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일간의 배낭여행 13. 룩소르
점심을 먹고 카르나크 신전과 룩소르 신전 내부를 관통하여 걸으며 숙소로 갈 생각이었다. 두 눈앞에 이집트 신전 중 가장 유명한 카르나크 신전 입구가 있는데, 하하가 땡볕 때문에 너무 힘들어했다. 아침 7시부터 40도가 넘는 더위속에서 야외 유적지들을 본 거고, 시각이 오후 3시였으니 그럴 만도. 내 체력과 기호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절대 안 되고, 우리에겐 아직 보름간의 여정이 남아있었다. 더위라도 먹으면 큰일이다. 눈물을 머금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숙소까지는 4km 정도. 나일강을 오른쪽에 끼고 걷는 길이다. 해가 지는 시간에 걷는다면 산책으로 더할 나위 없을 코스지만, 더위에 지친 하하의 상태가 고민이었다. 택시를 불러야 하나?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온 광경이, 길가에서 현지인들이 손을 들면 하얀 승합차가 서는 거였다. 아예 문을 열고 다니고 어떤 승합차는 아예 문짝이 없는 것도 있었지만, 같은 모양이었고 거의 1~2분에 한 대 꼴로 지나갔다. 마을버스구나!
딱히 정류장 표시는 보이지 않았지만, 현지인이 탄 그 위치쯤 가서 저 앞에 흰 승합차가 오기에 손을 들었더니 차가 선다. 여전히 악명 높은 이집트에 대한 경계심이 가득 차 있을 때였다. 우리 숙소가 번화가 주변이니 대충 근방까지 갈 거 같았고, 어설프게 경로나 가격을 물어보면 뻥튀기를 할 것 같아서 느긋하게 앉아 선글라스 너머로 현지인들이 타고 내리며 내는 돈을 매의 눈으로 관찰했다. 지폐를 접어서 주니까 잘 캐치가 안 됐는데 어떤 학생이 타길래 무심하게 물어보니 영어를 못하는데 2파운드라는 것 같았다. 고 한다. 우리나라 100원도 안 되는 돈이다. 정확히 들은 건지, 혹은 2파운드가 기본요금인지, 거리에 따른 할증이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나중에 탄 어떤 성인은 10파운드 지폐를 내고 거스럼돈을 안 받은 거 같기도 해서 확신이 없었다. 10파운드가 아니고 5파운드였을 수도 있겠지. 10파운드든 5파운드든 적은 돈이다. 이미 내 머릿속은 절약이나 눈땡이 안 맞기 이런 게 아니라, 현지인들과 어울려 자연스럽게 여행하기 미션 수행에 꽂혀 있었다.
숙소가 가까웠길래, 5파운드를 낼까 하다가 2인이니 10파운드 지폐를 꺼냈다. 굳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내리다가 붙잡히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숙소 뒤편 시장 쪽에서 유턴을 하길래 세워달라고 하고 지폐를 주고 내렸다. 승합차 속 어떤 현지인이 내게 엄치척을 해 주었다.
아스완행을 포기하고 카이로로 가기로 했다. 아스완 가는 기차가 내 사전조사에서는 매일 2시간마다 있고 1~2달러 가격이었는데, 룩소르역에 가서 다음날 기차 편을 물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오전 오후 밖에 없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 아주 비쌌다. 내 사전자료는 21년도 기록이었고, 아마도 지금은 이집트의 모든 요금이 여행자에 대해 별도 책정하고 있기 때문이지 싶다. 아부심벨 1시간 관람을 위해 아스완으로 가서, 거기서 새벽 3시부터 하하를 움직여 버스 4시간을 태울 자신이 없어서 포기하기로 했다. 이미 서안투어를 하며 유적지 관람에 대해 많이 내려놓은 상태였다. 아스완에 할당했던 시간만큼 카이로로 먼저 가서 카이로가 좋으면 더 길게 있고, 그렇지 않으면 이틀 먼저 이탈리아로 가면 될 일이다.
그렇게 룩소르의 마지막 저녁이다 보니 펠루카를 타기로 했다. 길게 탈 생각은 없었고 기분만 내고 싶어서, 30분만 타겠다고 했고 300파운드. 선주는 그 배로 아스완까지 4일 걸려서 먹고 자고 하면서 간다고 한다. 씻고 싶으면 나일강에 들어가서 수영하고 나온다면서 이 배로 아스완 가고 싶으면 연락하라고 했다. 분명 매우 낭만적인 여정일 거다. 룩소르에서 나는 여행 전 일부 유투버나 블로거들이 악평한 불편을 크게 겪지는 않았다. 오히려 현지인들에게 받은 느낌은 순박한 사람들이라는 것. 물론 이런 종류의 에피소드는 있다. 룩소르에서는 술 파는 곳이 귀했는데, 동안 바자르 시장에서 미리 알아둔 곳이 있어 구글맵으로 찾아갔다. 그 앞까지 다다르자, 어떤 현지인 청년이 갑자기 튀어나와 옆에 찰싹 붙어서 말을 걸면서 매장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주류점 사장과 청년 간 언쟁이 벌어졌는데, 대충 분위기를 보니 청년이 손님을 데려간 척 연기를 하고 커미션을 달라고 한 상황이었다. 웃어넘길 수 있는 상황이다. 유적지에서는 좀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생활의 현장에서 만든 현지인들은 참 따듯하고 친절했다.
다음날 카르나크 신전을 보고 비행기로 카이로로 이동했다. 원래 계획은 아스완-카이로 야간기차였는데, 여행객 기차 요금이 비싸서 굳이 몸을 혹사시킬 이유가 없었다. 카르나크 신전이 워낙 넓고 볼거리가 많아서 비행기 시간 때문에 서둘러 움직인 게 아쉬웠다. 탑승시각이 임박해서 아이 짐까지 다 지고이고 뛰는데, 하하가 그런다.
"엄마 무겁죠? 부모의 삶이란 참 힘든 거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