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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liguana Oct 24. 2021

에고와 쏘울, 다섯 번째 이야기

: 인도 영성 전통의 에고에 대한 재해석



   

우리가 “개인화(individualising)”의 단계를 넘어선다면, 우리는 그때 진정한 인간(real Persons)이 될 것이다. 에고는 조력자(the helper)이다; 에고는 장애물(the bar)이다.  

                                                                                                슈리 오로빈도    


에고는 인도 영성 전통에서 무용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생각에 건강한 에고는 인도 영성 전통에서도 중요하다. 슈리 오로빈도와 마더가 정리했듯이, 에고는 그 역할을 다 한 후에 그 주도권을 진정한 자아인 영혼에게 넘겨줘야 한다는 것이, 서구 심리학이 보여주는 입장과의 가장 중요한 차이가 아닐까 싶다. 이번 에세이에서는 인도 영성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을 해냈다는 평가를 받는 슈리 오로빈도(Sri Aurobindo)와 그와 함께 인테그랄 요가(Integral Yoga)라는 인도 요가 사상의 재해석 작업을 해낸, 미라 알파사(Mirra Alfassa: 인도의 여러 여성 구루들처럼 그녀도 “마더(Mother)”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이 에세이에서도 “마더”라는 호칭으로 그녀의 이름을 대신하고자 한다)의 저작들을 통해 인도 영성 전통의 현대적 흐름에서 에고의 가치가 어떻게 재평가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에고(아함카라) 대한 현대 인도 영성 전통의 재해석: 신의 욕망 & 인간의 욕망


인간 의식의 진화라는 주제를 인도의 요가 전통 해석에 도입한 슈리 오로빈도는 생명의 진화에 따른 욕망의 단계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생명(life)의 첫 번째 단계를 특징짓는 것은 “무디고, 무의식적인 욕구 혹은 충동(a dumb inconscient drive or urge)”인데 이는 물질 혹은 원자적 존재에 깃든 의지의 힘이며, 자유롭지도 않고 스스로의 활동과 결과를 소유하지도 못하는, 우주적 움직임에 완전히 소속된 힘이다. 이 우주적 움직임에서, 이 충동은 아직은 명료하게 형성되지 않은 개체성의 씨앗으로 피어오른다. 두 번째 단계의 뿌리(root)는 욕망(desire). 이것은 소유하고자 갈망하지만 그 능력의 한계에 부딪힌다.  세 번째 단계의 싹(bud)은, 소유하고 소유되기를, 받고 또한 스스로를 주기를 추구하는 사랑(love)이다. 네 번째 단계의 아름다운 꽃(flower), 그 완성의 징후로 우리가 마음에 그리게 되는 것은, 본원의 의지의 순결하고도 완연한 출현, 과도기적 욕망의 빛나는 성취, 영혼들의 신성한 결합에서 소유한 자와 소유된 자의 상태가 하나됨에 의한 사랑의 의식적 교환이 주는 높고도 깊은 만족. 이 단계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이것들이, 영혼이 개인적인 그리고 보편적인 기쁨을 추구하는 양상이자 단계임을 보게 될 것이다; 생명의 상승은 그 자연 안에서 존재들 안에 거하는 신성한 기쁨(divine Delight)의 상승이다. 물질의 그 무딘 인식에서부터 요동과 부침들(vicissitudes) 그리고 상반되는 것들(opposites)을 거쳐 절대자의 영혼의 빛나는 정점으로 향하는. [각주 1]


여기서 슈리 오로빈도는 모든 욕망의 기원을 신의 속성인 아난다(Ananda)로 보고 있다. 인도 철학에서, 특히 그 대표격으로 여겨지는 베단타 철학에서, 신은 본질을 묘사할 수 있다는 입장 (Saguna Brahman), 그리고 신의 특질을 묘사하는 것 자체가 신을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에 묘사할 수 없다는 (Nirguna Brahman) 상반되는 두 입장이 존재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 속성으로 공통으로 이야기되는 것이, 존재(Sat: existence), 의식(Cit: consciousenss), 지복(Ananda: bliss)이다. 여기서 지복, 즉 아난다(Ananda)는 신적인 기쁨으로, 모든 인간적 감정이 기초하고 있는 이분법적 구조 – 즉, 행복은 불행과 떨어질 수 없다는 –를 초월한 행복이다. 브르다아란야카 우파니샤드는 태초의 사람이 가진 욕망이 창조의 기원임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처음에, 사람의 모양을 한, 단 하나(atman: the self)만이 있었다. 그는 주위에 자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가 처음 말한 것은 “내가 있다”였고, 그것으로부터 “나”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 혼자인 그는 기쁨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혼자 일 때는 기쁨이 없다. 그는 동반자를 원했다... 그는 자신을 둘로 나누어(pat), 남편(pati)과 부인(patni)이 생겼다…. 이렇게 그는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을, 아래로는 개미까지, 암-수 짝으로 창조했다 [각주 2]  


