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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chterin 여자시인 May 25. 2022

키스에 관한 이야기

[단편 습작] 내게 와서 목숨을 불어넣어 주오-

(커버 사진 출처: Pexels)





프롤로그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무엇이든 대체로 한 가지 종류의 의미만이 부여되어 있다. 마치 법칙과도 같이 그렇게 다른 생각을 차단당하는 것이다. 다르게 생각을 해 보려고 하자면 상당한 용기마저 필요로 한다. 그리고 다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고 이미 익숙해진 그 단조로운 의미 이외의 생각을 피력하기 위해서 그들을 설득하는 일은 실로 피곤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꽤 자주, 그러한 작업은 보기 좋게 무시당하거나 배척당하곤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진 빠지는 일이기도 하다. 


한 명 이상 두 명 이하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들에는 생각보다 꽤 많은 것들이 있을 수 있다. 그중에서 숨을 나누는 일만큼 서로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확인받는 일이 또 있을까? 사람의 입술과 입술이 서로 맞부딪는 일. 나의 숨결이 너의 숨결을 만나고 호흡이 가빠지는 일. 입을 맞춘다는 것은 벌어진 입술 사이로 교환되는 타액이나 혀의 움직임 이외에도 꽤 많은 것들이 전해지기에 언제나 신비스럽다. 


숨을 쉬고 말을 하고 음식물을 섭취하고 타액을 만들어내는 기관을 서로 포개는 데에는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우리가, 나는 너를 너는 나를 해치지 않고 미끌미끌하고 축축한 가운데 받아들이겠다는.


키스는 성별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가급적 서로의 감정을 확인할 목적으로 혹은 섹스로 가기 전 단계로서 코스요리의 애피타이저 같은 것, 끈적끈적하고 사뭇 에로틱한 것이기만 할까? 키스 없는 섹스가 가능하듯 섹스 없이 키스만으로는 절정에 다다를 수 없을까? 우리가 키스를 할 다른 이유는, 키스의 다른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 수 있을까?


도대체 키스는 단순한 행위인 것일까, 아니면 하나의 사건인 것일까? 섹스에 비해 키스는 너무 저평가되었거나 지나치게 많은 판타지로 덧칠되어왔던 것이 아닐까? 





나는 계속해서 며칠 째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수일 전의 하루, 아직도 해가 기세 등등하게 온 세상을 훤히 비추고 있던 오후 다섯 시 즈음 나는 입을 맞추는 두 사람을 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늘상 지나는 골목길 한쪽 귀퉁이에서 그들은 온 세상을 잊고 서로의 목숨을 나누고 있는 듯했다. 헤벌린 입술 두 개가 서로를 포개어 들숨과 날숨을 불어넣는 그 광경을 목격했다. 


도대체 왜 밤은 나를 그냥 내버려 두는 법이 없는 것일까? 밤과 나 사이에는 마치 운명처럼 끈덕진 무엇인가가 놓여있기 때문일까? 


밤은 나를, 나는 밤을. 


서로에게 자석처럼 달려들어 그대로 그렇게 밀착하여 맞붙어 버리는 것이다. 그 밤이 매번 새로운 아침의 침입에 밀려나 슬그머니 잠시 어딘 가에 몸을 숨기러 들 때까지 말이다. 그러니까 그런 많은 밤들 중에서 어느 날, 그 어느 날 밤의 일이었다. 


정말 정말 문득, 그게 또 하필이면 밤 한가운데 나는 가슴이 다시 또 세차게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야 말았다. 강풍에 유리창이 덜컹거리듯이, 창틀에 낀 얇은 유리판이 곧 깨질 듯이.  밤이 나를 자꾸만 흔들어 깨운 탓이었을까? 밤의 환각에 사로잡히면 신기하게도 정신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또렷해졌다. 


나는 그날 밤, 침대 한가운데에 암모나이트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헐벗은 채 바람 부는 벌판에 홀로 덩그러니 놓인 새끼 들짐승처럼 온몸으로 그 덜컹거림을 속수무책 받아내고 있었다. 이미 어깻죽지에서부터 내려오는 팔뚝을 둘러싼 피부에는 소름이 잔뜩 돋아있었다. 그리고는 그는 짧은 탄식처럼, "아아..."  같은 대략 이런 비슷한 종류의 소리를 입 밖으로 만들어 냈다.  


나는 곧 이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키스... 하고 싶어.'




언제든 얼마에 한 번씩 앞가슴을 풀어헤치고 내 손으로 내 가슴을 주물럭 거렸다. 그로써 얼마쯤은, 꼭 누가 나를 만지지 않아도 손길의 외로움과 같은 그런 식의 외로움에는 대처할 수 있었다. 남자들이, 특히 나를 반드시 흥분시켜야만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마저 가졌던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만났던 남자가 끈덕지게 속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내 젖무덤을 헤집었을 때 보다도, 종종 나는 나 혼자서 더 익숙한 쾌감을 느끼곤 했으니까. 


이제와 생각해보면 나를 거쳐갔던 남자들에게는 꽤 미안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내게 완전한 의미에서의 느낌, 그러니까 이를테면 배려받는다라는 느낌, 내가 너의 욕구를 배설하는 장치에 불과했던 게 아니라 적어도 온 마음을 다한 행위였다는 느낌과 같은 것들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들은 꼭 한결같은 나르시시즘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과대평가하고 있었고 스스로 제 멋대로 만족해서는 행위가 끝난 뒤 사지를 축 늘어뜨리고 그대로 곯아떨어지거나 저 혼자 도취되어 기뻐하였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런 식의 모습들에서 일종의 유치함을 느꼈고 점차 지나서는 깊은 역겨움을 느꼈다. 한편 최종적으로는 그들이 참 안됐다는 측은함마저 느꼈다.


