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에는 특별한 학생이 있다. 구미는 내가 사는 곳과 거리가 있지만 학생의 학구열은 그 거리도 무색하게 할 만큼 뜨겁다. 주로 통화로 단어나 문장을 묻고 카톡으로 정확한 글자를 적어 보낸다. 때로는 부족한 실력의 선생님임에도 끊임없이 수강을 해주는 넓은 마음을 가진 학생은 80 연세에 접어드신 나의 할머니이시다.
"민지가 할매 과외선생님 해라"
나에게 기막힌 지위까지 선사해주시는 할머니를 보며 과분한 사랑을 느낀다. 어릴 적부터 바쁜 부모님보다 할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할머니에게 학교 선생님 자랑도 하고 못된 친구를 흉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유치한 이야기였을텐데 70대 할머니는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들어주셨고 난 수다쟁이가 되어 외로움을 잊곤 했다.
하지만 글을 모르신다는 건 어른이 되고서야 알게 되었다. 한국전쟁을 직접 겪어 격동의 시간을 보냈을 할머니 세대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글을 모른다는 것을 자식들이 장성할 때까지 숨기셨고 나와 식구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지나간 순간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할머니의 집에 가면 모나미 펜으로 눌러 적은 빼곡한 한글 공책이 있다. 내가 본 어떤 필체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필체임에도 할머니는 삐뚤빼뚤한 필체라며 더 열심히 적겠다고 하신다. 할머니를 보며 배움이란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고 결코 고갈될 수 없는 노다지의 터임을 깨달았다. 또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할머니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어느 날 구미에서 할머니가 스마트폰을 사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평생을 '효도폰'이라는 폴더폰을 사용하신 터라 가족들은 기능이 복잡한 스마트폰의 사용을 극구 말리셨지만 할머니의 성화에 개통하셨단다. 가끔 젊은 우리도 어려워하는 스마트폰을 처음 맞닿드린 할머니에겐 얼마나 당황스러울 일인가 싶어 바로 할머니 집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하루가 지나자마자 할머니에게 스마트폰은 애물단지가 되어 있었다.
"가서 바까뿌까- 싶으다."
할머니의 지친 말씨에 밤새 머리를 싸매고 계셨을 모습이 떠올라 안타까움 반, 귀여움 반의 마음이 들었다.
나의 말에 할머니는 서서히 긴장을 푸시며 평소 나와 한글 공부하는 것처럼 여러 가지 사항을 말씀하셨다. 일단 시계는 한눈에 보이게 커야 하고, 연락처를 찾을 방법과 카톡 사용 방법 등등 한을 풀어내듯 궁금한 점을 말씀하셨다. 누구 없이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갑자기 발생할 난감한 상황을 재현해야 했고 방법을 외울 수 있도록 달력을 찢어 뒷면에 글자와 그림을 큼지막하게 적어두었다. 할머니는 지난 새벽 내내 하신 고뇌들을 쏟아내듯 엄청난 질문을 하셨고 생각보다 일이 커져버린 지금 상황에서 서로 웃어보이기도했다. 수많은 반복 끝에 사용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들을 완벽히 완수하시고 나서야 한결 편해진 표정을 지으셨고 나도 안도의 마음을 쓸었다.
시간이 지나 할머니가 그토록 스마트폰을 갖고 싶어 하신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얼마 전 가족여행에서 우리들은 찍은 사진, 영상을 자연스레 카톡으로 공유하고 기록했다. 요즘 세상에 사진을 남기고 꺼내보는 건 일상적이고 너무도 쉬운 일이지만 너무나 변해버린 세상이 낯설고 어려웠을 70대 할머니였다. 하지만 우리처럼 할머니께서도 함께했던 순간을 남기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었고 시끌했던 긴 여행 끝에 평소보다 더 적막했을 집에서 그 추억들을 다시 꺼내보고 싶진 않으셨을까. 나에게는 아직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 세상에 머무를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만 할머니에게는 어제의 여행이, 오늘에 손주의 재롱이, 내일에 가족들의 웃음소리를 맘껏 누릴 남아있는 시간이, 그들을 향한 할머니의 모든 사랑을 담기에는 부족하실 거란 생각을 하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가족들은 나로 인해 할머니께서 스마트폰을 쓰시게 되었다고 하시지만,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할머니의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기에 그 몫은 나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할머니는 가끔 가족 단톡 방에 알 수 없는 초성을 남기신다. 알고있는 글자를 총동원해 단톡을 읽었을 할머니가 어떤 마음으로 우리의 이야기들를 읽어보시고 답을 했을지 짐작이 가니 미소가 지어진다. 그렇게 할머니께서 조금 스마트폰에 익숙해졌을 무렵 어느 날 사진 한 장이 가족 단톡 방에 올라왔다.
민지야 할머니는 너를 사랑해 아들 딸들아 엄마는 너무 행복하단다
할머니의 진심은 아마 모두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언제나 모자란 손녀에게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시고 여전히 통화를 끊을 때마다 "사랑한다"며 마무리 지으시는데 그 모습이 참 곱고 소녀 같다.
최근 브런치에 입문을 하면서 무게를 달고 글을 쓰며 마음이 담기지 않은 글은 과감히 삭제를 한다. 처음부터 글을 쓸 때 멋지지않아도 되고 거창한 수식어도 필요치않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에게 가장 크게 울림을 준 글은 할머니의 고르지 않지만 사랑이 담긴 필기였기 때문이다. 모난 맞춤법이라도 글에 진심을 담는 법을 이미 잘 아는 할머니는 너무도 청출어람이라 나는 더 겸손해지며, 오히려 할머니는 나에게 항상 앞으로 내가 품어야하는 인생의 교훈과 조언을 주시는 선생님이시다. 또 가족의 큰 어른으로서, 5남매의 어머니로서, 손주들의 할머니로서 또 한 여자로서 살았을 그녀의 인생에 박수를 쳐주고 싶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