바가바드 기타에서 크리슈나는 아르쥬나에게 스스로를 창조자라로 말한다.


나는 세상의 아버지(pita)이고 어머니(mata)이고 조직자이며 첫 번째 창조자이고, 지식의 대상이고, 성스러운 음절인 옴이며 또한… ” [9:17]


실제로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에는 욕망에 대한 긍정적인 구절들이 꽤 있다. 물론 기타(Gita)의 메시지에서 욕망과 에고는 신성에 다가가기 위해, 자유를 성취하기 위해, 극복하고 버려야 하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일의 결과에 대한 욕망을 버린 상태에서 일을 하는 것(desireless work), 즉 에고의 매임에서 자유로운 상태에서 일하는 것이 카르마 요가(Karma Yoga: 일을 통해 신성과의 합일 추구하는 요가)의 중요한 시작점이라고 기타는 말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크리슈나는 욕망을 추구하는 올바른 신의 섭리가 있음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 구절들은 위의 우파니샤드의 구절과 같이 신의 창조와 연관이 되기도 하며, 또한 앞선 에세이에서도 살펴보았듯이 희생제의의 의미와도 연관되기도 한다.   


“희생 제의로 창조자(prajapati)는 피조물들을 창조했고 그리고는 말했다: 이것(yajna: sacrifice, 희생 제의)으로 너희들은 자손을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이 너희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되게 하라” (3:10)


바가바드 기타에서 희생제의(yajna: sacrifice)의 의미는, 앞선 에세이에서 푸루샤 숙타에서 처럼, 인간과 자연, 그리고 신까지 참여하는, 이 세계가 창조되고, 운행되는 우주적인 역동의 원리로 묘사되며,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 역시 – 자유의 길에서는 장애물일지언정 – 이 희생 제의의 원리를 따라 이루어지는 것은 악하지 않은,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설명된다. 물론 기타는 이러한 베다의 희생 제의의 의미를 자신만의 요가 메시지로 발달시킨다: 인간의 모든 행동과, 의지와 열망, 그리고 지식이 신성과의 교감을 위한 길이자 발판이 되는 요가의 길로서의 희생 제의.


크리쉬나의 욕망(desire)에 대한 메시지는 다음의 구절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것 같다.  


“나는 욕망과 열정에 메이지 않는 강한 자의 힘이다. 나는, 다르마(dharma)와 공존할 수 있는, 모든 존재의 욕망(kama)이다” (7:11) 


슈리 오로빈도는 위 구절의 “다르마와 공존할 수 있는 욕망”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 안의 신성의 목적성을 가진 의지”이며 이 의지가 추구하는 것은, 낮은 차원의 자연적인 쾌락의 추구가 아닌, 신적 기쁨인 아난다의 유희(play)이자 실현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모든 존재에 고유한 나름의 법(swadharma: one’s own dharma, 오로빈도에서 이는, 각자의 영혼의 성품에 따라 주어진 존재마다의 고유한 존재와 성장의 방식을 의미한다)을 따라 전개되어 나오는, 존재에 깃든 신적 기쁨인 지복, 아난다의 욕망이다. [각주 3]



두 개의 영혼 & 에고의 성장으로서의 개인화(individualization)


