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났더니, 거의 해질 녘이었다. 간밤에 언니 오빠들이랑 이야기만 안주삼아 와인을 너무 마신 거다. 아, 머리라도 쥐어뜯고 싶은 기분이련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맑아졌다.
에라, 될 대로 되어라.
민박집에 함께 묵고 있는 몇 명이 팡테옹과 소르본느 쪽으로 간다며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도 즉흥적으로 합류했다. 나는 팡테옹 근처 ‘클루니 라 소르본느’ 역 근처에서 파는 파니니가 먹고 싶었다. 토마토랑 모차렐라 치즈만 넣은 파니니가! 풍이 오빠가 처음 추천했을 때, 고기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데 맛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은 죄다 고기가 들어가는 것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단순하게 토마토, 모차렐라 치즈를 넣고 납작하게 구운 그 파니니는 심하게 맛있었다.
뜨끈뜨끈 치즈가 죽죽 늘어지는 파니니를 손에 들고 먹으며 소르본느 쪽을 어슬렁거렸다. 몇 번 와 본 길인데, 이렇게 일어나자마자 다 저녁인 때 온 것은 처음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파리의 태양은 쉽게 눈을 감지 않았다. 온갖 색깔로 하늘을 물들였다. 오렌지색인가 싶더니 좀 더 갈색빛이 도는 호박색이 되었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아직 덜 깬 와인과 잠 때문에 나른했다. 이게 아직 꿈인가 싶었다.
일행은 사진을 찍으며 거리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한참 뒤처져 있었다. 대신에 파니니를 손에 들고 상큼한 토마토 과육을 씹으며 하늘을 바라봤다. 파니니에서 붉은 토마토 과즙이 떨어져 옷에 묻었다. 휴지도 손수건도 없어서 그냥 두었다. 아, 될 대로 되어도 좋았다. 이 빛에 휩싸여, 이대로 호박 보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느슨해지고 있었다. 완벽한 순간은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태어났다. 언제 어디에서 파리가 주는 선물을 받을지 알 수 없었다. 일찍 일어난다고 벌레를 더 많이 잡고 좋은 경치를 보는 것이 아니었다. 돈이 많다고 더 맛있는 것을 먹고 고기가 들어간다고 더 맛있는 것이 아니었다. 파리의 하루하루는 무궁무진하고 설렜다. 늘 모르는 편이 더 즐거웠다.
잊지 않으려고 쓴다. 그 보석 같은 순간은 파리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가장 값진 것은 대부분 무료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