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이야기 좀 할까?”

by 이유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지금 괜찮니? 잠깐 얘기 좀 할래?”

빌쥐프에 온 지 사나흘쯤 지나서 풍이 오빠가 말했다. 누군가 얘기 좀 하자고 해서 좋았던 적은 별로 없었기에 긴장했다. 나는 대화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갈등의 소지가 있는 대화면 최대한 피하거나 상대방의 의사에 맞추거나 농담으로 둘러대곤 했다. 갈등 때문에 사이가 멀어지거나 틀어질까 봐 두려웠다.

영화제에서 일할 때 오빠는 내가 자원 활동하던 팀의 스텝이었는데, 종종 문제가 터지면 해결하는 일을 맡았다. 오빠는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단순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었다.

한 번은 영화제 티켓팅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서 관객의 불만에 응대해야 했던 일이 있었다.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풍이 오빠가 그를 길게 늘어선 줄에서 빼내 차분히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는 목소리를 더 높였다.

“그런데 왜 화를 내세요?”

오빠는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무리하게 화를 내는 관객의 반응보다 오빠의 질문이 더 놀라웠다. 앗, 그냥 죄송하다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문제가 해결된 후 오빠가 내게 말했다.

“그렇게까지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제대로 응대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질책을 받을 줄 알았는데. 그 말이 다였다.


“음, 나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결정해주면 좋을 거 같아. 머무는 동안 같이 일하면서 지낼래, 아니면 그냥 손님으로 있을래?”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나는 매일 정신없이 파리로 뛰쳐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오빠 일을 돕겠다고, 밥도 하고 청소도 하겠다고 큰소리쳐놓고는 눈을 뜨면 바로 뛰쳐나갔던 것이다.

얼굴로 피가 쏠려서 얼어있는 나에게 오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파리에 왔으니 보고 싶은 곳도 많고 매시간이 아까울 거라고 그냥 여기서 편하게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하지만 일을 도와주기로 결정을 한다면 이제부터 같이 분담도 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작지만 수고비도 챙겨주겠다고 했다.

나는 23살이었다. 그리고 엎어지면 센 강에 코가 닿는 파리 근교에 있었다.

“오빠 저...... 놀고 싶어요.”

오빠는 알았다고 했다. 그 후로 그 결정에 대해 눈치를 주거나 석연찮은 티를 내지 않았다. 나는 정식으로 민박집 스텝이 되지 않더라도 설거지나 음식 준비를 틈틈이 돕겠다고 했다. 당시 민박집은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 손님이 적은 편이었다. 그렇게 정리가 되었다. 숙식을 제공받고, 일을 돕는 손님으로 있기로. 감사하게도.


불편한 이야기를 해도 괜찮았다. 나의 생각을 솔직히 말해도 지붕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지 않았다. 너는 그렇구나, 나의 생각은 이런데. 존중받는 대화였다.

나는 좀 더 민박집을 살피며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고 오빠는 도울 일이 있으면 그때그때 알려주었다.

종종 저녁을 차리고 설거지를 했다. 며칠 날을 잡고 지하실을 청소해서 아지트를 만들었다. 10명 남짓 모여 앉을 수 있는 그곳에서 손님들이 늦은 밤까지 마음껏 이야기를 나누고 와인잔을 기울였다.

그곳에서 나 자체로 괜찮다는 사실을 조금씩 자주 체험했다. 함께 어울리며 배려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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