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글쓰기 코칭을 할 때 저는 그 아이가 그동안 써왔던 일기를 봅니다. 아이의 글 실력을 가늠해볼 수 있고, 주 관심사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아이들의 일기는 보통 나열식입니다. 예를 들면 ‘오늘 친구랑 놀이터에서 놀았다. 숨바꼭질을 했는데 재밌었다. 학원 차가 와서 미술학원에 갔다. 집에서 숙제를 했다. 너무 힘들었다. 내일 또 놀아야지.’처럼 했던 일들을 쭉 나열하고 마지막 감상을 적는 형태입니다. 순서도 자기가 생각나는 대로 쓰기 때문에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이런 아이의 일기에 답답함을 느끼시겠지만 이렇게 쓰는 것이 보통입니다. 만약 우리 아이가 한 가지 에피소드만 잡고 일기를 쓰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것입니다. 칭찬해주세요.
아이들이 나열식으로 일기를 쓰는 데는 두 가지 심리가 있습니다. 첫째는 ‘내가 한 걸 다 써야 한다’입니다. 예를 들어 놀이터에서 친구와 논 이야기를 쓰려는데 친구랑 숨바꼭질도 했고, 얼음땡도 했고, 그네 타기도 했으니까 그것을 다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줄줄줄 나열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럴 때는 그중 한 가지 이야기만 잡고 쓸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됩니다. 아이가 그중 뭔가 하나만 쓰겠다고 하면 그것에 관해 질문해주시고,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면 부모님께서 아무 거나 한 가지만 잡고 집요하게 질문을 던져주세요. 예를 들어 그네 타기라면, 혼자 탔는지 누구랑 같이 탔는지, 오늘은 더 높이 올라가는 것에 집중했는지 여러 번 타는 것에 집중했는지, 아니면 그냥 스윙의 기분을 느꼈는지. 그러다 보면 아이가 갑자기 얼음땡 얘기를 하면서 그때 어떤 일이 있었고, 뭘 집중했고 이런 소리를 할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의 질문에 뭔가가 생각난 거예요. 그러면 얼음땡으로 소재를 바꿔서 대화를 이어가고 얼음땡으로 일기를 쓰면 됩니다. 그렇게 한 가지 이야기에 집중해서 글 쓰는 법을 배워나가는 거예요.
반면 두 번째 심리는 ‘놀이터에서 친구랑 놀았다고 이미 다 썼는데 뭘 더 쓰라는 건가?’ 하는 마음입니다. 앞서 아이처럼 놀이터에서 친구와 논 게 너무 많아서 어떻게 다 쓰나 부담을 느끼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친구와 놀이터에서 놀았다’로 이미 다 표현했는데 뭘 더 쓰라는 건가 황당해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럴 때도 마찬가지예요. 집요하게 물어보셔야 합니다. ‘논다’에는 방식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어떻게 놀았는지 세분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야 해요. 그러다 보면 ‘누구와’ 놀았는지에 집중이 되어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어떻게’에 집중이 되어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기분’에 집중이 되어 그날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어요. 대화를 하다 보면 이야기는 무궁무진해집니다.
