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가명)이를 만나러 가면서 저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여러 가지 선입견이 있었거든요. 아이들 글쓰기 코칭을 할 때 보통 여자아이들은 낯가림이 심했습니다. 저와 대화를 통해 이야기 소재를 잡고 글을 써야 하는데 대화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우리가 만난 곳이 카페였습니다. 아이가 편안해하는 집이 아니라 낯선 환경의 카페에서 글쓰기를 해야 했습니다. 나이도 초등학교 1학년인 여덟 살. 과연 오늘의 코칭 수업이 잘 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수정이는 분홍색 책가방을 메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있었습니다. 손에는 공주 그림이 가득한 스케치북이 들려있었지요. 저는 수정이의 분홍 분홍 한 여러 가지 소품에 대해 말을 걸었습니다. 어떤 캐릭터를 좋아하는지, 시크릿 쥬쥬를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지,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요즘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아이는 줄넘기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매일 30개씩 줄넘기 연습을 해요.”
“오 그렇구나. 힘들지 않아?”
“괜찮아요. 저도 다른 친구들처럼 잘하고 싶거든요.”
“잘하는 친구들 보면 어때? 나는 왜 안 될까 속상해?”
제 딴에는 아이의 감정과 생각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정이는 ‘왜 속상하지?’라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니요.”
“잘하는 친구 보면 나도 막 잘하고 싶고, 쟤가 틀렸으면 좋겠고 그렇잖아?”
“저는 더 열심히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 그렇구나.”
아이의 맑은 대답에 머리가 다 시원해질 정도였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리더군요. 사실 잘하고 싶으면 그냥 연습을 더 하면 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은 ‘왜 안 될까.’ 스스로 자책하거나, ‘저 아이가 틀렸으면 좋겠다.’ 남을 시기했지요. 그런 제 마음을 깨닫고 부끄러웠습니다.
“수정이는 줄넘기를 어떻게 잘하고 싶어? 안 걸리고 여러 개 뛰었으면 좋겠어? 아니면 걸려도 좋으니까 오랫동안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저는 2단 뛰기를 하고 싶어요.”
확고한 수정이의 표정이 너무 귀여웠지만 저는 절대 웃지 않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우리의 대화는 고스란히 글에 담겼습니다. 수정이가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완성한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목: 줄넘기
줄넘기를 잘하고 싶다. 왜냐하면 친구들이 잘해서 나도 더 잘하고 싶다. 좀 더 연습해서 친구들을 따라잡을 거다. 근데 연습할 시간이 별로 없다. 그래서 아쉽다. 연습할 시간을 더 늘릴 거다. 꼭! 잘하고 말 테다. 2단 뛰기를 하고 싶은데 나는 하나도 못 한다. 2단 뛰기를 잘하는 친구가 있는데 내가 연습을 해서 더 잘하고 말 거다.
수정이의 결연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시나요? 이 글에는 어떤 미사여구도 없습니다. 1학년 때 학교에서 배우는 의성어, 의태어 등 꾸며주는 말도 없습니다. 그러나 수정이의 마음은 그대로 느껴집니다. 이 아이가 글을 쓰는 이유, 즉 ‘줄넘기를 꼭 잘하고 말겠다는 다짐’이라는 작가의 의도가 그대로 느껴집니다. 글은 이래야 합니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뛰어난 문장과 아름다운 비유는 인상적으로 전달하게 하려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간혹 그런 뛰어난 표현이 담기지 않으면 좋은 글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부러, 억지로 이상한 표현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블로그나 SNS에 게재된 많은 글들이 그렇습니다. ‘좋은 글’, ‘잘 쓴 글’에 대한 압박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압박을 우리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좋은 글에 대한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고 박완서 작가님의 유명한 문장이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아이들이 더우면 걷어차고 필요할 땐 언제고 끌어당겨 덮을 수 있는 이불 같아야 한다.> 이 문장은 어떤 마음으로 나온 것일까요?
저는 이 문장을 읽을 때 ‘더우면 걷어차고’라는 말에 덜컥 걸렸습니다. 아마도 아이가 내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아서, 엄마인 내 존재를 우습게 보는 것 같아서 평소 불만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매일 아침 아이를 깨우면서 보았던 그 이불, 발에 차여 쭈글쭈글 구겨져 있던 그 이불이 생각나서 참 씁쓸했습니다. 하지만 문장을 곱씹으며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래도 박완서 작가님은 ‘끌어당겨 덮을 수 있는 이불’에 더 방점을 두신 게 아닐까. 만약 이 문장의 앞뒤 순서가 달라져서 “부모의 사랑은 필요할 땐 언제고 끌어당겨 덮을 수 있는 이불 같아야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더우면 걷어찬다.”라고 했다면 보다 냉소적인 문장이 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작가님은 ‘끌어당겨 덮을 수 있는 이불’을 뒤에 놓아 보다 따뜻하고 포근한 부모의 사랑을 강조하셨습니다.
멋진 문장이라는 것은, 멋진 표현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요. 부연 설명 없이 문장 하나로 온전히 뜻을 전할 수 있는 상태요. 그러나 그런 경지는 아무나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멋진 표현에 대한 강박도, 지레 겁먹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은 자신의 마음이 담길 때 좋은 글이 됩니다. 그러므로 화려한 표현법을 궁리하는 것보다 내 마음의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좋은 글쓰기에 더 유리합니다.
아이에게 글쓰기를 지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표현이나 멋진 비유 등을 강요하기보다 아이의 마음에 집중해주세요.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는지, 친구에 대한 부러움인지, 너무 약이 올라 복수하고 싶은 마음인지, 자기가 알고 있는 걸 자랑하고 싶은 마음인지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대로 글에 담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마음은 마음이 알아보는 법. 그런 글은 읽는 사람에게도 즐거움을 주고 쓰고 있는 아이 자신에게도 재미를 줍니다. 재미를 느끼면 계속 씁니다. 계속 쓰려면 계속 생각해야 합니다. 계속 생각하면 스스로에 대해 잘 알아가게 됩니다. 자신을 깊이 알게 되면 어떤 상황에도 잘 흔들리지 않아요. 소위 말하는 자존감은 그럴 때 발현되지요. 아이의 마음속 이야기가 그대로 드러나면 독창적인 문장도 간혹 나온답니다.
“나는 어젯밤에 콩콩이 타기 연습을 했다. 집에서 잠을 잤는데 콩콩이를(콩콩이에서) 안 떨어지고 천만 번 했다.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깼다. 참 신기하고 재미있고 성공적인 꿈이었다.”
“오늘은 친구랑 형, 나랑 칼싸움을 했다. 칼을 휘두를 때 바람이 불어서 시원했다. 또 영화에서 싸우는 것 같았다. 내 몸통에 칼이 닿을랑 말랑했다. 다음에는 이기고 말겠다.”
“난 어제 유치하긴 하지만 아주 맛있는 젤리+사탕인 것을 먹으며 그리기 활동을 했다. 하지만 슬픈 일이 있었다. 모냐면(뭐냐면) 시간이 별로 없어서 못 그렸다. 아쉬운 생각이 너무 많이 든다.”
모두 1학년 아이들이 쓴 일기의 한 부분입니다. 어떠신가요? 아이만의 감성이 담겨있고 그 아이만의 독창성이 느껴지지 않나요?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멋진 표현은 없지만 본인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로 이루어진 문장입니다. 멋진 표현이 들어가야 좋은 글이라는 생각이 없다면, 아이 글 그대로의 반짝임과 즐거움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