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일간의 배낭여행 11. 룩소르
아테네에서 새벽 3시에 일어나 3시 40분 공항버스를 타고 비행기로 카이로를 경유해 룩소르에 도착했다.
드디어 이집트!
이 지중해 여행을 십 년 전부터 꿈꿔왔는데, 이집트 때문도 크다. 딱히 무엇이 그렇게 나를 이곳으로 당기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집트 유적에 남다른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닌데도 반드시 가보고 싶은 나라 중 상위에 이집트가 있었다. 여름 이집트에 대해 여행자카페에서 우려가 많았고, 특히 어린아이와 동반이었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하라는 조언도 받았지만, 다시 언제 지중해를 갈 수 있을지 모르고 근처에 갔을 때 가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가 남을 것 같았다. 미리 예약해둔 이탈리아행 비행기가 스타얼라이언스 마일리지 온라인 예매이기 때문에 전날까지 무료취소가 가능한 터라, 지내다가 아이가 힘들어 하면 언제든 여정을 조절할수 있다는 안전장치를 가지고 직진했다.
하하는 튀르키예에서보다 그리스에서 더 더워했는데 이집트에서는 그야말로 절정이었다. 7월 하순에 출발해서 이집트에 첫 발을 딛었을 때가 8월 중순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실제 기온이 40도를 넘었고, 룩소르 공항에 도착했을 때 택시를 부르지 않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집트 여행을 준비하며 가장 걱정한 두 가지, 고온과 요금바가지를 룩소르 공항 터미널에서 나오자마자 한꺼번에 직면했다. 앞에 대기하던 택시 기사들이 다가와 호객행위를 하기 시작했는데, 아이에게도 단단히 일렀고 망설임도 흔들림도 보이지 않고 단호히 지나쳤다. 지나칠수록 가격은 떨어진다. 거의 끝에서 300 EGP를 부르는 기사와 200 EGP로 절충을 하고 탔다. 100 EGP에도 갈 수 있는 거리라는 것을 알지만, 새벽에 일어나 카이로 4시간 경유 대기까지 해서 이미 12시간이나 지난 상태였다. 100 EGP 보다는 아이의 컨디션이 중요했다.
카이로에서 대기시간 동안 비자발급, 이집트 파운드 환전, 유심 등을 처리했다. 짐보관소가 있으면, 배낭을 맡기고 둘러보고 싶었지만 카이로 국제공항에는 없었다. 가지고 간 트레블월렛 카드로 수수료 없이 인출할수 있는 ATM기를 찾을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여행지에서 첫 인상은 컨디션에 중요한데, 현지돈이 작은 사이즈로 있어야 돌발상황이 생겨도 첫 바가지를 피할수 있다. 인출기에서 돈을 뽑고 자잘한 군것질거리를 사며 이집트파운드를 쪼갰다.
긴 대기시간 덕에 룩소르 공항에 도착해서 한결 여유있게 움직일수 있었다. 물론 아이를 쉬게 하고 혼자 종종거리며 다닌 시간들도 있다. 아이와 배낭여행을 27개월일 때부터 다녔으니, 이런 경우 안전을 위한 규칙에 우리는 익숙하다. 하하는 엄마가 볼일을 보고 오는 동안 절대 자리를 뜨지 않는다. 그리고, 여행 덕이 아닐까 싶은데, 하하는 길눈이 감각적으로 발달했다.
숙소는 동안쪽에 잡았다. 반드시 봐야 하는 유적지들이 서안에 몰려있지만, 마트나 시장 등 현지인들의 삶은 동안에 있고, 또 서안은 투어예약이나 택시대절이 아니면 유적지를 볼 수 없지만 동안의 카르나크 신전이나 룩소르 신전은 우리끼리 돌아다닐만할 것 같아서다. 룩소르에서는 여름에 숙소 가성비가 좋기 때문에, 수영장이 딸린 리조트형 호텔을 잡았다. 그래도 가격은 다음 여행지인 이탈리아 에어비앤비 숙소 수준. 튀르키예에서는 중간에 입장료가 점프했고, 그리스에선 번듯한 식당 밥 한 끼도 부담스러울 만큼 경제적 압박을 받으며 여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물가가 저렴한 이집트가 숨통을 틔워 주었다.
한바탕 수영을 하고, 아이는 숙소에서 쉬도록 하고는 저녁거리도 사 올 겸 주변을 탐색하러 혼자 나왔다. 현지시각으로 저녁 7시가 넘어가는 시간, 숙소 바로 앞을 도도히 흐르는 나일강이 바야흐로 주황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편으로 룩소르 신전이 영화처럼 가까이 보이니, 이집트에 왔음이 비로소 실감이 난다. 나일강을 등지고 숙소 뒤편으로 로컬시장이 나왔는데 걷다 보니 꽤 길게 상점들이 이어져 있다. 이집트 현지인들이 사는 모습을 처음 대면한 곳이다. 처음에는 바짝 긴장해서 걸었지만, 천천히 걸으며 구경도 하고 가격도 묻고 하다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가게에서 선크림을 사고, 문구점에서 하하의 수첩도 하나 샀다. 처음 여행 시작하면서부터 하하에게 여행기를 쓰도록 하고 있었는데, 아테네에서 마지막날 묵은 도미토리 침대에 아무래도 놓고 온 것 같았다. 이스탄불에서부터 20여 일간의 일기가 날아간 셈. 사진이라도 찍어뒀어야 했는데 너무 아쉬운 일이다.
조금 더 가면 아스완으로 갈때 이용할 기차역과 바자르가 있지만 어둠이 깔리고 있었기에 발길을 돌렸다. 대충 숙소 주변의 지도가 머리에 들어왔다. 숙소로 돌아와 다음날 서안 투어를 위한 택시를 예약했다. 함께 여행한 지중해 다른 국가들은 여름이 성수기지만 이집트의 여름은 비수기다. 그래서 투어 예약도 미리 하지 않았다. 인터넷을 서칭 하다 괜찮아 보이는 현지 택시기사에게 왓츠앱으로 연락을 해서 다음날 아침 7시에 숙소앞으로 와달라고 했다.
택시 비용으로 둘째날 맴논거상-왕가의 계곡-핫셉수트 장제전-네페르타리 무덤을 돌고 동안 카르나크 신전 주변 추천받은 식당 앞 13시 반 도착까지 17달러를 지불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