 욕망에 대한 이런 위와 같은 메시지들에 대해서, 슈리 오로빈도가 말하는, 인간의 두 개의 영혼(double soul)에 대한 설명이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 같다. 슈리 오로빈도에 의하면, 본질적으로 신성을 공유한 인간은 두 종류의 삶을 살아간다고 한다. 그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두 개의 정신, 즉 우리의 진화하는 에고와, 우리 존재의 물질성에 의해 창조된 표피적 정신, 우리가 우리 자신이라고 착각하는 이런 외적인 정신과, 이런 외적 정신에게 방해받지 않는 더 거대하고 파워풀한 빛나는 우리의 내적인 진정한 정신적 존재, 우리의 육체적 삶에도 이러한 이중성은 있다: 외부에 보이는 육체 이면에 우리가 가진 더 미묘하고 부드러운 물질적인 존재. 우리의 심리적 존재 역시 이러한 이중성을 갖는다. 표면의 욕망의 영혼(desire soul)은 감정적 갈망과 느낌들, 미학적 기능, 권력과 지식, 행복을 추구하는 정신.. 등의 작용을 망라한다. 우리의 내적인 심리적 존재는, 빛과 사랑, 희락(joy), 그리고 존재의 정화된 본질의 순수한 파워이며 이는 우리의 심리적 존재의 겉모습 그 뒤에 있는 우리의 진정한 영혼이다.” [각주 4]


요가를 통해 자유를 얻는 길에서 버려야 하는 욕망은 우리가 종종 영혼이라고 착각하곤 하는 욕망의 영혼(desire soul)에 대한 것이고, 우리의 내적 세계에 해당하는, 영혼에 깃든 신적 기쁨, 아난다의 욕망은 우리 안의 신성이 의도하는 목적성과 우리의 성장이 일치하며 전개되어 나오는 영혼에 해당하는 욕망이다. 욕망에 대한 슈리 오로빈도의 설명에서, 높고 낮음의 의식의 위계라는 논리가, 욕망에 대해서도 적용되고 있다. 에고는 이 위계에서 극복해야 할 낮은 부분의 욕망에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슈리 오로빈도는 에고를 “욕망의 영혼(desire soul)” 혹은 “자연의 구성물”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또한 앞선 인용에서도 보았듯이, 그의 요가 철학에서 욕망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만, 인간을 낮은 수준의 자연, 물질적인 정태성에서부터 인간을 끄집어 올리는 진화를 이끄는 충동으로 본다. 따라서 그의 요가 철학에서, 에고는 이러한 진화의 과정의 전반부를 이끄는 필요한 존재로 등장한다. 그는, 정신적 기능(mental function)의 발달은, 생명에너지가 가장 주도적인 발달의 모드인 동물로부터 인간을 구분 짓는 특징이며, 따라서, 자연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높은 단계의 정신적 기능의 형성은 인류의 진화를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그러한 “완벽한 정신적 존재(perfet mental being)는 육체적 충동과 생명에너지의 충동을 조절할 수 있으며 다음 단계인 영적인 삶을 위한 준비를 할 수 있게 해 준다.  슈리 오로빈도는 이런 완벽한 개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개인화(Individualisation)라고 불렀으며, 여기서 이 과정의 중심으로 기능하는 에고는 필수적인 것이 된다. [각주 5] 그러나, 슈리 오로빈도에 따르면, 개인화라는 과정의 필수적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에고는 우리의 진정한 중심이 아니며, 일단 개인화라는 그 사명을 완수하면, 그 주도권을 우리의 영적인 중심에게 넘겨야 한다.  

 

슈리 오로빈도와 마더는 개인화(individualisation)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 자아의 성숙에 있어서의 에고의 역할을 이야기한다. 융의 개인화(individuation)가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을 통해 에고라는 좁다란 자아를 극복하고 셀프라는 의식과 무의식을 통합하는 진정한 자아로 나아가는 과정, 즉 개인의 전체성이 회복되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오로빈도와 마더가 말하는 개인화(individualisation)는 에고를 중심으로 한 독립적 인격체의 완성에 대한 것이다. 오로빈도와 마더의 개인화는 통합의 과정 자체라기 보다는, 통합의 과정을 준비하는 전단계로서의 정신적 인간의 완성, 즉, 지적으로, 감성적, 의지적으로 독립적 인격체로 성장하는 과정을 의미하며, 이 준비의 과정에거 에고는 중요한 의식의 중심을 제공한다. 이렇게 완성적 경지에 이른 에고는 영혼이라는 우리의 진정한 중심헤 그 자리를 내 주어야하는 수순을 밟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인도 영성 전통이 말하는 구도와 요가의 길이다.

