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네 집

by 이유

나는 늘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사람과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탐구하는 것이 예술가의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게 예술가는 진실하고 다정하면서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여행을 준비하며 많은 책을 읽었다. 주로 파리의 박물관 미술관에 대한 것들이었다. 예술의 도시 파리에 도착하기 전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싶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사로잡혔다. 파리에서 하나라도 더 보고 싶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로베르네 집’이었다.

로베르네 집은 파리 중심 리볼리 거리에 위치한 7층 건물로, 프랑스 정부와 모 금융회사의 공동 소유였는데 금융사가 파산하면서 14년째 폐가로 방치된 곳이었다. 그곳을 세 명의 가난한 예술가가 점령해 버렸다. 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들은 쓰레기로 가득한 내부를 말끔히 치우고 예술 공간으로 만든 뒤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프랑스 정부는 퇴거를 요구했지만 꿋꿋이 남아 그 안에서 창작을 하고 시민들과 공유했다. 로베르네 집은 점점 소문을 타고 파리 시내의 유명한 미술관 못지않은 인기를 끌며 주목받았다. 그들을 지지하는 예술가들, 시민들도 늘어나서 정부로부터 당분간 머물러도 좋다는 한시적 소유권을 얻었다.

그 책은 '로베르네 집'의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뷰를 형식으로 엮은 것이었다.(현재는 절판되었다.) 동시대를 사는 예술가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읽으며 두근두근했다. 예술가들이 파리 한 복판의 건물을 점령하다니. 이런 것이 가능하다니. 나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유지하기도 어려운데, 그 안에 아예 들어가서 누웠다니 충격이었다. 파리에서 가장 방문하고 싶은 미술관이었다.

풍이 오빠와 날을 잡고서 로베르네 집에 갔다. 서울의 명동 한복판을 떠올리는 샤틀레 역 근처 큰 거리에 눈코 입이 달린 건물이 떡하니 서있었다.

허름하지만 자유로운 내부에는 여러 명이 각자의 공간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문이 열려있는 작업실에 들어갈 때면 인사를 하는 작가도 있고 동요 없이 작업에 몰두하는 이도 있었다. 뭔가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막상 닥치니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무엇보다 방해가 되는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어보고 괜찮다면 그 풍경을 조용히 찍었다.

그런데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작가도 있었다. 무채색만으로 추상화를 그리는 작가였다. 그는 마치 그의 작품으로 만든 것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무채색의 다양한 조각을 이어서 만든 것이었다. 허름한 그 옷은 가만 보니 연미복이었다. 높이가 있는 까만 탑 햇 까지 쓰고 있었다. 구김도 있고 물감도 묻어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나는 그 조각조각 허름한 천으로 기워 만든 옷이 화려한 연미복이라는 사실에 매료되었다. 예술가의 옷이었다.

겉치레 없이 털털했던 그는 수줍었던 내게 먼저 인사를 해주며 말을 걸었다. 성큼 다가왔지만 어찌나 깍듯하던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00년대 벨 에포크 시절 파리에서 온 신사 같았다.


어떤 예술가가 되고 싶은가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영화도 하고 싶고, 글도 쓰고 싶었다. 그림도 그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예술가가 되려면 어떤 자격이 필요한 듯했다. 나는 자격이라는 벽 앞에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 분야의 유명한 대학을 졸업하고 어떤 인정을 받아야 할 듯했다. 하지만 그 벽은 나 자신이 세운 것이었다. 자유롭고 싶어서 예술가를 꿈꿨으면서 내 앞에 벽을 차곡차곡 쌓으며 절망하고 있었다. 펜을 들거나 붓을 드는 대신 벽돌을 힘겹게 나르고 있었다.

로베르네 집의 예술가들은 문이란 문은 활짝 열어놓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커다란 붓을 캔버스에 휘두르거나 종이조각을 붙였다. 아주 작은 종이에 그림 아닌 글자를 적기도 하고 콜라주로 조각을 만들기도 했다. 저것도 작품인가? 생각되는 것들이 가득했다. 가능성들이 그 안에서 보호받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어떤 해방감을 느꼈다.

언제 나가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자리에 서서 작품을 만드는 로베르네집 사람들의 모습은 내게 용기를 주었다. 때론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다. 그냥 하는 것, 계속하는 것만큼 용감한 일이 또 있을까. 더군다나 문을 활짝 열고서.

로베르네 집은 파리 한복판의 숨구멍이었다. 파리가 살아 숨 쉬는 증거 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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