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은 <노인과 바다>
<노인과 바다>, 참 단순한 이야기다. 노인은 홀로 바다로 나가 큰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다가 돌아온다. 이런 단순한 내용 구성 때문에 많은 이들이 어린 시절에 이 소설을 접해봤을 것이다. 대개의 어린 아이들에게 있어 이 소설에서의 관심은 커다란 물고기에 쏠려 있다. 그 시절의 나도 그러했다. 아직 아쿠아리움에도 가보기 전, 실제로 본 물고기라고는 식탁에 올라오곤 하는 고등어, 꽁치 따위가 전부였으니 소설 속 활력 넘치는 거대한 물고기의 존재는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나의 어린 시절, 나에게 이 소설은 단지 그뿐이었다.
다시 읽어본 <노인과 바다>는 한 마디로 노인과 불꽃의 이야기였다. 노인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지만 오랜 시간 동안 단 한 마리도 물고기를 낚지 못했다. 노인은 젊었을 적 나름 잘 나가는 어부였다. 그런 그에게 '연속 0마리'라는 업적은 매우 수치스럽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바다로 계속 나아갔다. 점차 시들어가는 내면의 불씨를 가만히 지켜보는 것보다는 그 불씨를 향해 바람을 불어넣길 시도한 것이다. 자칫 불씨가 완전히 꺼질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한때 열렬히 타올랐던 그 불꽃의 최후가 이런 식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을 따르는 소년마저 다른 배로 옮겨 간 상황에서 그는 홀로 바다에 나섰다. 망망대해에 나아간 노인은 며칠의 고난 끝에 거대한 생명체와 맞이했다. 그것은 노인에게 있어 불씨를 다시 살려내기 위한 바람과의 대면이었다. 그 바람은 아주 거세어 마치 폭풍과 같았다.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는 노인에게조차 버거운 상대였다. 그러나 노인은 그 바람을 놓아줄 리 없었다. 그 바람과의 대면은 노인이 바다에 배를 띄운 이유였으니 말이다.
노인은 사투 끝에 만새기라는 거대한 생명체이자 바람과의 결투에서 승리해냈다. 비록 마을에 다시 돌아왔을 땐 상어들이 청새를 다 뜯어 먹어 뼈만 남게 되었지만, 살이 많든 뼈만 남았든 그것은 노인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바람과의 사투 끝에 그는 그의 불씨를 다시 살려 불꽃을 다시 피워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노인에게 자극받은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나는 구태여 바람에 부딪힐 용기가 있는가'
그러나 이 질문이 먼저가 아니었다.
'나에게 있어 다시 살려내고 싶을 만큼의 불씨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먼저 찾아야겠다.
어린 시절 스치듯 읽은 작품에서 다시 울림을 발견한 감회가 새롭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어린왕자>나 다른 작품들에서도 그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언젠가 그러한 작품들에 대한 감상을 담은 글도 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