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irewriter Jan 01. 2021

2020년 12월 31일


1

『4천원 인생』,『만약은 없다』, 『지독한 하루』『임계장 이야기』, 『어느 소방관의 기도』, 『죽은 자의 집 청소』, 『대한민국 소방관으로 산다는 것』, 『오늘도 구하겠습니다』…….


 시중에 나오는 산문집들을 몰아서 읽었다. 세상이 다 이런 식일까. 힘이 빠진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을 타파할 수 있는 묘안이란 건 결코 없는 걸까. 대체로 이 사람들은 몸으로 때웠다.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지긋지긋하다.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이 개개인의 삶의 단면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의 거친 부분과 맞닿아 있다. 아니, 짓이겨져 쓸린 상처투성이다. 자신의 담대한 포부나 배짱을 사포 같은 세상에 문질러가며 뭉툭해지도록 다듬어야 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그래서 잘 안다. 이들은 항상 피곤하고, 여유가 없다. 이들을 보면서 반성하게 된다. 이들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이들의 삶이 순탄치 않다는 걸 외면한 데 대한 부끄러움이 크다. 한편으로는 동경하는 마음도 생긴다. 잠을 아껴가면서 쓴 고군분투의 기록엔 땀내(냉정하게 그것은 땀내 그 이상 그 이하로 아닌 채 외면당하기 십상이지만)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까닭이다.

 이 산문집들을 읽다보면 한편의 내러티브 기사를 보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읽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세상살이가 만만찮다는 걸 재확인하는 데 그치게 되는 것이다. 시시하고 지겹다. 그래서 이런 점에 대해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다. 어쩌면 이런 반응이 더 자연스럽지 않느냐는 반문도 해본다. 누가 이런 글을 흥밋거리로 읽는가. 참담한 심정으로 써내려 간 누군가의 필사적인 기록은 결국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으로 미디어에 잠깐 노출될 뿐이다. 불행의 단편들을 그러모으면 마음엔 까만 찌끼 같은 게 누적된다. 그것이 몸에 퇴적되면, 자기혐오에 빠진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여태 쓴 시나 일기를 보면 마치 스스로를 자학하는 듯한 대목에서 알 수 있다. 나를 짓밟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이 생기는 것이다. 어째서 나는 ‘불행’에 이토록 관심을 갖게 된 걸까. 이 불행들을 딛고 자기혐오를 사랑의 층위로 끌어올리려는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글쓰기’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숱한 산문집들을 읽으면서 ‘그럼에도’ 불행한 인간들은 살아간다는 사실을 지겹도록 확인해왔다. 그러면서도 ‘그래서 어쩌란 말이야’ 하면서 외면했던 불우한 사람들의 손길을 나는 어찌도 이리 냉정하게 외면했는지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미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

 곧 서른둘이다. 허무하다. 스무 살 4월 무렵부터 써 온 일기장 꺼내 보았다. 이맘때쯤 나는 별일 없이 하루를 보냈다.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거나 부대에서 근무를 섰다. 아니면 책을 읽거나 영화를 봤다. 말뿐인 다짐, 합리화로 점철된 일기장이었다. 바보 같았다. 뭘 하고 살았나. 그냥 무의미하게 보내버린 10년 같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나날이었다.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던 시절이었다. 글을 쓴답시고 자꾸 먹고사는 문제를 뒤로 미뤘다. 전형적인 모라토리엄 시대의 젊은이였다. 가족을 외면했고, 이유 없이 방황하던 20대였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해서 버리겠다는 건 아니다. 부끄러운 과거는 내면 깊은 곳에 침잠해 있다. 불편한 동거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나를 혐오하고 자학하는 식의 글을 쓰다가, 백석의 시집을 읽다가 못내 서러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던 순간도 있었다. 그런 나를 사랑하기도 하므로. 나는 나를 떨쳐낼 수 없다. 이런 나를 진지한 사람이라며 말을 건넨 사람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이 소중한 인연 또한 마음 깊이 담아두기로 한다.


3

내 인생은 서른 살부터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빚을 내서 집을 얻었고, 문단에 데뷔를 했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말한 대로 조금씩 실천에 옮겼다. 말이 무겁다는 걸 이때 느꼈던 것 같다. 말로만 가졌던 것을 실제로 가져본 게 작년과 올해다. 내겐 소중한 해다. 입때껏 걸어온 길을 반추해본다. 작은 둔덕을 넘었을 뿐이다. 내 앞길은 첩첩산중이다. 험준한 산을 더 넘어야 한다. 물론 절대로 혼자 넘을 수 없다. 길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는 힘들다. 많이 보고 느끼고 싶다. 열심히 살아야 할 것이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웬만큼 애쓰지 않고는 꿈쩍도 하지 않는 ‘현실’과 마주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기쁜 일이 어디까지나 기쁜 일이 될 수 있는 건 대부분의 일상이 불행해야 성립하는 것이므로.


4

나를 걱정하는 이보다 응원하는 이가 는 것을 감사히 여기고 있다. 특히 소방 꿈나무 동기들. 코로나19 여파로 사분오열이 되었지만, 나는 이 움츠러든 이 순간을 ‘동면’의 시간이라 생각한다. 때로는 밉고 때로는 정다운 나의 동기들아. 서로 힘내라며 부추겨주던 훈훈함이 남아서인지, 나는 이 겨울이 좋다. 누굴 그리워할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하루가 뜻깊다. 흐트러진 일상을 다시 재정비하고, 봄날엔 기지개 크게 한 번 켜자.

매거진의 이전글 2019년 1월 18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