 묘지는 보란 듯이 생활권 한 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각각 묘비며 그 무덤의 모양이 다른 것도 인상적이었다. 모든 사람이 다르듯 묘비도 그랬다.
몽파르나스 묘지에는 유명한 이들의 묘가 많았다. 보들레르의 묘비에는 립스틱 자국이 가득했고, 세르주 갱스부르의 묘에는 싱싱한 꽃다발이 잔뜩 있었다. 그곳은 인기 많은 관광지이기도 했다. 내가 갔던 날은 하늘이 꾸물꾸물 흐린 어느 평일 오전이었는데, 사람도 거의 없고 조용했다. 무작정 묘지를 산책하자니 낯선 감촉의 기분이 들었다. 죽음이 가득한데, 슬픔보다 사랑이 많았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찾아와 묘지에 묻힌 이들을 기억하면서 비석을 쓰다듬고, 입 맞추고 갔다. 화려하지만 찾는 이가 없는 묘도 있고, 초라하지만 싱싱한 꽃이 가득 놓여있는 묘도 있었다. 누구의 묘인지, 묘비에서 이름을 찾는 일은 점점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곳은 죽음 이후의 삶을 보여주고 있었다. 계속 진행되고 있는 삶을.
나는 살아있는 이방인이라, 뚜벅뚜벅 따뜻함을 찾았다.
브랑쿠시는 루마니아의 작은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힘든 노동과 학대로부터 벗어나 그의 인생을 살고자, 열세 살에 집을 나왔다고 한다. 그 후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가난하고 위태위태한 삶을 살다가 우연히 만든 바이올린이 눈에 띄어 후원을 받아 조각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는 ‘노예처럼‘ 근면하게 작업하기로 유명했다. 작가로 인정을 받은 후에도 수도자처럼 검소한 생활을 했다.
그는 평생 독신이었다. 나는 ’키스‘처럼 그렇게 단순한 사랑을 만들어낸 이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에게도 사랑이 작품처럼 단순했는지. 하지만 아무리 자료를 뒤져보아도 그의 사랑이야기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대신에 그가 남긴 말을 하나 찾았다.
“나의 인생은 기적의 연속이었다.”
근면하고 검소하게 살았던 브랑쿠시에게 일어난 기적은 무엇일까.
여행을 할 때면 브랑쿠시의 이 말이 떠올랐다.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는 극한의 체험을 하지 않더라도, 자주 기적의 연속이었다. 어쩌면 여행은 습관을 걷어낸 본질적인 인생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묘지가 이렇게 복잡할 줄 몰랐다. 결국 묘지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다시 입구까지 가서 지도를 구했다. 브랑쿠시의 키스는 멀리 구석에 있다.
그 작고 무방비한 조각상을 발견했을 때 기적처럼 반가웠다. 어떤 화려한 표시도 설명도 없었다. 그것은 바람이 불면 맞고, 비가 오면 젖을 테다. 겨울에는 눈이 하나 된 연인 위로 소복이 쌓일 것이다. 안 그래도 뭉툭한 연인은 점점 더 하나로 뭉툭해질 것이다.
나는 다리도 아프고 해서 그 앞에 앉았다. 내 뒤로 벽이 있었다. 벽에 기대서 단순한 연인을 바라봤다. 묘지가 하도 조용해서 내 마음의 소리가 다 들리는 것 같았다. 조금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마침 하늘이 개어서 따뜻한 햇살이 드러났다. 누군가 안아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꾸벅꾸벅 잠이 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