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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네바 Jul 14. 2023

캐나다 대도시에서 깡시골로

쉽지않은 시골생활



캐나다에서 제일 큰 도시인 토론토에서 지내다가 아주 작은 시골로 지역 이동을 했다. 한평생을 도시에서 살아온 도시인간인 나로서는 엄청나게 큰 도전이었다. 주변에서도 나의 선택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졌고 나 스스로도 이 결정에 대해서 계속해서 많은 고민을 했다.


현재 살고 있는 곳은 사스캐쳐완이라는 주에 있는 아주 작은 타운이다. 원주민과 백인이 주를 이룬 이곳에 오기로 결심한 것은 캐나다에서 계속 살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토론토에서 살아보며 캐나다에서 더 길게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고 고민 끝에 영주권을 도전해 보자는 결론을 내리고 이동을 하게 된 것이다. 영주권은 토론토에서도 도전할 수 있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기간과 계속해서 오르는 물가, 월급의 절반을 차지하는 집세 등을 1년이라는 짧은 워크퍼밋으로 감당하기는 힘들었다. 이제 1년도 남지 않은 워크퍼밋을 가진 외국인을 써줄 로컬잡은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한다 하더라도 영주권을 지원해 줄 곳을 찾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그러던 와중에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사람이 지역 이동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였고 긴 고민 끝에 일단 도전해 보자는 마음으로 일자리를 구해서 이곳에 오게 되었다.



나의 갑작스러운 결정에 대해 주변 친구들의 반응은 아주 다양했다. 잘 될 거라고 응원을 해주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토론토에서도 기회가 많은데 굳이 작은 시골로 가는 이유가 있냐며 걱정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캐나다에 오래 살 특별한 혜택은 없지 않느냐며 냉정하게 말해주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 역시 정보가 하나도 없는 새로운 곳에 가는 도전을 하는 것에 대해 기대가 되는 한 편, 혹시나 안 좋은 일을 당할까 봐 많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너무 섣부르게 결심한 건 아닌지, 나를 위해주는 친구들을 두고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지금 이 순간을 이렇게 낭비해도 되는 게 맞는지, 토론토에서 아직도 경험하지 못한 즐거운 일들이 많고 여름이 시작되어 한창 즐길 수 있는 순간이 왔는데 떠나는 게 맞는지, 나의 즐거움과 미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게 굉장히 괴로웠지만 결국 나는 미래를 선택하고 대도시를 떠나 캐나다 사람들도 잘 모르는 이 마을로 오게 되었다.



떠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더운 날씨에 30킬로 캐리어를 끌고 캐나다 포스트에 가고, 항공권을 예매하다가 오류가 나서 돈을 못 받을 뻔하다가 다행히 돌려받고, 살고 있던 집의 집주인과 렌트 문제를 상의하고,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는 등 떠나기 일주일 동안은 세상 바쁘게 보냈다.



떠나기 하루 전에는 친구들이 준비해 준 편지와 선물을 받고 지하철에서 많이 울었다. 주변에서 쳐다보든 말든 열심히 울었다. 너무 서럽게 울었는지 지하철을 내리던 사람이 '다 잘 될 거야'라고 위로를 해주고 떠났다. 그 말을 듣고 토론토를 떠나기가 더 싫어졌다.


비행기를 타는 날은 하필이면 통신 문제가 발생해서 딜레이가 10시간 넘게 되었다. 밥 먹듯이 딜레이 하는 에어 캐나다였기에 1차 딜레이는 그냥저냥 무시했는데 2차, 3차 계속 딜레이 메일을 받을 때마다 점점 초조해졌다. 심지어 내가 떠난다고 공항에 마중 와 준 친구들도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 나 때문에 시간 낭비를 할까 봐 걱정이 돼서 더욱 불안해졌다. 6시간 정도 딜레이 되었을 때, 더 이상의 딜레이 메일이 오지 않아 급하게 체크인을 하고 들어갔다. 같이 있을 때는 친구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그리고 시간 낭비 하지 않도록 빨리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막상 체크인을 하고 들어가려니 눈물이 났다. 또 볼 수 있을 거라고 말은 해줬지만, 이 친구들과 또다시 만난다 해도 지금처럼 친하게 지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헤어지는 게 너무 무서웠다. 딜레이 동안, "토론토가 네가 가는 게 싫어서 계속 딜레이 시키나 보다"라고 말하는 친구의 얘기를 듣고 나서인지 떠나기 더 싫었지만 이미 일을 벌어졌고 나는 떠나야 했다.

