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잠든 사이에

by 이유


나는 사람냄새 가득했던 파리의 지하철이 문득문득 그립다.

그곳엔, 앉더라도 좀처럼 잠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에어컨도 없는 파리의 지하철엔 공기 중에 떠도는 것이 많았다. 하루 이틀 감지 않은 머리 냄새, 여우비에 젖은 코트 냄새, 바스락, 페이퍼북 냄새, 갈색 머리를 질끈 올린 여성에게서 나는 무심한 장미향, 멋쟁이 할머니에게서 나는 화려한 머스크향, 살 냄새 섞인 새콤한 데오드란트 냄새.

전통의상을 입은 멕시코 밴드가 지하철에 올라타기도 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남자가 기타를 들고 탄 적도 있다. 봉쥬르 인사도 없이 바로 연주를 시작했다. 누군가는 불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했고 누군가는 ‘라비앙로즈’를 수줍게 불렀다. 파리시로부터 자격 심사를 받은 지하철 역 내의 음악가들과는 달리, 열차 내에서 연주하는 이들은 서툴렀다. 박자나 음정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누군가는 하늘이라도 날고 있는 표정이었고, 누군가는 영혼이 쏙 빠져나간 얼굴이었다. 어쨌든 음악은 공평하게 공기를 메웠다.

한번은 평범한 젊은 남자가 열차에 타더니 마치 연주를 하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왜소한 목소리는 주목을 끌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열차 안의 모든 시선을 사로잡았다. 얼굴 한가득 미소를 지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눈물을 글썽였다. 모두 그 사람에게 빨려 들어가는 듯한 표정이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얼마나 궁금하던지.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모두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너도나도 할 것없이 그에게 돈을 주었다. 평범했던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의 얼굴을 하고 꾸벅 인사를 하더니 열차에서 내렸다.


나는 파리의 지하철이 좋았다. 그런데 파리에 온지 일 년 차인 중국인 쏭 오빠는 지하철을 싫어했다. 그와 나는 파리에서 가장 저렴한 프랑스어 어학원 같은 반이었다. 나는 중국말을 못했고 오빠는 한국말을 못했다. 그나마 서툰 불어가 서로 소통하기에 가장 적합한 언어였다.

쏭 오빠는 파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파리의 광인들을 싫어했는데 유독 지하철에 많다는 것이었다. 나는 쏭 오빠의 말에 동의 할 수 없었다. 파리 사람들이 특이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미쳤다는 말은 너무 심한 것 아니냐 말했다. 그때마다 그는 니가 아직 파리의 미친 사람을 못 만나서 그렇다고 주장했다.


파리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았다. 국적뿐만 아니라 생김새도, 말소리도, 냄새도 다 달랐다. 예측할 수 없는 파리의 사람들이 좋았다. 그들은 옷깃만 스쳐도 미안하다고 빠흐동, 빠흐동 했지만 마냥 예의바르기만 하지는 않았다. 화도 잘 냈고 기뻐하기도 잘 했다. 자신의 감정을 알고, 그것에 충실했다. 때론 그래서 상처받기도 하고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폴폴 사람냄새가 나서 좋았다.

지하철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달캉달캉 거리며 어디론가 함께 가노라면 이방인이어도 괜찮았다. 오히려 나는 서울에서 닮은 것이 많은 사람들 틈에서 이방인이라고 느끼곤 했다. 신기할 노릇이었다. 여기서는 이방인이라는 것이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쏭 오빠로부터 파리의 광인들을 두둔했다. 하지만 그는 파리에 온지 몇 달 되지 않은 내 말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파리의 모든 미술관과 박물관이 입장료를 받지 않는 어느 휴일, 쏭 오빠와 나는 루브르 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사람이 넘치는 거리를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던 우리는 지하철을 찾았다. 지하철도 사람으로 붐볐다. 다행히 빈자리가 나서 오빠와 나는 나란히 앉을 수 있었다. 피곤했다. 앉자마자 잠이 들었다.

얼마쯤 잤을까, 문득 묵직하고 더운 것이 느껴졌다. 뭐지, 싶은 생각에 눈을 떠보니, 어머나, 세상에. 어떤 할아버지가.

어떤 프랑스 할아버지가 내 무릎위에 앉아있었다.

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꺅.

할아버지는 뭘 그렇게 놀라냐는 듯,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앉고 싶었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그냥 자리에 누가 앉아있건 말건 그냥 앉고 싶었던 것이다. 얼굴이 조금 벌겠고 눈동자가 푸른색이었고 하얀 수염이 제멋대로 덥수룩했다. 피곤해 보였다. 빠흐동은커녕 내 자리 내놓으라는 표정이었다.

몸에서 나는 기름 냄새와 술 냄새가 났다. 제대로 들이닥친 사람냄새였다.


이게 뭐야.

나는 너무 놀라서 이게 꿈인가 하고 있는데, 앉아있는 쏭 오빠가 진지한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이제 진실을 받아들이겠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확실히 별 동요가 없는 주위의 사람들이 이상하긴 했다.

“뛰 봐, 께스끄 주 때 디. Tu vois, qu'est-ce que je t'ai dit.”

-거 봐, 내가 뭐랬냐.

분했다.

이럴 때는 불어를 매우 잘 하는 쏭 오빠였다.


나는 그 후로 파리의 지하철에서 절대 잠들지 않았다. 왜 파리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잠들지 않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다. 이 사람 냄새나는 광인들이 살고 있는 파리에서.


파리지하철그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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