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카카오톡을 정리하다 우연히 선물함의 스타벅스 쿠폰을 발견했다. 무려 작년발행이자 기한을 코앞에 둔 쿠폰이었다. 작년에 지인이 보내주셨는데 여태 받은 줄도 모르고 계셨던 것이다.
응? 누가? 작년에 보내셨다고?
일 년 만에 감사카톡을 받은 그분은 기분이 어땠을까? ㅎㅎ
아무튼 생명이 다해가는 쿠폰을 소생시키고자 점심 먹고 스벅에 가기로 했다. 외식 메뉴는 짜장면과 짬뽕. 일본에서 제일 그리운 음식 중의 하나가 한국의 짜장면, 짬뽕이었다. 솔직히 우리가 간 곳의 음식맛은 그저 그랬지만 한국에서 먹는다는 기쁨과 만족감만으로도 충분했다. 든든하게 먹고 스타벅스를 외쳤다.
"아빠, 터미널 앞쪽 부근에 스타벅스 가자. 쿠폰 써야 돼."
아빠에게 카페는 달나라다. 가본 적도 없고 가야 할 이유도 없는 곳이다. 자식들이 와서 따라가기는 하지만 앉자마자 소주 마시듯 원샷하고 일어나야 하는 곳이다. 컨디션이 좋은 날의 아빠는 잘 따라오고 커피도 느긋이 마실줄 아는 신세대 시니어가 된다. 하지만 오늘같이 컨디션이 흐린 날은 기대하면 안 된다. 알면서도 강행했다. 쿠폰과 우리의 추억을 위해서.
우리가 간 곳의 스벅은 이층이다. 이층이 더 조용하고 넓고 대화하기 해도 편하다. 경관도 좋다. 우리는 넓은 이층을 두고 일층 문옆에 앉았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테이블에 앉은 아빠에게 이층도 있다고 알려주자 한마디가 날아왔기 때문이다.
"이층까지 가? 여기서 그냥 마시고 가면 되지."
음료수를 주문한다. 오늘은 커피대신 병음료수를 골랐다. 햇사과주스, 망고주스, 케일주스, 오렌지주스, 그리고 초콜릿케이크. 생각 없다는 아빠에게 사과주스를 들이민다. 실패. 초콜릿케이크를 한 조각 푹 떠 아빠 입으로 가져간다. 실패. 재도전. 실패. 다시 재도전. 또 실패. 포기하고 우리끼리 먹는다. 그리고 아빠는 먼저 나가있겠다며 일어나 사라지신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착하지만 고지식한 아빠가 욕을 먹을까 걱정이다. 평소엔 말없이 손주들에게 다 맞혀주시는 분인데... 그래도 오늘은 너무하긴 했으니 강행하는 걸로.
아무튼 그 뒤로 엉덩이에 가시가 박힌 듯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괜히 엉덩이가 들썩들썩해진다. 입은 케이크를 먹으면서 눈은 자꾸 두리번두리번거린다. 결국 스벅 입성 10분도 안돼 탈출!
뷰가 멋진 이층에 앉아 원두향을 음미하며 공간의 느긋함을 즐겨야 하는 곳이 스벅 아닌가? 혼자였으면 두 시간은 알차게 보내고 나오며 쿠폰값을 두둑이 했다고 배를 두드렸을 곳인데...
"집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나오네."
나의 볼멘 투정에 엄마가 깔깔대며 웃는다. 입이 터지게 웃는 외할머니를 아이들이 바라본다. 나도 들키지 않게 배시시 따라 웃는다. 아빠는 그러든지 말든지 무관심하게 걸어간다.
이 모든 것이 행복했던 추억 한 조각이 될 것이다. 훗날 피식피식 웃으며 얘기할 황당하고 웃기고 행복하고 소중했던 추억이 되겠지. 그러면 되었다. 오늘도 아빠와의 추억 한 조각을 잘 모았으면 그걸로 충분한 오늘의 스타벅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