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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멘지 Oct 18. 2021

꼴찌가 대학을 간다고?

스튜디엔콜렉, 독일 대학 예비자(파운데이션) 과정을 마치며.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덟 곳의 독일 대학으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다. 외국인은 학과 정원의 5~10%를 차지한다. 260명을 받는 대도시 대학의 학과뿐만 아니라, 35명을 받는 작은 도시 대학의 학과도 지원을 했으니  1.5~26명 안에 들어야 했다. 한 전공당 동일 국가에서 여러 명의 학생을 받는 것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입시설명회로부터 정원이 120명인 학과엔 한국인은 한 명 이상 입학이 어렵다는 정보를 받았다. 그러니 나보다 성적이 좋은 한국인이 나와 같은 전공을 지원한다면 탈락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저 꿈 같이(아니 사실은 도박같이) 느껴졌다. '아무리 외국인끼리의 경쟁이라고 해도 그렇지, 독일에 한국인 유학생이 얼마나 많은데... 나보다 성적 잘 나온 한국인이 설마 한 명 정도 더 없을 리가'라는 의심이 스멀스멀 차 올랐다. 


 20/21 겨울학기를 끝으로 콜렉을 수료했기 때문에 여름학기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휴학했다. (콜렉시험은 연간 두 번 있지만, 독일의 일반대학은 대부분 겨울학기에 시작한다.) 그 기간 동안 발 뻗고 푹 잤다고 얘기하기엔 애매하다. 엄마 아빠가 차려 주시는 따뜻한 밥을 먹으면서 별다른 큰 고민 없이 지냈으나, 대학 원서를 세 달 동안 순차적으로 지원을 했기에 긴장을 유지했다. 학교를 10개나 지원하고도 이 불안함은 지속되었다. 외국인 전형의 경우, 자국민 전형과 다르게 학교 홈페이지에 전례의 케이스나 누적 데이터가 전혀 명시되어있지 않고, 학교에 문의해도 정보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합격의 여부를 짐작조차 할 수 없던 게 원인이었다. 졸업시험에 제일 낮은 성적으로 합격한 나는 마음을 졸이며 학교의 연락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낮은 점수로 졸업을 안 하면 해결되는 문제 아닌가, 혹은 공부를 하긴 한 것인가 라고 시선으로 내 결과를 평가할 수도 있겠으나, 졸업요건을 맞추는 과정도 내겐 눈물 쏙 빠지는 여정이었다. 일단 시작부터 불리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원조건에 나를 딱 끼워 맞추는 걸 좋아하는 효율과 가성비에 환장하는 나란 사람은 콜렉입학시험(C-Test) 조건을 맞추자마자 학교에 시험을 신청했고 곧이어 입학시험도 합격했다. B2(유럽 언어 공통기준)를 가지고 있으면 지원을 할 수 있기에 다들 B2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를 보기 좋게 무시하듯, 막상 학교에 들어와 보니 80% 정도가 C1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머지는 B2 언어 실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를 제외한 모든 B2실력의 친구들은 모두 1학기를 마치지 못해 유급되었다.  

 어찌어찌 유일하게 턱걸이로 2학기를 맞이한 나에겐 새로운 차원의 고생길이 열렸다. 역사 졸업시험(FSP: Feststellungsprüfung) 첫 모의고사를 푼 후 채점을 했는데 14점 만점에 2점을 받았다. 미리 제시된 4개, 혹은 5개의 보기 중에 무엇이 적절할지 판단하는 눈치 외에는 습득한 적 없던 내겐 3시간 내내 내가 구사할 수 있는 단어와 사전적 지식으로 텍스트를 직접 해석하고 풀이할 능력이 필요했다. 즉 독일의 역사를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했다. 같은 그룹 내에서 나와 태국 친구를 제외한 모든 학생들은 자국과 유럽의 연결성 때문에 이미 전반적인 유럽 역사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세계사는 선택과목이었기에 거들떠도 보지 않았고 졸업 후 2년 동안 독일어에만 매진한 나에겐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내 모의고사 시험지에는 틀렸다는 표시와 점수만 표기되어 있었지 정답이 쓰여있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 교수님을 찾아갔는데, 교수님은 나에게 대뜸 유급을 제안하셨다. (콜렉은 한 번의 유급이 가능하다.) 나도 유급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반타작도 아니고 찍어서 얻어걸린 점수의 꼴로 졸업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무리수로 보였고, 이렇게 이해하지 못하는 채로 수업을 계속 듣느니, 한 학기 더 하면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게 나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근데 그대로 순응하려니 갑자기 기가 찼다. 일단 난 수업을 듣는 학생으로서 지금 내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려 하는데, 부딪쳐보기도 전에 포기하길 종용받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하물며 나는 1학기 때 정정당당하게 시험을 치고 2학기를 공부할 자격을 입증받았다. 지금 내 위치와 실력은 나 또한 정확히 인지할 수 있으나, 5개월 후의 졸업시험의 당락여부를 눈 가리고도 예상 가능하다는 식의 교수님의 태도에 화가 나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교수님들이 의심하고 나조차도 의심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한국과는 180도 다른 새로운 방식의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감사했으며,  다음 학기에 사활을 걸겠다는 거품을 방패 삼아 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고, 친구들의 헌신에 대해 보답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모든 점수가 절대 평가인 이곳이라고 해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경쟁을 하게 되지만, 상대평가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사람을 넉넉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사실이다. 지식을 나누는 것이 희생이 아닌 이곳에선 같은 목표를 가지고 뛰는 게 가능했다. 개인적으로 빚지는 것이 너무 싫어 오히려 주는 게 마음 편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제일 부족한 실력을 가진 난 계속해서 부탁할 일이 생겼고, 또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나에게 계속해서 베풀고 신경 써준, 나보다 나를 더 믿어준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들이 정리해놓은 자료를 받아서 아예 통째로 암기하고, 친구가 직접 예비시험을 만들어서 채점을 해주기도 했다. 이해가 완벽하게는 가지 않아도 툭 치면 줄줄 읊을 수 있을 정도로 무식하게 공부하기도 했다. 결국 졸업시험을 다섯 과목을 치렀고, 정치를 한번 떨어져서 재시험(Nachprüfung)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받았다. 나는 못할 거라고 했지만 "우리는 무조건 다 같이 대학 간다. 내가 너 공부시킨다!"라는 말에 힘을 쥐어 짜내서 시험을 통과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하지만 조바심에 마지막 문단을 적어 내린다. 혹시라도 이 글을 콜렉 지원자나 이수자분들이 보시게 된다면, 내 경우를 정답처럼 여기지 않으시길 바란다. 나는 인문계 단일 학과만 열 개의 학교에 지원했고, 다른 학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모든 과는 경쟁률이 다르고, 이미 아실 수도 있지만 독일은 극단적 케바케의 나라로 유명하다. 직접 이메일로 문의해서 답변을 받지 않는 이상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확실하게 해 놔도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불확실성을 뒤로하고 내가 이 글은 쓴 이유는, 콜렉에서 겨우겨우 통과한다 한들 한국에서의 내신 성적, 수능 점수나 대학 학점 등, 꾸준히 노력을 보인 것을 과소평가하지 않으니 지레 안될 거라고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에서다. 원래 콜렉 자체가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서 고등교육을 받게 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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