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첫날

by 이유

처음으로 혼자 하는 여행을 준비하며 촘촘한 계획을 짰다. 이 도시에서는 뭘 하고, 며칠에는 어디를 가고 몇 시에는 무엇을 먹고. 하지만 2주 정도의 유럽 여행을 하면서 빡빡한 계획은 내다 버리게 되었다. 일정을 고민하고 계획하는 과정은 즐거웠지만 막상 여행에서 계획을 실행하는 일은 나와 맞지 않았다. 파리에서 3주 정도 머물 예정이었다. 시간은 많다고 생각했다. 그냥 그때 하고 싶은 걸 하기로 했다.

빌쥐프에 도착한 다음 날, 이제 파리와 만날 차례였다.

첫 만남은 특별했으면 했다. 조용하고 친밀하게. 사람이 많고 요란한 관광지 말고, 일상의 파리를 나답게 만나고 싶었다. 편한 신발을 신고 지하철을 타고 파리로 출발했다. 아무 역에, 이름이 왠지 맘에 드는 역에서 내리기로 했다. 쉴리 모흘랑(Sully Morland) 역에서 내렸다.

지도도 목적도 없이 그냥 걸었다. 맘에 드는 길을 따라 걸으니 쉴리(Sully) 다리가 나왔다. 아름다운 분홍색 솜털 같은 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보는 나무였다. 한참을 다리 위에서 바라봤다. 정처 없이 걷다 보니 바스티유 광장으로 이어졌다. 에릭 로메르, 장 뤽 고다르, 프랑소와 트뤼포의 영화들 속에서 자주 봤던 곳이었다. 거리를 계속 걸었다. 서점이 나왔다. 슬그머니 들어가서 ‘까이에 뒤 시네마’를 샀다. 파리에 가고 싶다는 꿈은 영화가 키웠으니 첫날 프랑스 영화 잡지를 사는 건 꽤 근사한 일정이었다.

7월의 햇살이 따사로웠다. 마음을 끄는 길만 따라갔다. 마레 지구가 나오고 파리 시청이 나왔다. 마냥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많이 걷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여행하면서 어쩔 수 없이 많이 걸었다. 비로소 파리에서 걷는 일을 사랑하게 되었다.

첫 만남에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괜한 고민을 했다. 그냥 걸었다. 걸을 수록 사적인 장소가 되어갔다. 골목골목을 걷는 일이야말로 지금 가장 그리운 파리다운 일이다.


사랑하는 작가 리베카 솔닛은 걷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보행은 몸과 마음과 세상이 한 편이 된 상태다 오랜 불화 끝에 대화를 시작한 세 사람처럼. 문득 화음을 들려주는 세 음표처럼. 걸을 때 우리는 육체와 세상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육체와 세상속에 머물 수 있다. '(리베카 솔닛 '걷기의 인문학' P20)

나는 지금도 파리를 걷는 꿈을 꾼다. 그 조화로운 꿈에서 깨면 헤어진 연인을 만난 듯 마음에 젖은 솜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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