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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chterin 여자시인 Jun 28. 2022

그냥 일단 막 쓰고 있습니다만

브런치에서 타깃 독자나 주제 설정 없이 글을 써 재끼는 자의 표류기


(커버 사진: Pexels)




일단 쓰고 봅니다


여기까지 오는 것만 해도 참으로 오래 걸렸다. 최근 들어 꽤 심각한 글태기 혹은 슬럼프를 겪기도 했었고 내가 가진 여러 가지 이율배반적인 점들에 대해서 더욱더 선명히 자각하게 되며 의기소침한 나날들을 보냈으니 말이다. 일단은 가타부타 군말 붙이지 않고 쓰고 보자는 심정으로 자리 잡고 앉아 다시 뭔가를 써 볼 결심을 세운 것만 해도 스스로에게 대견해할 일이다.


​이런 식으로 먼저 자기 수용을 빙자한 자기 위안을 잔뜩 해주고 돌아서니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것은 바로 현실이었다. 일단 계속 쓰고 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기본 중의 가장 으뜸가는 기본기가 꾸준함과 성실함이 아니겠는가. 그마저도 어떤 날은 수월하고 어떤 날은 흔들리는 일이 잦은 나에게 겨우 기본기라도 잃지 않으려는 한편 현실의 무게도 무겁기는 하다. 사실 무겁다기보다 아주 그냥 맵다, 매워.


콘텐츠 크리에이팅을 하겠다며 글을 씁네 마네 하고 있지만 블로그도 그렇고 브런치도 그렇고 그나마 혼자 주절거리는 용도로 하나 파두고 소소하게 농사짓듯 (그래 봤자 진작에 이 농사는 흉작임이 틀림없다) 하고 있는 아무도 안 보는 유튜브 채널까지 하나같이 세간의 주목을 받아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말 다 한 거다. 관종끼는 다분 하다만 자의식만 병리적으로 비대해진 상태이지 이거야 원 실상 뚜껑 열어보면 아무것도 없는 거다. 그 이유는 일단 검색이 잘 안 되는 내 콘텐츠들이고, 알고리즘이 내 글이나 영상을 잘 추천해 줄 수 없게 되고 그러다 보니 늘 저조한 조회수로 초라함을 떨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나 알고리즘을 운운하기 전에 먼저 제일 중요한 것은 콘텐츠의 질이다. 내용이 좋으면 사람들은 귀신같이 알고 득달같이 달려들게 뻔하다. 특별히 문장이 유려하다 하여 많이 읽히고 각광받는 글이 아니며 영상미가 끝내준다고 반드시 인기가 많은 영상인 것도 아니라면, 결국 진검승부를 봐야 할 대목은 내용이다. 그냥 아무 내용 말고, 구체적으로 어떤 정보를 이 정보가 무엇 때문에 왜 필요할 누군가에게 어떻게 전달을 해줄 것인가 라는 수요에 대한 공급의 자세로 접근해서 제작해야 그 콘텐츠는 주목을 받고 더 나아가 하나의 완제품으로서 가치를 얻는다. 여기에 이미 다 나와있는 것이다. 누구에게, 무엇을, 왜,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파악이 나부터가 먼저 안 되고 있는 상태이다.

일단 쓰고 보다 보면 어떻게든 가닥이 잡혀가겠지 라는 나이브한 심정으로 시작은 하였는데 향후 방향성을 타진해 보자니 막막하다. 순수한 열정만 가지고 글쓰기가 너무 좋고 혼자 방송하듯 떠드는 것도 너무 재밌어서 하기에는 기왕이면 이걸로 돈을 버는 것 까지는 정말 언감생심이라면 그저 활성화시켜서 독자층을 탄탄히 확보하는 것이라도 하고 싶다는 욕심 아닌 욕심이 올라온다. 그러려면 누구를 독자층으로 삼을 것이며 그들에게 무슨 유의미한 이야기들을 들려줄 것인지를 정해야 하는데 매번 여기에서 막혀버린다.


낭독도 너무 하고 싶은데 다른 건 저작권에 골치아플 것 같아서 내가 쓴 시 아무도 안읽어주는 것도 서러우니 저작권 위배되지 않는 ‘원작자’가 지가 쓴 시 지가 읽는 컨셉으로 시 낭송도 하는데도 그냥 모든 것은 숫제 내 개인적 즐거움을 위한 행위예술이다.



그렇고 그런 실정이지만 일단 오늘도 나는 닥치고 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종국에는 솥바닥에 눌어붙어 홀라당 태워버리게 되더라도 일단 되는대로 나는 써재끼겠다. 이것은 벌써 오기이다.




