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는 강원도로 연결되는 관문이었던 보물 제1호 흥인지문(興仁之門). 한양도성의 정동에 있어서 동대문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오늘날에는 문 남쪽으로 의류도매시장과 복합쇼핑몰이 잘 어우러져 외지인들도 많이 찾는 우리나라 최대 패션 관광특구이기도 하다.
문 북쪽으로는 도성을 따라 좌우로 마을이 있는데, 좌측은 이화동, 우측은 창신동이다. 이 둘은 주거비가 싸고 동대문 시장과 가까워서, 한 때 가내봉제공장들로 가득했다. 그러다가 의류업이 자동화되는 길을 걷게 되면서 이화동 봉제공장의 흔적이 서서히 사라지다가 최근 낙산 성곽 주변에 도시 재생사업을 하면서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관동으로 가는 관문이었던 동대문과 한때 동대문 시장의 역사와 함께했던 이화동 벽화마을을 찾아가 보았다.
흥인지문 이야기
도시철도로 동대문을 가려면 서울 지하철 1호선과 4호선 동대문역에서 내리면 흥인지문을 바로 볼 수 있다. 참고로 1호선은 서울역과도 연결된다. 각지에서 차를 타고 동대문으로 오는 경우 한남대교를 건넌 후 장충단로를 따라서 오면 된다.
나는 부산사람이라 서울역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면 숭례문을 먼저 보는 편인데, 흥인지문도 숭례문과 더불어 문루가 다포식 2층 구조로 되어 있는 데다가 경복궁 건물처럼 지붕 좌우로 잡상이 있어서 다른 지역의 성문보다 위용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앞뒤가 뻥 뚫려 있는 숭례문과 달리 흥인지문은 항아리 모양의 성곽이 입구를 가리고 있다. 항아리 모양의 성곽을 옹성이라고 하는데, 통나무를 들고 성문을 공격하는 것을 막아줘서 수비진이 성문을 방어할 때 용이하기에 옛 읍성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흥인지문의 경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경복궁에서 광화문 광장을 바라보는 기준으로 좌청룡에 있는 낙산이 인왕산, 북악산, 남산보다 낮아서 풍수사가 봤을 때 외적의 침입이 잦을 것이라고 봤다. 즉 흥인지문의 옹성은 동쪽에 약한 기를 보충하기 위한 풍수 목적도 있다.
보물 제1호 흥인지문(興仁之門). 한양도성의 성문 중 유일하게 옹성이 있는데, 지대가 낮은 낙산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풍수 목적도 있다.
그리고 조선은 성리학을 표명한 국가이기 때문에 동, 서, 남으로 맹자가 언급한 인, 의, 예를 붙였다. 이렇게 되면 흥인문, 돈의문, 숭례문이 되어야 하는데, 갈 지(之) 자가 붙여서 네 자다. 글자를 추가로 붙인 이유는 동대문이 세워진 곳이 습하고 낮은 토대여서 이를 보충하기 위한 것.
흥인지문이 건립된 건 태조 5년(1396)이다. 이후 단종 1년(1453)에 중수되다가 고종 6년(1869)에 크게 개축하여 오늘날에 이른다. 조선 후기 효종 때에는 성문 부근에 훈련도감의 분영인 하도감을 설치했고, 정조 때에는 국왕의 호위를 담당하는 장용영도 이곳 근처에 설치했다고 하니, 한 때는 군사지구였던 셈이다. 조선 후기 군사지구였던 곳은 광복 이후 의류도매시장이 생기면서 패션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된다.
또한 흥인지문은 구리, 양평을 거쳐 강릉과 평해(오늘날 경상북도 울진 평해읍, 조선시대에는 강원도 관할이었다)로 이어지는 관동대로가 시작하는 지점이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오늘날 중앙선을 타고 서원주역까지 가다가 강릉으로 가는 KTX선형과도 비슷한데, 청량리역이 옛 동대문의 역할을 이어받았다고 해야 하나. 물론 성문을 지나는 6번 국도도 양평과 횡성을 거쳐 강릉으로 가기에 지금까지도 강원도로 가는 길목이라고 할 수 있다.
도성 안에서 바라본 흥인지문. 문 왼쪽의 도로는 강릉으로 가는 6번 국도다.
한양도성과 이화동 벽화마을
보통 흥인지문을 구경하면, 관광객들은 성문 남쪽에 있는 동대문플라자나 패션타운을 간다. 팬데믹 이전에는 무려 800만 명의 관광객과 바이어들이 방문했다고 하니 서울의 대표 관광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패션특구의 반대방향으로 갔는데, 옛 한양도성이 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도성이 시작하는 곳을 보니 옛 돌 위에 한자들이 새겨져 있다.
훈국 책응겸독역장 십인 사 한필영 일패장 절충 성세각 이패장 절충 김수선......강희45년 4월 일 개축
강희 45년이면 숙종 32년(1706)이다. 절충은 정3품 무관벼슬인 절충장군의 준말이고, 책응겸독은 축성의 기획과 감독을 겸한 직책이다. 오늘날 준공비에 새겨진 공사참여자 명단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조선시대에도 공사실명제를 실시하여 하자가 발생하면 그 방면 감독관에게 보수를 명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양도성의 각자성석(刻字城石). 공사담당자의 이름과 직책이 적혀 있다.
