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행의 설렘도, 한국에서의 꿈같던 시간들도, 다시 돌아온 일본에서의 지독한 감기도 모두 뒤에 두고, 무엇이 새로운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돌아온 스타벅스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꼴랑 두 달 사이에 바뀔 것이 없는 것이 당연한데(특히나 일본에서는) 의자 위치 하나도 바꾸지 않은 것이 쪼끔 아쉬운 감이 들었다. 아마도 특별한 변화를 꾀하지 못한 나에 대한 실망을 괜스레 이곳에 뿌려대는 것 같았다. 나도 내 마음을 몰라서 추측해 보면 말이다.
오전의 아주 작은 사건으로 마음이 심드렁해졌다. 나의 감정으로 소중한 하루를 망치고 싶지 않아 꾸역꾸역 화남 상태를 속으로 밀어 넣으며 스타벅스에 왔다. 노트북을 열어보니 방전 직전.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자리 두 곳은 당연히 솔드 아웃. 결국 노트북을 접고 가져온 진짜 노트를 펼쳤다. 목표 백번 쓰기를 했다. 그리고 김훈작가의 '허송세월'을 천천히 필사했다. 천천히 예쁘게 쓰고 싶었다.
스피커에서는 잔잔한 팝송이 흘러나오고, 간간이 들리는 블랜더 가는 소리와 주문하는 소리들이 쓰기에 몰입하도록 조미료가 되어 주었다. 좋은 문장을 천천히 쓰면서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의 찌꺼기가 서서히 가라앉음을 느낀다. 다행히 필사를 마칠 때쯤은 '창작 가능'의 초록색 마음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적당한 시기에 충전할 수 있는 자리가 생겼다.
얼른 자리를 바꾸고, 김훈이 된냥 글을 끄적여본다. 김훈의 ㄱ도 어림없지만 말이다.
다시 일본 적응의 시대이다. 그리고 첫발을 디딘 스타벅스는 여전히 내 글쓰기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조미료이자 둥지가 되어주고 있다. 이제 다시 이곳의 따뜻한 온기로 많은 글을 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