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저학년 아이의 글쓰기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마 바른 글쓰기, 그리고 띄어쓰기를 포함한 맞춤법일 것입니다. 이유는 명확하게 틀린 게 보이기 때문일 거예요. 글씨가 예쁘지 않은 것 그리고 틀린 맞춤법은 누가 봐도 명확하게 잘못된 것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글쓰기를 지도하겠다고 옆에 앉았을 때 가장 손쉽게 가르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것도 맞춤법이고 글씨 예쁘게 쓰기입니다. 그러니 그 부분에 가장 먼저 손을 대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맞춤법과 예쁜 글씨를 자꾸 지적하면 글쓰기는 진도가 안 나갑니다. 2학년 윤우(가명)를 만났을 때도 그랬습니다. 윤우는 피아노 학원에서 배가 아팠던 이야기를 일기로 쓰고 싶어했는데 ‘피아노 에서’를 쓰고 “아 맞다! 띄어쓰기” 하면서 지우개로 지웠습니다. 제 얼굴도 한번 쓱 보더군요.
“어 괜찮아. 그냥 써.”
저는 글쓰기를 할 때 맞춤법을 바로 지적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아이의 머릿속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아이는 자기가 아는 단어를 동원해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도 버겁습니다. ‘은,는,이,가’ 접속사도 신경 써야 하고 ‘피아노를 쳤다’라고 할지 ‘피아노를 했다’라고 할지 적당한 동사를 가져오는 일도 힘겹습니다. 머릿속은 마치 연기 뿜는 공장처럼 뜨겁게 돌아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애’ 아니고 ‘에’잖아.” 라고 한다든지 “‘같았다’라고 해야지, ‘갔았다.’ 아니잖아.” 하고 맞춤법을 지적해 버리면 그 공장이 일순간 작동을 멈추고 ‘어 뭐하던 중이지?’ 길을 잃고 맙니다.
아이가 글씨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엉망으로 쓰고, 맞춤법을 틀리게 쓰고 있어도 글이 완성되지 않았다면 일단 그대로 두고 봅니다. 아이가 문장을 완성하고, 문단을 완성하고, 글 한 편을 끝낼 때까지 일단은 그냥 지켜보세요.
윤우는 다음 이야기를 써내려갔습니다. ‘군인이 내 배를 엄청 세게 때리는 느낌이었다.’ 그날 글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윤우가 자기만의 색깔을 띈 멋진 문장을 뽑아내더군요. 이럴 때는 폭풍 칭찬을 해줘야 합니다. 본인만의 개성과 고유성이 담긴 문장이 많아질 때 글은 빛나고 맛이 나니까요.
“윤우야. 이 표현 참 좋다. 군인 아저씨가 배를 때리는 것 같았어?”
“네, 엄청 아팠어요!”
윤우는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이 상황이 좋아 조잘조잘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물론 그 이야기 속에는 엄마를 불리하게 만드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마치 엄마가 아픈 아이를 억지로 학원 보낸 것처럼 얘기하자, 윤우 엄마가 얼른 말을 덧붙이셨습니다.
“평소에도 자주 배가 아프다고 하는데 또 집에 오면 멀쩡하니까요. 매번 병원을 갈 수도 없고, 그럴 때마다 학원을 쉬면 아이가 학원가기 싫을 때마다 이 방법을 쓸 까봐 걱정도 되고요......”
그 마음을 왜 모르겠습니까. 자식 있는 부모들은 모두 같은 마음으로 윤우 엄마를 이해할 것입니다. 저도 그랬고요. 그래도 그날은 윤우의 이야기를 듣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저는 윤우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얘기하고 쓸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이런 글을 써내더군요.
피아노에서 배가 많이 아팠다. 군인이 내 배를 엄청 세게 때리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에게 달려갔다. 선생님이 엄마에게 통화했다. 선생님이 집에 가라 했다. 그리고 또 또 또 (다른 학원을) 왔다갔다 했다. 그래서 힘들었다. 그런데 나는 약 먹고 집에서 쉬고 싶었다.
이 글을 읽는 윤우 엄마는 불편하실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아픈 자식을 억지로 쉬지 않게 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다 상황을 보고 판단하신 것이라 믿습니다. 아무튼 이 글을 쓰고 윤우는 기분이 무척 좋아보였습니다. 마지막 ‘집에서 쉬고 싶었다.’ 그 말이 아마 윤우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겁니다.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쓸 수 있을 때 사람은 마음의 치유를 받습니다. 저도 그렇게 제 스스로의 마음을 많이 치유하곤 합니다.
