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나
결혼이란 나에게 현실 도피처였다. 지긋지긋한 일상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아니 고통스러운 마음을 달래줄, 결혼이란 그런 것이었다.
결혼했을 당시 남들이 흔히 말하는 “돈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사랑만 있으면 돼”라는 생각으로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결혼 생활 3년쯤 마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와 크게 다투었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쉽다고 했던가? 그것이 시초였다. 그와 다투는 횟수가 늘어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기러기 아빠' 생활을 했던 그와 떨어져 있다는 것이 다행일까? 다툼의 익숙해질 때쯤 그와 같이 살게 되었다.
이대로도 괜찮은데...라는 생각을 차마 말로 할 수 없었다. 다시 같이 산다는 것,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에도 적응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와 떨어질 시기, 마음속 부족함을 그가 채워주기 시작했다. 어느덧 마음 한자리를 그가 차지했고, 사막의 메마른 땅처럼 갈라진 마음을 메꿔주기 시작했다. 도자기를 빚듯 그의 따뜻한 손길이 닿을 때마다 모난 가슴을 다듬어주었다.
"세 아이 엄마, 아니 한 남자의 여자로서 나는 다시 사랑을 한다."
-너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이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느낌이랄까? 이 여자와 평생을 함께해도 외롭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결혼했을 당시 생각보다 책임감이 크지 않았다.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만나는 것, 그들과 술을 마시는 것, 돈 따위는... 가계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녀가 나에게 신경을 안 썼기 때문일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니다. 나름의 배려였을 것이다. “남자는 사회생활을 해야지!”라고 그녀는 항상 말했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고, 어느 순간 악용했을지도 모른다.
처음 그녀와 다투었을 때 친지들 때문에 싸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문제였을 것이다. 일한다는 명목 하에 가족을 돌보지 않았고, 나만 생각하는 그런 이기적인 얼간이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긴 시간 그녀와 떨어져 있었다. 또한 아이들과도... 혼자 있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어느 순간 반복되는 일상에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 휑하고 차가움만이 감도는 그 장소가 싫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술과 게임에 빠져 살았던 것 같다. 그럴수록 그리움과 외로움의 바닷속에 빠져 허우적댔다. 한없이 어둡고, 넓은 그곳에서 목을 죄어오고 숨이 점점 가빠오는 느낌을 도저히 떨칠 수 없었다.
바닷속 깊은 곳에서 나 올 수 있었던 것은 가족과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였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어둠을 걷어주고, 그녀의 따뜻함이 차가운 마음을 녹여주었다. 더 이상 가족과 떨어지기 싫다.
언제든 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