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이, 양치, 몽슈, 나나. 이것이 우리의 이름이었다. 우리가 누구냐, 우리는 파리 외곽 빌쥐프에 위치한 민박집 스텝이었다. 3주간 손님으로 머물렀던 지난해와 달리 다시 간 파리에서는 본격적으로 스텝이 되기로 했다.
민박집은 그 사이 부지런한 풍이 오빠 덕에 입소문이 많이 나서 손님도 늘었다. 역시 영화제 때 함께 일했던 양치 오빠까지 본격적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그런데 곧 성수기라 일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두 번째 기회다 싶어 덥석 가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프랑스어 어학원도 등록했다.
그 당시 30대가 되어서 조금 슬퍼했던 것으로 기억하는 풍이 오빠, 나와 띠동갑인 경상도 남자 양치 오빠, 자유롭고 세련된 몽슈 언니, 그리고 밥 잘하는 24살의 나, '나나'가, 체리나무 민박집 오렌지색 지붕 2층에 살았다. 1층에는 여행자들이 머물다 갔다.
처음에는 무슨 별명이냐며 붉어진 얼굴로 오그라든 손을 숨겼다. 그런데 풍이 오빠가 정색을 하고 “빨리 말해, 지금 체크인 한 손님한테 소개해야 돼.” 해서, “나나난?”하고 좋아하는 만화가 이름을 말했다.”세 글자는 너무 길어. 나나로 하자. “ 어, 저기... 하는 사이 오빠가 손님에게 말했다.”안녕하세요, 저는 풍이, 얘는 나나입니다. 내 집처럼 편히 지내다 가세요.”
매일 최소 5인분, 최대 25인분의 식사를 차렸다. 요리는 즐거웠다. 특히 모두 잠든 시간 혼자서 아침을 차리는 시간이 좋았다.
아침 6시 살금살금 계단을 내려갈 때 삐걱삐걱 발바닥에 닿는 감촉, 푸르스름하게 어두운 부엌의 고요, 지지직 주파수를 맞추어야 하는 라디오, 바람에 팔랑이는 빨간색 체크무늬 커튼 같은 것들이 나의 아침이었다.
요리를 하다가 부스스 일어난 손님과 인사를 하는 것, 혼자만의 시간이 끝나고 함께 북적 거리는 시간이 좋았다. 밥 한 공기 더 달라고 하거나, 맛있다고 말해주면 신이 났다.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식사를 만들 수 있을지 궁리했다.
언니 오빠들이 월급에서 얼마간 떼어서 매달 아르바이트비로 챙겨주었다. 아르바이트비가 들어있는 봉투를 받을 때면 뜨끈한 것이 목까지 차올랐다. 봉투를 건네는 양치 오빠가 내 소심한 마음까지 챙겨주었다.
“니, 눈치 보고 그러지 마라.”
우리는 아침 청소가 끝나면 파리로 갔다. 민박집에서 파리 중심부까지는 지하철로 30분 정도였다. 누구는 어학원에 가고, 누구는 가보고 싶었던 카페로 갔다. 누구는 아무 지하철역에 내려서 아무 데나 걸었고 누구는 셰익스피어 서점에 또 갔다. 신나는 하루를 보내기도 하고 엉망인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한국에 있는 누군가가 그리워서 울적하기도 하고 파리까지 따라온 걱정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래도 모두 같은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늘 4시까지 들어와서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늘 누군가와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종종 행복이라는 단어가 목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손이 오그라드는 것만 같아서 그 말을 삼켰다.
어느 한적한 주말 오후였다. 그날 저녁 메뉴는 바비큐여서 따로 요리를 할 것이 없었다. 나는 몽슈 언니와 마당에 놓인 테이블 의자에 앉아 그야말로 멍하니 있었다. 손님들은 모두 외출 중이었다. 2층의 열린 창문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왔다.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의 ‘Why not’이었다.
“어! 이 노래 좋아해요!”
어깨가 덩실덩실 그루브를 탔다.
2층 창가의 양치 오빠가 스피커를 창가로 내놓았다. 볼륨을 조금 올려주었다.
“언니, 저 파리 오고 손에서 마늘냄새 안 나기는 오늘이 처음인 거 같아요.”
언니는 내가 내민 손을 보더니,
“너는 근데 통 매니큐어를 안 바르더라.”
했다.
평소에 잘 안 하기는 하지만 파리에 오고부터는 매일 밥을 해서 매니큐어를 할 수가 없었다. 네일숍에 가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언니는 놀라더니 꼼짝 말라고 했다. 2층에서 까만색 파우치를 가지고 왔다. 그 안에서 처음 보는 장비들이 나왔다. 손톱 손질을 하는 데에 그렇게 다양한 장비들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언니는 내게 손을 달라고 했다. 손톱 손질이라니 어쩐지 어색해서 쭈뼛쭈뼛 푸석한 손을 내밀었다. 나에겐 손톱 주위의 거친 살을 뜯는 버릇이 있었다. 특히 엄지손톱 주위가 심했는데 자주 벌건 속살이 드러나 있었다. 그런데 내민 손에 상처가 없었다. 파리에 오고 나서는 그러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또 목까지 무언가가 차올랐다.
풍이 오빠가 차가운 1664를 들고 마당으로 왔다. 양치 오빠가 창문으로 빠끔히 얼굴을 내밀고,
“나나야, 니 또 신청곡 있나?”
했다.
마냥 이렇게 있고 싶었다. '행복'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데 지금이 바로 '그거' 같았다.
언니는 길쭉한 검은 사포로 내 손톱을 열심히 문질렀다. 매우 진지했다. 잠시 후 내 손톱이 마치 투명 매니큐어라도 바른 듯 반짝반짝 윤이 났다. 내 손톱이 이렇게 예쁘기는 처음이었다. 안 되겠다, 간질간질 목에 머물던 것을 말하기로 했다. 침을 꿀꺽 삼키고 용기를 내어 말했다.
“언니, 이런 게 행복인가 봐요.”
모두, 순간 얼었다.
몽슈 언니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희미하게 꿈틀대고 있었다.
양치 오빠가 침묵을 깼다.
“니 미쳤나”
나는 부끄럽지 않았다. 손발이 좀 오그라들면 어떠하리. 나에게 행복의 이미지는 그때 그 순간이다. 살랑이는 6월의 바람, 열매가 익어가는 체리나무 그늘, 마주 잡은 따뜻한 손, 행복하다는 말 한마디를 밖으로 끄집어낸 용기, 와구와구 쑥스러워하는 따뜻한 목소리.
Why n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