도성길로 올라가면 먼저 한양도성박물관에서 도성의 역사를 볼 수 있다. 한양도성도 이성계가 천도한 지 2년 만(1396)에 축조되었는데, 무려 2차에 걸쳐 진행되었다. 1, 2차 공사가 진행되었던 일수는 각각 49일. 상당히 짧은 기간이라 인력도 많이 동원되었는데(게다가 오늘날 같은 중장비도 없던 시대였다), 1차는 약 12만 명, 2차는 약 8만 명이나 동원된 대규모 국가사업이었다.
엄청나게 정성 들여 만든 도성이어서,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에도 조선 왕들은 도성을 계속 보수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 때 근대화라는 명분으로 도성이 많이 훼손되다가,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공작원들이 청와대를 습격한 1.21 사건 때문에 북악산 일대부터 다시 정비를 시작하며 서서히 옛 모습을 다시 찾게 된다.
한양도성 박물관 전시관 내부. 도성 축조의 역사를 자세히 볼 수 있다.
박물관 밖을 나와서 보니 저녁 무렵 흥인지문과 주변 건물들이 화려함을 뽐낸다. 그 뒤로 성곽을 따라 걸어보니, 성곽 좌우로 고즈넉한 마을이 있다. 좌측은 이화동, 우측은 창신동이다. 부산에 사는 내가 봤을 때는 서울판 감천문화마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둘 다 언덕 위에 불규칙하게 집들이 형성되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게다가 감천문화마을은 인근 구평산업단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터전이었고, 이화동과 창신동은 동대문 시장에 의류를 공급하는 가내봉제공장으로 가득했다고 하는데, 둘 다 60~70년대 산업화와 얽혀 있다는 게 인상 깊다.
도성따라 낙산으로 올라가는 길. 왼편이 이화동이다.
성곽 건너 보이는 창신동 주택가. 창신동은 오늘날에도 봉제공장들로 가득하다.
이화동도 동대문 시장에 옷을 공급하는 봉제공장으로 가득했지만, 자동화 설비의 발달과 중국 제조업의 발달로 공장들이 쇠퇴하여 위기를 맞았다. 그러다가 최근 벽화마을 도시재생사업으로 작은 상점들과 카페들이 들어섰는데, 인근 낙산공원과 함께 숨겨진 관광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어둑어둑한 밤에도 다양한 마을의 장식물과 벽화 그리고 멋진 야경을 선사하는 카페들이 나의 눈길을 끈다.
낙산공원을 지나 대학로 방향으로 내려가면 벽돌담이 보인다. 비 오는 밤 벽돌담 사이로 기와집이 어렴풋이 보이는데, 이승만 대통령이 살았던 이화장이다. 원래 이곳은 조선시대 문신인 신광한의 집터였다고 하는데, 인조 때는 인평대군이 거주했던 곳이기도 했다.
이화동 벽화마을 초입부. 담장에 아기자기한 장식들로 가득하다.
도시재생 사업으로 변모한 이화동 벽화마을. 언덕 위에 경관이 좋은 카페들로 가득하다.
그러다가 해방 이후 이승만이 귀국하면서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경무대로 옮기기 전 이곳에 정착했다. 대한민국 초기 김구의 경교장과 김규식의 삼청장과도 대립했던 이력이 있는데, 해방 이후 셋의 관계가 상당히 악화했음을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안에는 그의 유품이 있지만, 낮에 다시 갔을 때도 보수공사 중이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이화동 윗동네는 70년대의 산업화의 성지, 아랫동네는 대한민국 초기 정치 대립이라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묘한 기분이 든다.
이화동에서 대학로로 내려가는 계단
흐린 날 언덕 아래 어렴풋이 보이는 기왓집 이화장. 경무대로 들어가기 전 이승만의 정치무대였다.
한양도성 동쪽에 있는 흥인지문. 성문 남쪽으로는 동대문 패션관광특구 북쪽으로는 한양도성을 따라 이화동 벽화마을이 도성 건너 창신동을 바라보고 있다. 봉제공장으로 가득했던 언덕 마을은 동대문을 패션의 중심지로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흥인지문도 앞으로 변화를 맞이할 것 같다. 비록 관문 역할을 청량리역에 내줬긴 하지만, 관동대로를 거의 그대로 따라가는 경강선 KTX뿐만 아니라 2024년 원주에서 제천, 안동, 경주, 울산을 거쳐 부산 부전역으로 가는 중앙선 KTX의 시점이기도 하다. 그동안 기차 타고 서울 도심에 올 때 경부선을 타고 항상 숭례문을 거쳤는데, 이제는 옹성이 있는 흥인지문을 구경하고 주변을 도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한양도성 언덕에서 바라본 동대문. 2024년에는 강원도 뿐만 아니라 경상도와 부산으로도 가는 관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