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여행을 하다보면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외로움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리둥절했다. 외로움이 이렇게 사무치는 것이었나, 그리고 내가 이렇게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었나.
그럴 때마다 책은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서로 아무 말 않고 있어도 편안한 친구. 무슨 이야기든 들어주는 친구.
여행 중에 운이 좋으면 그런 친구 같은 장소를 만나기도 한다. 내가 이방인으로 느껴지지 않는 장소. 환영받는 느낌을 주는 따뜻한 장소. 파리에 그런 곳이 있었다.
노틀담 성당 옆 작은 다리 건너에 위치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이하 셰익스피어 서점)
나는 매일 그곳에 가서 책을 읽거나 만지거나, 2층 위에 놓인 침대에 앉아서 쉬거나, 까만 고양이 키티를 쓰다듬었다. 삐그덕 거리는 좁은 계단도, 2층의 커다란 창문으로 보이는 파리의 전망도, 스윽 들어오는 부드런 바람도 좋았다. 뭐든지 써보라고 비치된 타자기를 두들기는 것도 좋았다. 오래된 책들이 빼곡히 들어찬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여기서는 책을 사지 않아도 마음껏 책을 읽고 쉬다가 갈 수가 있었다. 가난한 여행자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영화 ‘비포 선셋’을 좋아하는 사람들까지 세계 곳곳에서 모여들었다. 제레미 머서의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이란 책을 보면 셰익스피어 서점은 작가나 여행자들에게 숙소를 제공하기도 한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셰익스피어 서점의 2대 주인, 조지 휘트먼 할아버지가 계실 때였다. 나는 딱 한 번 조지 할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다.
어느 날, 셰익스피어 서점 2층에서 읽을 책을 고르고 있는데 “웰컴! 웰컴!” 하는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그 말이 나를 향한 것인 줄 몰라서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웰컴! 이란 말이 콩, 콩, 지팡이 짚는 소리와 함께 가까워졌다. 고개를 돌아보니, 낡고 까만 수트를 입은 할아버지였다. 무엇보다 헤어스타일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건조한 머리카락은 눈부시게 하얀색이었고, 사자 갈퀴처럼 사방으로 뻣뻣하게 뻗어있었다. 키는 나보다 조금 큰 정도이고 몸은 거의 나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마른 체격이었다. 얼핏, 무서운 인상에 나는 냅다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나는 조지라고 해요. 여기 서점 주인이에요.”
하셔서 아, 하고 긴장을 풀었다.
나도 인사를 하고 이름을 말했다. 조지 할아버지는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었다. 그런데 자꾸 뭐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을 이해를 못하다가 그것이,
“여기서 자고 가요!”
라는 뜻임을 알아차렸다. 다시 도망가야하나 고민을 하다가,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는 잘 곳이 있어요.” 라고 대답했다. 그래도 끈질기게 묻는 조지 할아버지.
“어디서 자나요?”
“저는 빌쥬프 쪽에 숙소가 있어요.”
“여기서 자고 가요. 잘 곳이 아주 많아요!”
“정말 괜찮습니다. 감사해요.”
“자고 가요! 환영해요!”
잘 곳이 있다는데 계속 자고가라는 대화가 무한 반복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서점을 둘러봐도 잘 곳이 없을 것 같았다. 이제 대화를 봉합하려는데, 조지 할아버지가 토요일 오후에 있을 티파티에 초대해주셨다.
“따뜻한 차와 과자, 케이크가 있을 거예요. 꼭 와요!”
예기치 못한 초대에 마음이 들떴다. 그렇게 셰익스피어 서점에 맨날 갔더니, 티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셰익스피어 서점에서의 티파티는 어떨까, 토요일까지 이런 저런 즐거운 상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초대 당일이 되었다. 날씨가 조금 흐렸다. 나는 가장 멀끔한 옷을 입고, 과일가게에서 잘 익은 체리를 한 가득 사서 셰익스피어 서점으로 갔다. 서점 2층으로 올라가니 캐시가 윌의 머리를 잘라주고 있었다. 캐시와 윌은 파트 타임으로 서점에서 일한다. 캐시 말에 의하면 여기 직원들은 대부분 여행자로, 하루 2~3시간 정도 일을 하고 숙소를 제공받는다고 했다. 나는 너무나 궁금했다. 도대체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서 자는 걸까? 미국에서 온 캐시는 늘 걱정이 많았는데, 자주 날 부러워했다. “너는 여행 중이라서 얼마나 좋니. 걱정이라곤 하나도 없겠지?” 캐시는 남의 속도 모르면서 눈꼬리를 아래로 늘어뜨리며 말했다.
