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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심자 Oct 15. 2021

평소와 다름없는 것 같은데

힘든 육아의 일상

평소와 다름없는 것 같은데

실 끊어진 인형처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다. 꼭 술 취한 운전자가 차를 몰고 왔다리 갔다리 하는 듯하기도 하다. 팔은 10년은 입었을 듯한 낡고 바랜 브이넥 티셔츠처럼 축 늘어져 있다. 새빨간 장미처럼 얼굴이 붉지도 않고, 며칠 전 터진 수도꼭지 호수에서 ‘질질’ 세던 물처럼 콧물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분명 감기는 아닌데, 머리는 막내아들 엉덩이가 올려진 상태로 잠들었다가 일어났을 때처럼 무겁고 한쪽으로 1센티미터만큼 자꾸 기운다. 평소와 다름없는 것 같은데...


 일어나자마자 삐걱거리는 팔꿈치가 부서지지 않도록 천천히 피스톤 운동을 한다. 절대 서둘지 않는다. 혹여 너무 과열돼 부서지기라도 하면 이번에는 날카롭고 반짝이는 쇳덩이를 사용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숫자 따위는 중요치 않다. 물을 끓이는 주전자가 뜨겁게 달궈져 붉게 변하기 전에 불을 끄면 된다. 팔 굽혀 펴기 10회...


 물이 끓지도 않았기에 덥거나 땀이 난 것은 아니지만, 옷을 훌러덩 벗는다. 꽤 멋진 몸매가 드러난다.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는 가슴, 임산부를 방불케 하는 배, 분명 인덕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잠시 배를 만져 본다. ‘어제보다 좀 빠진 것 같군! 열심히 먹어야겠어!’라고 생각하며 욕실로 들어선다. 욕실에 찬 공기가 입을 통해 몸 전체로 퍼지면 한차례 ‘부르르’ 떨려온다. 잽싸게 온수를 틀지만 곧바로 뜨거운 물이 나오지는 않는다. 샤워 때 차가운 물로 씻는 게 좋다지만, 나는 욕실에 차가운 공기와 맞서기 때문에 그것은 생략한다. (추운 것을 싫어한다) 물의 온도와 상관없이 샤워는 기분이 좋다. 3년 전 기르던 애완용 ‘비어디드드래곤’이 야생의 본능이 깨어나 사람을 물어버린 것처럼 (주인 탓이다) 샤워라는 것이 야생의 본능을 깨울 정도는 아니지만, 남아있는 수면 욕구를 날려버리기에는 충분했다.


 “무슨 약을 이렇게 많이 줘!”

 “약 아니고 영양제야, 영양제”

 “약이든 영양제든!”

 아이보리색, 연한 녹색, 누런색, 하얀색, 색이면 색 모양이면 모양 참 다양하기도 하다. 특히나 질리는 것은 한 손 가득 올려진 수량 ‘이것을 한 번에 먹을 수 있을까? 혹시 나의 기도를 막아 병원에 실려 가는 것은 아닐까?’, ‘나눠서 먹으면 되잖아!’라고 와이프와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며, 줄기차게 먹었던 그것을 먹을 차례다. 지금은 그 전만큼의 수량을 먹지는 않는다. 그래도 목에 한 번은 걸리고 물을 200ml 이상을 때려 부어야 넘어갈 정도의 양은 된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다 숨었니? 찾는다!"

  곱게 펴놨던 이불이 볼록 올라와 있다. 그 모양이 어릴 적 먹었던 '꿈틀이'(지렁이 모양 젤리) 같다.

 "어딨을까? 너무 잘 숨어서 찾기 힘드네"

 한 마리의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가간다. '부스럭' 꿈틀이에 꼬리 부분이 살짝 움직인다. 아는 체하지 않는다. 꼭 맹수가 먹잇감을 탐색하듯 주변을 빙빙 돈다. 꿈틀이가 답답한지 움직이는 횟수가 늘어가기 시작한다. 이내 큰 움직임이 감지된다. 지금이다!

 "찾았다!"

