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에의 긍정
문득 나의 과거를 모두 없애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없애는 정도가 아닌
그 누구도 형체를 못알아 볼 정도로
베고 찢고 갈라 죽여, 삶 너머로 내 던지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과거와의, 과거로부터 이어진 모든 것들에
영원한 이별을 선언하고 싶었다
과거로부터 시작되어 지금을 지나
앞으로 뻗쳐나간 붉은 끈
저 핏빛의 끈이 어디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건 저 뒷 방의 문을 통해서
뻗어 나갔다는 것이다
아니, 사실대로 고백하면 나는 이 끈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고 있다.
누구의 목덜미에 메어져 있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생각 조차 할 수 없다
그 얼굴을 마주하기 위해 끈을 잡아당기는 순간
나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미래의 모습을
봐야만 하기 때문이다
인식의 저편으로 뻗어 나간 이 붉은 끈은
결코 나를 만족시킬 수 없는
황홀경의 떨림과 신음을 전달한다
미래로 부터 오는 이 떨림을 통해
나는 미세한 희망을 느끼지만
얼마 안가 악마의 지갑을 열었을 때처럼
그 속에 해진 낙엽만이 존재하던 것처럼
내 손이 홀로 떨고 있었음을 다시 깨닫게 될 것이다
때문에, 저 너머에서 내게로 오는
이 진동의 울림을 압살하기위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끈이 시작된
나의 과거를 죽여야 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할 수 있으며
결코 지금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저 하늘 위
햇빛에 짓눌려 어디로도 움직일 수 없다
그러니까 나는 저 햇빛이 일그러트려
하나로 구겨버린 광인의 시간 속에 갇혀
과거도, 미래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서도 벗어날 수도, 제대로 살아갈수도 없어
현기증만을, 구역질만 일으키는
한 치의 움직임조차 행해질 수 없는,
저 냉엄한 태양의 끓어오름 속에서
삶의 불가능을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방의 불을 끈다.
태양조차도 죽어 내 던져진,
모든 빛이 소멸 된 어둠 속.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바닥을 바라보며
이 암흑의 바닥 끝, 바늘 구멍보다 더 작은 구멍에서
티끌보다 작은 빛 하나가 번쩍이는 그 찰나의 순간.
끝을 알 수 없는 저 바닥으로부터 뻗어있는 붉은 끈이
내 목덜미에 매어져 있는 것을 본다.
그 빛을 다시 보기위해 끈을 당긴다.
그렇게 나는 심연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과거를 받아들이고
그렇게 이 삶을 긍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