내가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갈증은 다른 데 있었다.
그것은 입술에의 갈증이었다. 


 입술은 신비한 기관이라고 언제나 생각해 왔다. 입술에서 나오는 것 중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것은 말이고 입술이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키스이다. 모든 키스들은 그대로 입술에 저장된다. 각인되는 것이다. 다만 그 기억을 야무지게 보관하지 못한 탓에 언제나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그럴 때에는 말만 하거나 키스만 해서 둘 다를 모두 한 벌로 망각해 버리지 말고 차라리 말을 하면서 키스를 하거나 키스를 하고 나서 말을 하면서 입술이 할 수 있는 다양한 행위들 중에서 가장 인간에게 특화된 것 두 가지를, 그 능력을, 그 능력이 행해졌던 기억만큼은 잊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키스는 즉물적이거나 혹은 그마저도 되지 못한 즉흥적인 쾌락의 결과로, 오직 그랬을 뿐이었던 것으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다. 키스는 존재와 죽음을 가르는 경계 선상에 놓여있다. 생의 영역 쪽으로 기울여 놓여있다. 키스는 죽은 자를 살릴 수 없지만 산 자를 죽일 수는 있다. 산 자에게 잊을 수 없는 키스와 그 키스의 연속적인 부재는 지독한 외로움을 동반하므로. 외로움 끝에 산자는 죽어버릴 결심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또한 키스는 산 자를 더욱 살아있게 만들기도 한다. 차라리 이 편에 주목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살아있는 자를 더욱 생활하게 하는 것. 더욱 몰입하게 하는 것. 그 생생한 숨결을 단 번에 빨아들이고 또 내뿜고 교환하는 것. 서로의 산소를 불어넣어 주는 것. 해서 그 순간만큼은 맞붙은 두 개의 숨결이 어떤 시너지 같은 것 마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살아갈 힘이 약해져 있을 때 타인의 힘을 수혈받는 것이다. 


나는 휴대폰의 주소록을 눌렀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두서없이 뒤섞여 자음과 모음 순으로 저장되어 있었다. 나는 그들의 이름과 전화번호로 그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 나의 휴대전화기가 그들의 휴대전화기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서로의 휴대전화기에 탑재됨으로써 언제든 서로의 일상에서 휴대 가능한 존재들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름자와 연락처로 나타나는 그 많은 사람들을 가장 위에서부터 한 명씩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그들의 얼굴과 이름자를 일대일로 매칭 시켜보려고 하였다. -적어도 내가 얼굴을 알고 있어서 떠올릴 수 있는 사람들에 한하여- 그러다가 나는 아주 아주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얼굴도 제대로 떠올려내지 못하고 있는 답답한 상황 속에 놓이게 되었다.


잠에 들지 못하는 밤에 잠을 자려고 뜀뛰기를 하거나 따끈하게 데운 우유에 꿀을 한 티스푼 정도 타서 마시는 등의 행위를 하는 것 말고, 그 대신에 할 수 있는 일로서 이러한 얼굴 맞추기 놀이는 썩 적합하지 못하다고 느끼고는 곧 시들해졌다. 


벌써 여러 날 째, 밤은 말갛게 밀려오는 아침에 부서져가고 나는 하얀 얼굴로 아침을 맞는다.






그가 보낸 메시지 알림이 휴대폰 액정에 깜빡이며 나타났다 이내 곧 화면은 어두워졌다. 

지금 나에게로 오는 중이라는 메시지였다. 



나는 오늘만큼은 그에게 꼭 이걸 물어보고 싶다고, 물어봐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왜 너는 날 보러 오고 나와 만나고 나를 사랑하면서 왜 단 한 번도 입을 맞추지 않았느냐고.


이 결심에는, 나는 충분히 뜸을 들인 후 그의 입에서 흘러나올 답변을 경청할 것이라는 것까지 포함되어있다. 도중에 말을 끊지 않을 것이며, 그게 얼마나 대단하거나 또는 얼마나 시시하거나 그 내용에 상관없이 그에게 건네준 발언권을 끝까지 지켜줄 것이라는 것까지.


이 결심에는 또 한 가지가 더 포함되어있다.


그의 발언이 끝나고 나면, 나는 그에게 꼭 이걸 요청할 것이다.


나와 이제 그만 만나 달라고.


그가 돌아가고 나면, 나는 욕조에 한가득 더운물을 받고서 거품입욕제를 통째로 풀어서 흡- 하고 한숨 깊이 들이마신 뒤 얼굴까지 물속으로 잠겨버릴 것이다. 나는 오늘 꼭 이 결심을 이행할 것이다.

욕조에서 빠져나오거든 새하얗게 잘 빨아 말린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새로 산 속옷을 꺼내 입고 가장 편안한 홈웨어를 갖춰 입을 것이다.

나는 또 차를 한잔 우려내어 마실 것 같고 그리고.. 그리고 또 이제부터는 대낮의 골목길에서 헐떡이는 숨결을 서로 나눠먹자는 사람을, 목숨을 나눠주겠다고 하는. 이제부터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날 것이다. 

이것이 나의 두 번째 결심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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