 아이는 깜짝 놀라며, 크게 웃는다. 둘째 아이를 찾는 것은 더 쉽다. 막내 아이만 따라가면 그곳에 둘째가 숨어있다. 커튼 옆을 떠나지 않는 막내 아이, 커튼을 바라보자 볼록 튀어나와있다. 심지어 밑쪽에는 작고 앙중맞은 다섯 개의 발가락이 보인다. 이번에는 거인이 되어 '쿵쿵' 지면을 발로 찍으면서 다가간다. 이내 커튼 앞까지 다가와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앉는다. 조심히 그리고 은밀하게 손을 뻗쳐 삐져나와있는 발가락을 살살 간지럽힌다. 

 "아이 간지러워~"

 커튼이 '휙'하고 제쳐진다. 

 "우리 딸도 찾았다!"

 넘치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미소를 한가득 머금고 나에게 안긴다. 몇 번의 숨바꼭질을 하면 아이들도 지치고 나도 지친다. 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나 아이들은 다른 놀이를 원한다. 

 '젊은 게 좋구나~지치지도 않고 꼭 에너자이저를 보는 것 같네 그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놀이를 하고 나면, 나는 마치 팔십 먹은 노인처럼 행동한다. 


 "아빠 배고파!"

 "나도 밥!"

 "우에 뱁!"

 말썽꾸러기들이 동시에 말한다. 갓난아이의 말을 해석할 능력은 없지만 시간상 배가 고픈 것이다.

 '음... 밥을 먹으면 또다시 쌩생 해질 텐데. 마치 자동차의 기름을 가득 채우고 150~180km 달리는 느낌이랄까? 밥을 줘? 말아?'

 잠시 검은 놈과 하얀 놈이 왔다리 갔다리 하며 머리를 어지럽혔지만, 나의 몸은 이미 주방 쪽으로 향하고 있다. 전에는 일일이 야채를 썰고 다듬고 했지만, 요즘은 참 편하다. 냉동실을 열어 시중에 파는 냉동야채를 꺼냈다. 그곳에는 옥수수, 녹색콩, 당근, 녹색의 아기 새끼손가락만 한 야채(아내가 알려줬는데 기억이 가물가물...)가 들어있다.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을 불에 달구고 그위로 손을 '슥'하고 지나간다.  

 '지금이야!'

 잽싸게 준비해둔 야채를 프라이팬에 투척한다. 그리고 열심히 볶는다. 이연복 셰프(중식의 대가)처럼 멋있게 웍질을 하지만 콩 하나가 총알처럼 날아와 나의 배를 친다.

 '훗... 콩 따위가 감히'

 더 열심히 웍질을 하지만 한밤중에 바닷가에서 '피~이융 펑'하고 터지는 폭죽처럼 재료들이 사방으로 터진다. 하지만 전혀 아름답지 않다. 적당히 볶은 야채들을 접시에 담고 계란을 스크램블처럼 만든다. 그리고 친구의 숙제를 급하게 베낄 때처럼 냉장고에 미리 넣어둔 밥을 꺼내 스크램블과 섞는다. 또 볶는다. 다시 야채를 넣고 볶는다. 간을 맞추기 위해 굴소스를 적당량 넣고 또 볶는다. 계속 볶으면 된다. 마지막으로 얇게 핀 계란 프라이를 볶음밥에 올리고 케첩과 돈가스 소스를 배합한 것을 뿌려주면 끝이다.

 "아빠표 볶음밥 대령이오~"

 "와 ~ 맛있겠다. 아빠! 나 이 길쭉한 야채 싫다니까!

 '참 우리 큰아들은 예의도 발라 어른이 수저도 들기 전에 수저를 들고, 또 반찬투정은 어찌나 잘하는지 지 입맛에 안 맞으면 입도 안되니'

 "그거 빼고 먹어 아빠가 먹을 테니까. 자 우리 막내는 맛도 좋고 영양 만점 분유!"


 어느새 밖은 어둑어둑해졌고, 방안에 불도 하나둘 꺼졌다. 길고 긴 숨소리 만이 방안 가득 들린다. 고요하다. 몸이 나른하다. 

평소와 다름없는 것 같은데... 오늘은 참 피곤하다. 


 “잠이나 자자”

 “우에~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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