 

에고(ego(를 지칭한다고 볼수 있는 인도 전통에서의 용어는 아함카라(ahamkara)이다 :  “나를 분리된 존재로 만드는 것” “나를 분리된 개인으로 느끼게 하는 것.” [각주 6] 인도 전통은 아한함카라를 구도자의 입장에서 궁극적 진실에 도달하기 의해 극복해야할 대상으로 본다. 즉, 에고에 기반하여 일어나는 '나'라는 분리의식은 실은 무지의 산물이며, 우리로 하여금 궁극적인 존재의 하나됨을 알지 못하게 하는 따라서 인간을 고통에 빠뜨리는  심리의 다이내믹으로, 구원의 길로 가는 길에 있는 가장 큰 장애물로  보는 것이 전형적인 입장이다. 물론, 인도전통에서도, 사회인으로서, 가정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을 중시하는 전통도 있다.  다르마 전통이라 불리우는 이 전통은 인간 개인적 욕망과 사회와의 조화, 주로 후자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조화를 추구하는 입장으로, 이 전통에서, 개인의 영성 추구의 지향은 사회의 번영과 질서 유지에 복속된다고도 볼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이 다르마 전통에서 개인의 욕망은 사회적으로 용인된 형태로 인정되며, 때로는 사회의 번영과 안정을 위해 희생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우리의 전통 사회에 있어서의 가부장적 유교 전통이 그 비슷한 경우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같다. 이러한 다르마전통과 앞서 논의한 영성추구, 혹은 요가는 인도전통에서 가장 중요한 양대축을 이룬다고 보아진다. 이 두 전통에서 인간의 에고는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혹은 구도의 길을 통해 모든 존재의 진정한 하나됨으로 나아가기 위하 극복해야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오로빈도는, 사회와 공동체 역시 우리의 집단적 수준의 에고이며, 우리가 좁다란 개인적 자아에서 벗어나기 위해 거쳐야 할 단계로서 그 중요성을 갖고 있으나, 인간 정신성의 수준에서 추구하는 이 공동체의.이상자체가 그 이상이 표방하는 진정한 "하나됨"을 가져올 수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구도의 길에서도 우리의 에고를 벗어나는 것이 중요한 단계인 것은 분명하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에고를 통해 독립적인 인격체로 성장하며, 이 과장을 거쳐 영적 존재로 성장할 필요가 있다. 다시말해, 에고는, 인간의 신체적, 생명 현상적, 정신적 기능들이 조직화되어 발달하는 과정에서 중심 역할을 하며 인간이 완성된 신체적, 감성적, 지적 기능들과 자신만의 구별되는 성격을 가진 완전한 개인으로 성장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렇게 완전히 성장한 개인은 다른 사람들이나 환경적인 힘들과 소통은 하지만 그로 인해 흔들리지는 않는, 독립적인 존재이다.  

 


욕망의 영혼, 에고의 성장: 슈리 오로빈도와 마더의 개인화(individualization)


마더는 개인화 과정을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한다:


몸을 그 틀(mold)로 하고, 정태적인 물질성(material inertia)에서 벗어나기 위해 욕망(desrie)을 그 추진력으로 하여, 에고를 의식의 중심으로 해서, 구분되고 독립적인 개인이 되는 것. [각주 7]

 

“당신이 특정한 형태를 가진 몸이 없다면,…  마치 뒤엉켜 있는 펄프 같을 것이다.. 몸의 형태는 당신의 생명에너지와 정신 에너지가 특정한 형태를 취할 수 있는 틀(mold)을 제공하여 당신이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개인이 되게 한다. 당신이 자신만의 감각과 느낌, 아이디어들을 갖기 시작하는 것은 점차적으로 그리고 매우 천천히 이루어지는 과정이며, 이는 생명의 움직임들과... 다소는 조심스러운 그리고 철저한 교육을 통해서이다. 개인화된 정신은, 긴 교육을 거친 다음에서야 얻어지는, 매우 귀한 것이다;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생각이라는 것은 단지) 당신의 뇌와 그리고 다른 이들의 뇌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뇌를 거쳐 지나가는 일종의 생각-흐름(thought-current)이다...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지나가는 생각의 흐름들(currents), 진동들(vibrations) … [각주 8]  

