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며불며 파리

by 이유

“여보세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목에 뜨거운 것이 차올랐다. 힘을 짜내서 “오빠!”라고 말하자 눈물이 터졌다.

그렇게 원했던 여행을 왔는데 왜 그리도 눈물이 터졌던 걸까.


23살의 나는 비엔나의 기차역 공중전화에서 수화기를 붙잡고 울고 있었다. 혼자서 2주 정도 유럽 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처음으로 공항에서 비행기를 탔고, 혼자서 낯선 곳에 와보았다. 관광, 여행이라기보다 일종의 모험이고 성장통이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안락했고 관성으로 살았는 지를 실감했다. 우물 밖을 나오니, 나는 무지하고 낯선 존재였다. 유럽의 6월은 한국보다 추웠고, 예상보다 언어의 장벽이 높았다. 가장 저렴해서 선택한 비엔나의 숙소는 6층까지 엘리베이터 없이 돌계단을 올라가야 했는데, 매일 누군가 여권을 도난당했다. 샤워실은 잠글 수 있는 문 대신에 방수 커튼이 다였다. 따뜻한 말, 익숙한 것이 그립다가 쿵,하고 떨어지듯 외로웠다. 사소한 것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파리로 향하는 기차를 타기 전이었다. 파리에서는 풍이 오빠가 있는 민박집에서 지낼 것이다. 꺼이꺼이 울면서 이제 기차를 타고 파리로 간다고 말했다.

풍이 오빠는 여름, 영화제에서 함께 일했다. 영화제가 끝나고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오빠가 파리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민박집 하나를 맡아서 일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오빠는 손님들 식사 준비가 죽을 맛이라며 새로 시작한 민박집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파리에 놀러 오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아직 넷플릭스가 없던 그 시절, 나는 비디오 디비디 대여점과 카페 알바 두 개를 하고 있었는데, 시간을 쪼개어 일을 하면 더 했지 여행 갈 사치를 부릴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파리로 오라는 말을 가만히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바쁜 주말, 대여점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바로 옆 빵집 사장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잔돈이 떨어졌다며 급히 20만 원을 바꿔달라는 것이었다. 전화를 끊자 처음 보는 빵집 직원이 왔고, 나는 잠시 후에 돈을 주겠다는 그의 이야기를 믿고 20만 원어치 잔돈을 주고 말았다.

눈 뜬 채 도둑맞았다는 것, 그것도 내가 도둑에게 돈을 쥐어 주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한 순간 아르바이트비의 4분의 1이 날아갔다. 신고를 했더니 가게로 경찰이 왔다. 손님들이 붐비는 그곳에서 질문에 대답을 하다가 눈물이 겉잡을 수없이 터졌다.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학교 생활은 엉망인 채로 휴학 중이었고, 막연히 영화를 하겠다는 꿈을 붙잡고 알바만 열심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속으로 끙끙 앓으며 챗바퀴를 돌고 있었다. 반복적으로 나 자신을 미워하다 위로하는 날들이었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길었다.

파리로 놀러 오라는 말이 생각났다.


여행을 계획하면서도 죄책감에 시달렸다. 돈을 벌고 공부를 하고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사람 구실도 하고 가족들에게 힘이 될 텐데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았다. 하지만 파리에서는 숙박비 식비를 절약할 있었고, 학생 할인으로 유레일패스는 물론 여러 가지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유학 중인 친구가 있는 도시를 일정에 넣으면 여비는 그리 많이 들지 않았다.

암스테르담, 베를린, 비엔나, 파리, 런던을 일정에 넣었다. 잠시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로 했다.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울음을 터뜨린 내가 걱정되었던지, 풍이 오빠가 역으로 마중을 나왔다. 나는 풀이 죽어있었다. 파리로 오는 기차 안에서 유레일패스 예약에 문제가 있어서 브뤼셀을 지날 때 복대에서 벌금을 꺼내 지불했던 것이다. 그렇다, 또 울었다. 앞자리에 앉은 신사가 곤란해할 때까지, 누군가 ‘이 자리 내 자리예요’ 할 때까지 울었다. 울면서 일어났다.

풍이 오빠는 별 말없이 캐리어를 들어주었다. 북역에서 바로 지하철을 탔다. 오빠는 어떻게 지하철 정기권을 사고, 지하철을 이용하는지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덜덜덜덜, 캐리어가 파리의 지하철을 걸었다. 쿰쿰한 냄새가 났다. 역 내에 소변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지하철 문은 자동으로 열리지 않으니 꼭 손잡이를 당겨야 했고, 빠르게 걷는 파리지앵, 파리지엔느 틈에서 풍이 오빠는 이것저것 파리생활 팁을 알려주었다.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파리는 지금까지의 여행지와 달랐다. 마중 나온 이가 있기 때문이었을까, 실컷 울었기 때문일까, 어쩐지 마음이 편했다.

“민박집은 빌쥐프라는 파리 외곽에 있어. 외곽이라고 해도 파리 중심부까지 30분이야.”

역에서 내려 오른쪽 출구로 나왔다. 늦게까지 문을 여는 가게를 지나 죽 걸으니 짙은 녹색 철문이 나왔다. 문을 열자 마당에 잎이 무성한 아름드리 체리나무가 있었다.

“여기야.”

6인실 방에 짐을 풀었다.

도착했다. 울며불며 여기까지 왔다. 매일 파리로 떠날 수 있게 해 준 집. 파리에서 돌아오면 따뜻하게 맞아준 나의 가장 파리, 빌쥐프 체리나무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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