“안녕, 윌. 헤어스타일이 훨씬 멋져졌네.”
윌은 그림을 그리는데 서점에서 일하지 않을 때는 자기 작품을 가지고 나가서 판다. 언젠가 예술의 다리에서 그림을 팔고 있는 윌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장발의 윌만 보았지, 이렇게 짧은 헤어스타일의 윌은 처음 봤다. 캐시는 커트에 제법 소질이 있었다. 나의 칭찬에 윌은 머쓱해하더니 이제 곧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윌은 캐나다에서 왔다.
“그런데, 오늘 티파티 한다던데. 조지는 어디 계셔?”
캐시가 가위질을 멈추고 양쪽눈꼬리를 땅바닥까지 늘어뜨리며 날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티파티는 없어. 조지가 초대했어?”
조지 할아버지는 건망증이 심해졌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잊기가 일쑤였다. 그렇게 바람맞은 손님들이 자주 서점에 오곤 했던 것이다.
망연해서 멀뚱멀뚱 서있는 내게 윌이 말했다.
“오늘 내 송별 파티가 있는데, 오지 않을래?”
서점 문을 닫는 12시에 여기서 간단하게 와인을 마실 거라고 했다. 친구를 데려와도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민박집 언니 오빠들과 함께 송별파티에 갔다. 오후에 샀던 체리와 와인 몇 병을 들고 갔다. 밤 12시가 되니, 서점이 눈을 감듯 문을 닫기 시작했다. 창문과 문들이 잠겼다. 윌이 나를 살짝 부르더니, 서점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했다. 그동안 매일 서점에 왔는데 또 구경할 것이 있을까 싶었지만 따라 나섰다. 윌은 서점 옆에 나란히 붙어있는 집으로 안내했다. 그 집에 조지 할아버지가 살고, 숙소로 제공하는 방들이 있다고 했다. 종종 유명한 작가들이 서점에 들르면 숙소로도 제공한다고 했다. 티파티가 열렸다면 여기 어느 방에서 열렸겠지 싶었다. 나는 처음 들어온 그 집에 감탄했다. 윌은 아직 감탄하긴 이르다고 했다. 윌은 3층으로 데려가더니 잠시 들뜬 표정을 하고는 복도에 난 창문을 열어젖혔다. 달빛이 내게로 쏟아졌다. 이 시간, 파리는 이토록 아름답구나. 낮고 커다랗게 뜬 달도, 그 아래 은은하면서도 고고하게 모습을 드러낸 노틀담 성당도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자연스레 입이 벌어졌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숨 쉬는 것도 잠시 까먹고 말았다. 윌은 놀라는 날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나는 사람 좋은 윌이, 초대 약속에 바람맞아서 실망한 나를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싶었다는 걸 안다. 윌이 웃는 모습은 파리의 밤만큼이나 무척 근사해서 잠깐 반하고 말았다.
캐시, 윌, 그리고 서점의 여행자 직원들이 모두 2층에 모였다. 일행까지 열두 명 남짓 되었다. 2층 구석구석이 변신하기 시작했다. 저 책장 맨 아래를 두드리니 한사람 누울만한 공간이 생겼다. 곳곳에 침낭들이 등장했다. 선반 틈틈이 머그잔과 칫솔이 보였다. 늘 담요 덮인 침대를 지키던 키티도 여행자들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책이 있는 곳으로 피신한 가난한 여행자들은 적당한 자리에 편하게 앉아 와인을 마시며 파리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우리가 본 아름다운 것들, 놀라운 것들, 그리고 앞으로도 기억하고 싶은 이 순간 내 옆에 앉은 당신에 대해. 우리는 곁에 앉은 이들에게 질문하고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책들도 가만히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