 

욕망(desire)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보아진다. 마더와 슈리 오로빈도에 의하면, 욕망은 우리가 미분화된 원시적 의식 상태에서부터 깨어 나와 활동을 하도록 깨운다. 하지만, 이렇게, 정태적 상태(the state of the original inconscience)에서 우리를 해방시켰던 바로 그 욕망이 우리를 물질적 구속에 매이게 하고, 더 높은 의식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욕망의 이중성은 에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더 높은 단계로의 진입을 위해, 우리는 일단 존재해야만 한다; 그리고 존재하기 위해 우리는 의식적이고 분리된 개인이 되어야 하며, 이러한 의식적이고 분리된 개인이 되기 위해 에고는 불가결한 것이다. 에고가 없다면 우리는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과 섞인 상태로 있게 된다. 하지만 일단 개체성(individuality)이 형성되면, 우리가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고자 할 때… 에고의 한계는 최악의 장애물이며, 따라서 에고는 진정한 의식의 단계로 가기 위해 극복되어야 한다  [각주 9]

 

“당신의 에고를 디바인과 하나가 되게 하세요! 하지만, 당신이 완전히 개인화되기 전에 당신의 에고는 디바인과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각주 10]

 

여기서 디바인과 하나가 될 수 있는 혹은 디바인에게 드릴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는 요가의 의미를 신성과의 연합(union)의 의미로 해석한 것으로도 이해할 수도 있다--은, 첫째, 타인들의 느낌과 생각 또는 외부 환경과 같은 다른 힘이나 영향들과 섞이지 않고,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고 있는지, 느끼고 있는지를 분명히 인식하며 살아가는 그러한 개인으로 결정화되는 것 의미하며, 둘째, 이렇게 결정화된(crystalised) 개인은, 그다음 단계를 위해 영적인 영향을 향해 열릴 수 있도록 그 에고의 주권이 포기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각주 11]

 

개인화(individualisation)는 인간의 그다음 단계인 영적인 자아실현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따라서, 개인화의 과정에서 그 조직화 과정의 중심으로 기능하는 에고는 긍정적일 뿐 아니라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 독립적이고 고유한 성격을 가진 에고는, 그 본질상, 영혼(spirit)이 아닌, 자연(nature)의 구성물이며, 우리의 진정한 성격을 대표하지 않는다. 우리의 영성의 삶(spiritual life)이라는 다음 단계를 위한 “도구적(instrumental)” 존재인 우리의 에고는, 개인화라는 역할을 다 한 후에, 그다음 단계의 삶을 이끌어가는 영성의 중심인 우리 영혼에 그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각주 12]

 

슈리 오로빈도와 마더는 어떻게 인간이 과도기적 존재이며 외부의 힘에 영향받는 취약한 열린 시스템인지를 보여주면서, 자신만의 온전한 개성을 가진, 그리고 낮은 힘들에 의해 영향받지 않는 독립성을 가진 별개의 독립적인 존재가 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여기서, 정신분석학에서 이야기하는 강한 에고의 중요성이 공유된다. 하지만, 슈리 오로빈도와 마더에게서 에고의 존재 이유는 인간 영성의 실현을 위한 도구가 되는 것이며, 자신의 본분을 다 한 후에는 주권을 영적인 자아에게 넘기고, 궁극적으로는 의식의 중심 자리에서 완전히 물러나는 것이다.

 

개인화의 과정이 완성될 때까지의 인간 존재 형성의 의식적 중심이 됨에도 불구하고, 에고는 자연(nature)의 구성체이지, 영혼(spirit)의 구성체는 아니며, 에고에 의해 형성된 성격과 개별적인 존재 역시 자연에 속하며 영혼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진정한 성격, 진정한 존재는 아니다.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 영혼에 속하며, 이상적으로 말한다면, 개인화의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구별되는 독립적인 인성을 가진 인간 안에서 실현되기를 기다린다고 슈리 오로빈도와 마더는 말한다.  


현재의 과도기적 인간의 의식 수준에서는, 에고가 그 중심에 있으나, 우리 진정한 존재와 개성의 본질은 에고와 같은 자연적인 것이 아닌, 영혼에서 발견되는 것이고 이는 의식의 진화를 통해 우리에게 더 명료해질 것이라고 슈리 오로빈도는 이야기한다.