청개구리 심보


꼴통도 이런 골 때리는 꼴통이 따로 없는데 그게 바로 나라는 작자다. 블로그는 작년에 다시 시작했으나 올해 브런치 활동을 시작하며 손에서 놨더니 순 이상한 광고성 댓글 (해당 내용과 전혀 무관한 뜬금포 이모티콘 스티커만 떡 하나 투척하는 식의)이 달리고 블로그 마케팅 용도로 팔아보지 않겠냐는 쉰소리나 해대는 쪽지들만 들어오는 공간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브런치도 일단 글은 계속 이런저런 매거진들을 작성해서 나름대로 그 주제에 맞는 글들을 올리고는 있지만 생각보다 활발하게 글이 나오지 않고 차라리 브런치북 형태로 된 공통주제의 모둠 글이라도 다수권 확보하고 싶었으나 이게 잘 안되고 있다. 대신에 무엇을 하느냐 하면 남들이 쓴 것을 열심히 읽고 열심히 즐거워하고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이들이 이렇게 재밌게 잘 써서 나는 더욱더 못쓰겠다는 생각만 굳어지고 있다.


남들이 좋아하고 관심 있어 하는 주제들을 찾으려면 브런치의 경우 ‘브런치홈’ 이나 주제별로 검색 가능한 ‘브런치 나우’에 들어가서 카테고리별로 특징들을 파악할 수 있겠다. 또한 각종 키워드 찾아주는 사이트들, 네이버 뉴스, 기타 등등 팁들은 차고도 넘친다. 문제는 그런 것들에 내가 가진 나만의 노하우나 정보나 무엇인가를 섞어서 ‘꿀팁’적인 유용함을 겸비한 콘텐츠로 치환할만한 거리를 스스로 찾아서 매칭 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칭을 못하는 것에 더해서 나는 그냥 일단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용도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이다. 물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아주 기발한 것이라면 나는 그야말로 ‘덕업 일치’를 이루며 가만히 앉아서 하고 싶은 걸 만들어내면 누가 와서 많이들 이용해 주면 좋겠다마는 내가 관심 있어서 쓰고 말하고 하는 것들은 나라는 굉장히 좁은 세계에서만 유효한 것이다 보니 확장이 안된다. 그래도 하고 싶으면 확장을 하면 될 텐데 여기서 골 때리는 청개구리 심보가 나오는 것이다. 남들이 조언해주는 ‘이러이러한 것을 해봐’ 같은 것은 조금도 도움이 안 된다.


얼마 전에 서로 알고 지낸 이래로 처음으로 한 친구에게 사실은 나는 글을 쓰고자 하는 열망이 있고 나름 시도 깨작거리고 원래는 소설을 쓰고 싶지만 결국 못쓰고 있고 그래도 글을 쓰고 싶어서 브런치라는 이런 공간에서 글을 쓴다고 고백 아닌 고백을 했었다. 눈을 반짝반짝하며 듣고 있던 그 친구도 역시 내 주변에 차고 넘치는 별수 없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는 점만을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조금도 도움 안 되는 조언을 되게 선심 쓰고 신경 써서 해주는 것처럼 하는 사람들이다. 뭐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이런 걸 써봐라 하는데 그 순간 알았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죽어가며 ‘브루투스, 너마저도!’라고 외마디를 내 질렀듯이 ‘이 기집애야, 너마저도, 너까지도 그러냐’ 싶어서 벌써 나는 미쳤다고 그런 고백을 했나 입을 꿰매버리고 싶었다. 결국 나는 돈벌이 수단도 안되고 그냥 취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글을 쓴답시고 오두방정 떨고 있는 병적인 자의식 과잉상태에 빠진 인간에 불과함만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다.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해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서 자의식만 팽창한 인간의 장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은 뒷목 잡고 껄떡대고 숨이 막혀 답답해하겠지만 아랑곳 않고 꼴통 기질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 세계에서 굶어 죽을지언정 말이다. 아직까지 배가 덜 고팠는지 남들이 하자는 대로 하라는 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도통 동하지 않는다. 아직 나는 남보기에 답답하고 하잘것없지만 이대로 이게 또 썩 나쁘지 않은가 보다. 좋은 걸 어떡하냔 말이다. 그나마 자기애라도 있었기에 망정이지 없었으면 벌써 삶의 의지를 잃고 어디 인근 야산에서 목 매달린 변사체로 발견되어있지 않았겠나 싶은 끔찍한 상상도 이따금 한다. 그래도 나는 이런 내가, 이런 글이라도 이런데라도 이렇게라도 쓸 수 있는 내가 좋은가보다. 약도 없는 병이다. 불치의 병이다.


