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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stas Aug 12. 2023

여행중간 입장료가 두배로 훌쩍

42일간의 배낭여행 4 : 안탈리아

안탈리아로 가는 야간버스는 진짜 그냥 버스였다. 언젠가 태국여행에서 탔던 슬리핑 버스 같은 게 아니고. 하하는 의자를 뒤로 최대한 젖혀도 썩 편하지 않은지 계속 뒤척거려 두 발을 내 무릎에 올려 두 좌석에 걸쳐 눕도록 했다. 이제 키가 130센티미터는 되니 다리가 통로 쪽으로 쑥 삐져나오고, 난 무게 때문에 다리가 저린다. 근데 앞에서 참 희한한 광경을 보았다. 등받이를 뒤로 젖히는 고정장치가 고장 나서 눕혀진 각도가 140도는 돼 보이는 좌석 뒤에 앉은 튀르키예인이 있었다. 덩치도 큰 남성이 가슴에 닿을락 말락 하는 앞 좌석 등받이가 불편할 만도 한데 자리를 바꾸지 않고 있다. 휴게소에서 나갔다 들어올 때 몸을 간신히 구겨 넣듯 앉으면서도 왜 바꾸지 않는 건지. 빈좌석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 같으면 바로 항의를 했고, 자리를 옮겨달라고 했을 텐데. 튀르키예인들은 신기한 면이 있다.


아침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체크인 시간인 2시까지 시간이 많이 있었다. 짐을 호스텔에 맡기고 아침밥 먹을 곳을 찾을 겸 올드타운을 설렁설렁 걸어보았다. 올드타운의 랜드마크인 하드리아누스의 문을 지나, 알록달록 아기자기 골목길들을 지나고 마침내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을 때, 파란 바다보다 더 눈에 들어왔던 건 바다 너머 웅장한 산들이었다. 지도상으로 거기가 올림포스 언저리 겠다. 안탈리아 이후에는 숙소 예약을 아직 안 한 상태였다. 올림포스로 가서 차라리의 꺼지지 않는 불을 보고 리키안웨이를 하루라도 걸어보고 싶은 마음과 정석대로 남은 기간 동안 파묵칼레와 에페소를 방문하는 계획 중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안탈리아에 도착해 처음 본 바다너머 보이는 광경에 올림포스에 대한 열망이 더 강해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중에 버스 시간과 하하의 체력 등을 고려해서 올림포스를 포기하고 데니즐리행을 택하게 된다. 아이를 위해 내 열망을 접는 일은 내게 이미 익숙하다.



안탈리아에서 우리가 에약한 곳은 호스텔이었는데, 처음 도착했을 때 살짝 당황스러웠다. 여성 호스트인데 뭔가 친절하지 않은 느낌? 하하를 위해 6인실 도미토리룸 내 아래위 베드를 요청했는데 남은 게 1층 두 개만 있다고 한다. 아이 위로 다른 사람이 오르락내리락할 때 아이가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줄까 봐 그런다고 얘기했더니, "우리는 아이를 받지 않는다. 몰랐나? 그러나 왔으니 받겠다."라는 답변이었다.

호스텔에는 18세 미만을 받지 않는 곳들이 많아 도미토리 예약 전에는 규정을 꼼꼼히 살피는 편이다. 당황한 난 아고다 앱에 숙소 주의사항을 다시 찾아보고 그런 규정이 없음을 호스트에게 확인시켰다. "그렇지만 당신이 원한다면 캔슬하겠다"는 말과 함께. 도착하기 전엔 동네에 대한 감이 없으니 몰랐는데, 체크인 시각 2시 전까지 주변을 돌아보니, 하드리아누스의 문 안쪽으로 해변까지 이어진 골목골목에 너무 아기자기하고 예쁜 숙소들이 많았다. 아이를 환영하지 않는 숙소라면 옮기고 싶었다.

 

그러나 호스트는 괜찮다고 했고, 다른 여행객의 양해를 구해서 우리를 위해 1,2층 베드를 배정해 주었다. 약간의 찜찜함으로 대면한 숙소였지만, 하루 만에 난 이 숙소가 맘에 들었다. 과하지 않은 절제된 친절, 요긴한 공용물품들, 그리고 여행객들의 자유로움을 보장하는 분위기. 역시 평점은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그곳에서 일 년이 넘게 여행 중이라는 한국 청년을 만났다. 고추장을 꺼내와 닭볶음탕을 뚝딱 만들고는 일본인 청년 여행객들과 금방 친해져서 식사를 함께 하는, 여행이 몸에 밴 듯한 청년. 회사에서 안식휴가를 받아 여행 중이라니까 "와, 40일 쉽지 않은데. 근데 좋은 직장인가 봐요 안식년도 있고."라고 한다. '좋은'이라는 단어와 '직장'이라는 단어를 잠시 생각했다. 내가 하는 일을 말해주려다, 관두었다. 안식휴가는 참으로 고마운 제도이지만, 난 주말도 밤낮도 없이 육아와 뒤엉켜해 오던 업무들로 몸과 마음이 무너져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대부분의 장기여행자들이 그렇듯 우리도 밥을 해 먹기 시작했다. 식료품 가게에 가서 쌀을 사고 채소와 양고기를 샀다. 이런 게 호스텔의 장점이다. 조미료와 식용유 등의 기본 재료들이 구비되어 있어서, 우리는 제법 그럴싸하게 테이블을 세팅해 놓고 칼질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식사를 하는 동안 한쪽에서는 일본 청년이 어디선가 기타를 가지고 왔고 각국의 여행객들이 둘러앉아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밤늦도록 국경을 넘어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젊은 시절 그러지 못했지만, 우리 하하의 청년기는 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음날 우리는 론니플래닛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봐야 하는 곳이라고 적혀있던 안탈리아 박물관부터 방문했다. 안탈리아로 넘어오는 야간버스에서 8월 1일부터 터키관광청이 박물관 입장료를 50~100% 인상한다는 기사를 우연히 읽은 것이다. 우리가 안탈리아 도착한 날이 7월 31일이었다. 하루사이에 200리라가 오를 상황이라, 내일부터 400리라에서 700리라로 오를 파묵칼레와 에페소 입장료는 어쩔 수 없다 해도 7월을 넘기기 전에 안탈리아 박물관은 먼저 가자 했다.


튀르키예는 여전히 여행자들이 열광할 나라일까? 모르겠다. 박물관 관람비용이 너무나도 사악하다. 이것이 리라의 화폐가치와 비교해서 그런 것인지 세계적으로 관광명소의 가격과 절대적으로 비교해도 그런 것인지는 좀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 여행지로서의 매력을 반감시킬 만큼 급격하게 올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튀르키예 여행자 카페의 정보로는 불과 몇 달 전에도 입장료를 올렸고 이렇게 고지 없이 다시 두배로 가격을 올리는 것이 정책적으로 괜찮은 것일까? 자국민에 대해서는 관광지 1년 무제한 관람권이 여전히 우리돈으로 치면 3000원이다. 여행하며 만난 튀르키예인들은 참 친절하고 정이 갔지만, 이건 정치에 대한 문제다. 외국인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와 입장에 대해 신뢰를 잃게 만드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튀르키예를 떠나 지중해 주변 국가들로 여행을 이어가다 보니 나는 더더욱 '터키 사람들'의 친절과 웃음이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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