실제 저도 우리 아이와 대화하다가 ‘놀이터에서 논 얘기’에서 ‘놀이터 화단에서 달팽이 본 얘기’로 소재가 달라진 적이 있습니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논 얘기를 쓰고 싶다기에 뭘 하고 놀았는지 노는 것을 중심으로 대화를 했거든요. 그런데 아이의 대답이 시큰둥한 겁니다. 뭘 물어도 조잘조잘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았어요. 그럴 땐 참 지루하고, 할 거 많은 부모 입장에서는 살짝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충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그냥 쓰자’는 마음을 먹은 찰나에 아이가 갑자기 달팽이 얘기를 하더군요. 달팽이를 처음 발견한 게 누군데, 누구가 또 누구를 불렀고 자기도 가봤더니 진짜 달팽이가 있었고. 그럴 때는 아이들이 말이 많아집니다. 누구든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때는 말이 많아지는 법이잖아요. 그래서 그 달팽이가 어디 있었냐고 하니까 놀이터에 있었다고 하더군요. 아이가 하고 싶은 ‘놀이터에서 논 얘기’는 바로 달팽이를 본 얘기였습니다.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예상을 깨는 순간이 참 많이 옵니다. 부모님 성격에 따라 그런 부분을 못 참는 분도 계시겠지만, 아이의 자유로움과 틀에 얽매이지 않은 천진난만함으로 보고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우리 어른들 얘기를 해볼게요. 아이의 나열식 일기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마음속에도 두 가지 심리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런 마음입니다. ‘일기는 나열식으로 쓰면 안 된다는데, 아이가 하면 안 되는 걸 하고 있어요.’ 이 마음속에는 아이의 나열식 일기가 잘못된 글쓰기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게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곧이곧대로의 아이라 그렇게 쓴 거예요.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면 화가 나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여유가 생깁니다. 여유가 생기면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지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대화를 통해 하나의 이야기를 잡고 쓸 수 있도록 아이에게 가르쳐주세요. 여유로운 마음으로 가르쳐주면 아이도 쉽게 받아들일 겁니다.
두 번째 마음은 ‘일기 쓰기를 어떻게 가르치죠? 저는 글쓰기를 못 하는데요?’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에는 ‘글쓰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있으신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글쓰기는 어려울까요? 저는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내거나 공모전에 응시하는 일종의 작품으로서의 글쓰기는 많이 어렵습니다. 인생을 바라보는 통찰력과 멋진 필력과 독자를 감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 글쓰기는 많은 노력과 기술이 필요하므로 어려운 글쓰기가 맞습니다. 하지만 일상에서의 글쓰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일기나 찰나의 통찰력이나 느낌을 타인에게 전하고자 하는 SNS 등의 글쓰기는 쓰고자 하는 글을 쓰면 됩니다. 물론 더 멋지게 혹은 더 설득력 있게 전하기 위해 글의 개요 짜기나 필력 등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쓰고자 하는 사람 즉 ‘작가’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배울 수 있고 연습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필요할 때 찾아 배워도 늦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이제 막 글쓰기를 시작한 아이들에게 글쓰기 기술에 대해 가르치려 너무 애쓰지 않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쓰고 싶은 글감을 찾는 방법, 그리고 쓰고 싶은 대로 쓸 수 있는 연습입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옆에서 자꾸 질문해야 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쓸 거야?’ ‘첫 문장은 어떻게 쓸 거야?’ ‘왜 그렇게 생각했어?’ 이렇게 질문해주면 아이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이야기가 가지 뻗어나갑니다. 그 많은 이야기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해 쓸 것인지, 어떻게 쓰고 싶은지 그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가치관 교육입니다. 적어도 아이가 반사회적인 가치관을 가지지 않도록 어른인 우리가 잘 지도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착하게 살면 손해만 본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고 해볼게요. 저는 이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줄 것 같습니다. ‘선과 악을 놓고 본다면 선한 게 옳고 좋은 것이라 생각해. 하지만 무조건 선하기 위해 본인이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과 배려까지 침해당할 필요는 없어. 기본은 나 자신을 아끼고 존중하는 일이니까.’ 그다음엔 어디까지가 선이고 어디까지가 악인지 그 기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 것 같아요. 이것은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그리고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아이가 받은 상처나 경험에 대한 이야기도 나눠볼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을 한 이유는 반드시 있을 테니까요.
아이의 일기, 독서록 등 글쓰기에 대해 크게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의 글쓰기와 어른의 글쓰기는 분명 다릅니다. 왜냐면 어른은 이미 굳어진 자기만의 글쓰기 방식이 있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나이를 먹을수록 몸도 크고 머리도 큽니다. 할 수 있는 능력이 해가 다르게 많아집니다. 지금은 부족해도 나중엔 잘할 수있고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응원하고 격려해주세요. 옆에서 확실한 서포터가 되어주세요.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아이의 무궁무진한 능력을 믿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