중요한 것은 ‘나 다움’이 보장되는가이다. 제아무리 이런저런 코치를 받아서 이런저런 키워드를 잘 버무려 넣고 이런저런 테크닉을 써서 검색어 상위 노출을 하고 그러다가 운 좋으면 팬층도 확보되고 매일매일 전담 팀까지 꾸려서 요새 브런치를 이 잡듯 뒤진다는 많은 출판사의 에디터님들 눈에 띄어서 출간제의라도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허나 그 모든 것들이 내가 나다움을 지우고 그 위에 그저 세상적인 성공 공식대로 문제를 풀었다 한들, 문제는 풀어서 만점을 받았다 해도 가슴속에는 공허함이 메아리를 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해서는 얼마 못가 정신적인 부작용이 클 것 같다. 가장 좋은 것은 성공 공식에 내가 너무 이질감 들지 않고 진정성 있는 나만의 콘텐츠를 접목시켜서 수확을 얻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빨리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아무렇게나 찍어내듯, 너무 약삭빠르다 싶을 정도로 거기에만 눈멀어서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창작하는 영역에서만큼은, 그게 남보기에 어떻더라도 순수하게 내 선택과 결정과 주관이 오롯이 들어가서 활개를 칠 수 있는 성스러운 영역으로 확보해두고 싶다. 세상에 타협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창작의 성역에까지 다 타협을 해야 한다면 나는 설 자리를 잃은 슬픔에 오래 잠길 것 같다. 앞으로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으면서 소위 말하는 성공에 도달하기까지 스트레스받지 않고 쪼들리지 않고 할 수 있는 환경을 내가 나에게 만들어줘야겠다. 유튜브에서 유명해진 그림 그리는 ‘이 연’ 이라는 분이 한 영상에서 쓱싹쓱싹 펜으로 드로잉을 하며 한 말이 인상 깊었는데 대략 이런 말이었다:


저는 제 자신을 손에 물 안 묻히고 곱게 키우고 싶은 막내딸 대하듯이
그렇게 대해주고 싶어요. 그림 그리는 것만큼은 그걸로 뭔가를 포기하고
타협하지 않아도 되게 다른 일을 해서 그림 그리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내가 나를 부양하고 돌봐주면서 내가 나 고생 안 시키도록 하고 싶어요.


나는 이 유튜버처럼 슥슥 기가 막히게 그림을 잘 그려내는 재주도 없고 개뿔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도 나도 나를 귀하디 귀한 막내 딸내미 키우듯이 내가 글 쓰고 좋아하는 일들 가지고 세상 풍파에 찌들면서 살지 않을 수 있도록 내가 나를 부양해주면서 확보된 물질적 토대를 바탕으로 마음에 안심을 하면서 천천히 얼마가 걸리더라도 여한 없이 해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싶다. 그 생각만은 굳건해지고 있다.


배우이자 모델인 유태오의 이모 같은 연상의 사진작가 아내 니키 리가 자기 남편 무명시절 때도 돈은 자기가 일해서 벌면서 남편은 모델이랑 배우 지원 계속할 수 있도록 해줬다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남편의 최고 매력은 특유의 소년미 인데 현실에 찌들어서 나가서 일하고 돈 벌고 하면 형편은 나아질지 몰라도 고유의 매력포인트가 때 묻을 수도 있다면서 돈은 자기가 벌면 된다며 덧니를 드러내고 웃던 그 여자의 해맑은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바로 이거다 싶었다. 자의식 과잉도 창작자의 특성이자 자산이라면 나는 그것도 뽕 뽑아 먹을만한 밑천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밑천 삼아 배짱 삼아 꼴통이라면 꼴통 하라지 뭐 이러면서 조금 더 지속해나가고 싶다. 그러는 가운데 차츰차츰 나만의 깨달음이 오는 순간이 반드시 있을 거라고 믿는다. 누가 이게 좋다더라, 이걸 쓰면 대박 난다더라 해서가 아니라 200프로 내 안에서 솟아오르는 가장 나 다운 동기부여가 이루어지면, 나 다운 아이디어로 나만의 목소리를 갖춰서 그걸 들려줄 사람들을 모으고 싶다.


결국 쓰고 보니 답정너였다.

‘왜 이렇게 글을 못쓰지, 글이 안 써져,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하고 불안해했으면서도 막상 까 보면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불안하긴 한데 그래도 나는 조금 더 내식대로 있어볼래. 그러니 내가 불안해하더라도 거기에 뭐 조언해주려고 하지 말고 그냥 불안해하고 그러면 아, 얘가 또 좀 불안해서 불건강한 답정너식 행동이 나오는구나 정도로만 봐줘.’


에라, 일단 쓰고 봤더니만 결국 여기 와서 끝을 맺는다. 내 안에 답은 이미 내려져 있으니 나는 그걸 그냥 그대로 해 나가 보련다.

타깃도 메시지도 일관된 주제도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쓸 수 있는 내가 나는 좋다, 이런 내가 좋다. 나라서 좋다.


아, 나는 나르시시스트임에 틀림이 없다.

벌써 또 주제가 한 가지 더 늘었다. 이다음에는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글을 쓸 수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오늘도 나는 이렇게 브런치라는 콘텐츠의 바다에서 두둥실 떠다니며 표류를 즐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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