위에 글을 보면 맞춤법이 틀린 곳이 없습니다. 이유는 제가 글을 다 쓰고 나서 맞춤법을 고치자고 얘기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틀린 글자를 잡아줄 때는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와~ 글을 다 완성했구나. 한번 읽어볼게.”
아이 앞에서 멋들어지게 낭독해주세요. 글자만 후다닥 읽는 것이 아니라, 좋은 작품을 읽듯이 천천히 감정을 넣어 읽어주세요. 아이의 만족감이 올라갈 것입니다. 그다음에 물어보세요.
“맞춤법 잡아줄까?”
아이는 자신의 완벽한 글에 옥의 티를 남길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자고 대부분 고개를 끄덕입니다. 가끔은 그 글을 쓰느라 너무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서 싫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굳이 고치지 않습니다. 학교 숙제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그 상태로 그냥 학교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날들을 아이는 고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하나 짚으며 받침과 모음자를 바르게 불러줍니다.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쓰는 것은 아이의 몫입니다. 가끔은 띄어쓰기나 더 첨가해야 할 말들이 생겨서 문장을 다 지워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도 아이에게 물어봅니다. 아이가 완벽한 글을 완성하고 싶은 욕심에 다 지우겠다고 말하기도 하고, 싫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 ‘∨’ 등의 표시로 띄어쓰기를 교정하고, 첨가할 글도 끼워넣기 표시를 하고 첨가해주면 됩니다. 글을 꼭 오늘 하루만 쓰는 것은 아니니 융통성을 발휘해주세요.
'예쁜 글씨'는 저는 글쓰기 하는 동안에는 잡지 않습니다. 저의 경우엔 예쁜 글씨 쓰는 시간을 따로 마련했어요. 글씨 교정 문제집을 사서 쓰게도 해보고, 투명 종이를 대고 예쁜 글씨를 따라 쓰게도 해봤는데, 아주 짧은 글을 노트에 베끼는 것이 제 아이들의 경우에는 가장 효과가 좋았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둘 다 남자아이고 포켓몬을 아주 좋아해서 포켓몬 도감의 글을 따라쓰게 했습니다. 노트 반 페이지 정도의 분량이 되더군요. 틈날 때마다 자주 베끼게 했더니 맞춤법이나 글씨 교정에 약간의 도움은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맞춤법과 함께 학부모님들이 많이 궁금해하시는 부분이 있는데요. ‘아이가 글을 쓸 때 옆에 있어야 하나요?’ 하는 질문입니다. 제 대답은 ‘예.’입니다. 어른들은 자신의 글을 누군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쑥스러워서 글을 쓸 수가 없는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옆에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앉아 있으면 안정감을 느끼는 듯합니다. 익숙하지 않고, 잘 할 것 같지 않고, 그런 불안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옆에 있으면 오히려 힘을 내는 것 같습니다.
그럼 어른은 옆에 앉아 뭘 할까요? 첫째는 틀린 글자와 엉망인 글씨에 눈을 질끈 감아주시는 겁니다. 너무 너무 고치고 싶더라도 참아주세요. 두 번째는 접속사를 불러주세요. '그런데, 그래서, 왜냐하면' 하고 접속사를 불러주면 아이는 그 말에 따라 다음 문장을 적습니다. 글이 길어지고 밀도가 높아집니다. 일부 부모님은 글에 접속사가 너무 많아서 안 좋다고 하시는데, 접속사가 많아지면 글이 끊어지고 읽는 맛이 줄어들기 때문에 좋지 않은 것 맞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아닌 어린이의 글쓰기에서는 순작용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접속사를 불러주면 한번 했던 생각에 살이 붙습니다. 한 계단 더 내려간 깊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분명 도움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아이의 문장을 머금고 있다가 불러주세요. 이 내용과 관련된 것은 제가 '아이에게 문장을 불러주라고요?'라는 글에 따로 써두기도 했는데요. 아이와 대화를 하면서 아이가 입으로 뱉었던 표현과 문장을 잘 기억해두셨다가 아이가 글이 막히거나, 빼 먹었을 때 옆에서 불러주세요. “너 아까 이렇게 말했잖아.”라고 하면서요.
아이와 글쓰기 수업을 할 때 학습적인 것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두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보다는 아이의 고유한 생각을 들어주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더불어 어른으로서 알려줘야할 세상 사는 가치관을 얘기해주세요. 배려, 존중, 성실, 인내 등 눈에 보이지 않지만 중요하고 세상의 방향성을 찾는 기준이 되어줄 것들에 대해서요. 독서록을 쓰거나 일기를 쓸 때도 책과 일상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글을 잘 쓰려면 본인만의 확고한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과 글쓰기를 할 때는 그 부분을 잘 다져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