 


 마무리...  


서구 심리학의 전통과 위에서 살펴본 슈리 오로빈도와 마더의 개인화(individualisation)의 과정은, 에고가 인간의 성장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에 동의한다. 물론 이들 입장 사이에 많은 차이점들이 존재한다. 정신분석학에서 에고는 인간의 고유하고도 진정한 중심으로 성장하며 진정한 자아로 드러난다. 반면, 위에서 살펴본 개인화(individualisation)에서 에고는 일종의 대리 자아(a surrogate self)의 기능을 한다: 인간은 먼저는 개인화의 과정을 통해 성숙할 필요가 있으며 여기서 에고는 조직화하는 중심으로 기능한다; 하지만 에고의 역할은 우리의 참 자아인 영혼을 위한 도구이며, 따라서 자신의 사명이 완수되면, 그 주도권을 우리의 영적 자아에게 내어줘야 한다. 여기서의 영적 자아는 융의 셀프처럼 인간 존재의 전체성을 대표하는 참 자아(the true self)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융이 이야기하는 무의식과 의식을 통합하는 진정한 자아로서의 셀프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슈리 오로빈도와 마더에 따르면, 무의식이 아닌, 신성 혹은 신적 의식과의 연합(yoga as union(연합으로서의 요가))--요가 전통에서처럼—이 에고 초월의 관건이다.


이 에세이의 앞부분에서 필자는 자연적,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 역시 중요한 존재의 기반으로 보는 입장이 인도 영성 전통 안에 존재해왔으며, 이들의 가르침들은 건강한 에고의 성장과 만족을 배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즉, 반복되는 삶과 죽음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윤회라는 고리를 끊고 자유를 얻는 것이, 혹은 자연적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조건을 초월하여 신성과의 연합을 통해 자유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였던 대부분의 인도의 철학 전통들에서는, 에고는 자유를 성취하는 길에 놓인 장애물이었다. 어찌 보면 삶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로도 해석이 가능할 이런 철학적 전제에, 슈리 오로빈도와 마더의 에고에 대한 재해석 작업은 인간 존재의 육체적, 심리적, 지적 성숙과, 의식의 진화를 통한 영적 자아실현이라는 이상, 그리고 이를 위한 도구로서의 에고의 기능을 인정함으로, 인간 삶에 대한 보다 긍정적, 통합적 비전을 인도 영성 철학에 더하고 있다.


명확하게 우리 심리적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의 에고, 그리고 이 에고를 둘러싼 중요성과 문제들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안고 있는 이중의 부담, 즉 에고를 통한 성장과 에고를 초월함으로 성장해야 하는, 그 두 가지 과제를 다 감당해야 하는 인간의 운명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이 두 가지를 과제를 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을 제시한 심리학과 인도 영성 전통의 길들을 다섯 개의 에세이들을 통해 살펴보았다.

 

 

 

[각주]

1.      Sri Aurobindo, The Life Divine, pp. 231-232

2.      Brhadaranyaka Upanisad 1.4.1-3, The Early Upanisads

3.      Essays on the Gita p. p. 275  

4.      Sri Aurobindo, The Life Divine, pp. 233-234

5.      the Mother, On Education, 11-12

6.      the Mother, On Education, 11-12

7.      The Mother, Becoming One, 58-62

8.      the Mother, Becoming One, 58-59

9.      the Mother, Becoming One, 62

10.    the Mother, Becoming One

11.     the Mother, On Education, 11-12

12.     the Mother, On Education, 11-12



[참고 서적]

Deutsch, Eliot. The Bhagavad Gītā [1st ed.]. New York: Holt, Rinehart and Winston, 1968.

Mirra Alfassa (the Mother), On Education (Vol. 12, CWTM), (Pondicherry, India: Sri Aurobindo Ashram Trust, 1978, 2002)

Olivelle, Patrick. The Early Upanisads Annotated Text and Transla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8.

Sri Aurobindo. The Life Divine Pondicherry: Sri Aurobindo Ashram, 1973.

Sri Aurobindo, Essays on the Gita, Sri Aurobindo Ashram,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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