겨우 발걸음을 떼고 정말 마지막 인사를 했고, 마지막으로 친구가 "너는 사랑스러운 사람이니까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모든 사람이 너를 좋아할 거야. 걱정하지 마"라고 한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사스캐쳐완에서도 북쪽에 위치한 이곳에는 한국인이 하나도 없다. 원주민과 백인이 주를 이루고 있고 차가 없으면 살기 어려운 마을이다. 한국인이 없다는 말은 나의 존재가 너무나도 눈에 띈다는 것이다. 마트를 가도, 거리를 걸어도, 식당에 가도 모두가 나를 쳐다본다.

처음에 한국인이 없다는 조건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한국사람으로서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잘 통하는 한국사람이 주변에 존재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좋았지만 워킹홀리데이의 목표 중 하나였던 영어 실력 늘리기를 생각하면 좋지 않은 환경이기도 했다. 토론토는 워낙 다양한 인종이 존재하기에 마음만 먹으면 주변 환경을 영어만 사용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었지만 어렵기도 했고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을 외면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아예 아무도 없는 곳이라면 오히려 외국인 친구도 많이 만들고 영어 실력을 늘리기에 좋지 않을까 하는 편협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막상 이곳에 오니 같이 말을 할 사람은 손님들뿐이다. 하지만 손님들과 하는 대화는 형식적인 대화가 대부분이고 손님들도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신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친구를 사귀기에는 이 마을에는 십 대 청소년 혹은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어른들만 존재한다. 그 중간 세대가 없다.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친구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이 마을에 낯선 동양인 여자가 존재한다는 걸 신기하게 느끼고 구경하고 싶어서 다가오는 사람들만 존재한다. 최근에는 낯선 사람의 스토킹까지 당하기도 했다. 이방인이 된다는 것이 모두가 나를 반겨주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환경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을 이곳에 오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에서도 친구를 만들기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며 노력했지만 결국 나는 이전보다 영어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없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영어 잘하는 사람은 모국어를 많이 하든 아니든 영어를 잘한다. 환경이 아니라 본인의 노력이 더 중요한 거였는데 나는 내 환경만을 탓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고립되었다. 친구가 없고 갈 곳도 없는 이곳에서 내가 있을 수 있는 곳은 집뿐이다. 이곳의 사장은 내가 이곳에 온 뒤로 태도가 바뀌어 처음에 제안했던 제안들을 모두 없앴다. 코워커 말에 의하면 공백 기간 동안 일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마침 나를 알게 되어 이용한 것이고 이제 그 필요성이 없어져서 버린 거라는 충격적인 얘기를 하기도 했다.


"사람을 너무 쉽게 믿지 마."라는 코워커의 말이 매일 귓가에 맴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이런 안 좋은 상황에서도 친절한 사람들을 계속 만난다는 것이다. 내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코워커들은 항상 내 기분이 어떤지, 밥은 잘 먹고 있는지, 불합리한 일을 당하지 않았는지 물어보고 도움이 필요하면 망설이지 언제든지 말을 하라며 먼저 제안을 해주기도 했다. 손님들 중에서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 친구가 된 손님들도 있었고, 장기 거주하는 한 손님은 내가 생각나서 사 왔다며 먹을 것을 사다 준 손님도 있었다. 동네에는 나를 스토킹 하던 이상한 사람도 있지만 그 사람을 조심하라며 먼저 다가와서 알려주던 친절한 사람들을 훨씬 많이 만났다. 일에 대한 문제만 잘 해결되었어도 잘 적응할 수 있었을 텐데 적응한 지 얼마 안 돼서 떠나야 한다는 게 점점 아쉬워지고 있다.

그리고 나름대로 영어도 늘었다. 특히나 '영어로 전화받기'가 조금씩 해결이 되니 영어를 하는 게 좀 더 수월해진 느낌이다. 물론 아직도 통화연결이 잘 안 되거나 발음이 뚜렷하지 않으면 잘 안 들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영어를 하는데 여유가 생겼다.


이곳에 오기 전, 그리고 온 뒤 며칠 동안은 도시가 너무나도 그리웠는데 어느 순간 이곳에 적응한 내가 놀랍고 도시와는 또 다른 매력에 캐나다에서 좀 더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일을 찾아서 이동해야 한다는 게 아쉽다.

처음에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장이 원망스러웠지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사람도 나름의 사정이 있는 게 느껴져서 마냥 미워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오히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 것에 대해 고맙기도 하다.

그렇지만 코워커의 말대로 앞으로는 사람을 무조건 신뢰하지 말아야겠다. 지금은 다행히 주변에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다음에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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