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일지 5
브런치를 찾은 지 너무 오랜간만이다. 약 두 달의 시간 동안 글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분명 여러 글자들을 조합해 문장을 만들어냈지만 그 문장 안에 담긴 것은 우울하고 추악한 감정뿐이 없었다. 읽는 사람의 기분만 상하게 할 부정적인 글자들을 보면서 브런치를 감정의 배설지 마냥 이런 글들을 올려도 될까 싶었다. 어떠한 읽을만한 글조차 만들어내지 못하는 스스로의 한심함도 너무 괴로웠다.
그러나 돌이켰을 때, 다른 누구보다도 나를 위해, 익명의 어딘가에 내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털어놓기 위해 시작하지 않았던가. 앞으로 이어질 나의 자아성찰과 자책, 불안과 분노에 감정적으로 피곤해질 수 있음을 미리 경고하며 글을 시작한다.
가만히 멍 때리며 생각하는 시간들의 90%에서 나는 '그냥 그만하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최근에 깨달은 것으로 나는 리셋을 무척 선호한다. 한 번 어긋난 것을 고치려고 노력하기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롤 한판을 하더라도 라인전을 5분 만에 말아먹으면 끝까지 해봐야지,라는 마음을 먹기보다 그냥 이번판 버리고 빨리 다음 판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모든 종목에서 그렇다. 그런 면에서 내가 하는 공상의 대부분이 'xxx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만약 돌아간다면'이라는 건 놀랍지 않다. 잘못된 선택과 결정이 너무 많아서 어디까지 돌아가야 그것들을 되돌릴 수 있을까 고민한다. 한 달 전이라면? 그걸로 안된다면, 올해 초는? 그때 그 여름이라면? 등등.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나의 모습에는 조건이 수없이 많은데 정작 내가 만족하는 기준은 단 하나도 없다. 어쩌면 내가 그만큼이 될 수 있을 거라 과대평가한 탓일 수 있겠다. 능력 없는 나를 인정해야 하는 사실에서 어쩌면 나는 핑곗거리로 우울증을 찾은 게 아닐까? 시험 못 본 학생이 아, 이번 시험은 감기에 걸려서 공부를 못했어요라고 하듯이 아, 이번 생은 너무 우울해서 제대로 살지 못했어요 하고. 무기력에 빠져서 성실하지 못했고, 운동이나 식습관 같은 작은 자기 관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가슴에 가득 찬 불안과 우울이 나를 불완전하게 만들어서 좋은 인간관계를 맺지 못했고 좋은 사람이 되지 못했다고, 그래서 내 삶이 이 모양이라고.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이유가 있었다고. 그렇게 핑계 대며 삶을 바르게 고치지 못하는 나의 모습에서 나는 또 고통받고, 자책하며, 그것은 또다시 우울의 양식이 되어서 악순환은 돌아간다. 그래서 그냥 가장 빠르게 이번 삶을 끝내고 싶은 게 나의 가장 근본적인 심리상태이다. 노력이 힘드니까, 그냥 한심하게도 더 이상 이번 삶을 플레이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한심한 게 너무 싫다. 주위보다 굼뜨고 뒤쳐지며 특별하지 못하고 하찮은 그런 한심함이 너무너무 싫다. 근데 나의 세상에서 제일 한심한 게 나였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정말 괴롭다.
나한테 두 번째 삶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과연 더 잘할 수 있을까? 내가 해내지 못한 것들을 그때에선 해낼 수 있을까? 근 며칠은 정말 감정적으로 너무 힘든 나날이었다. 정말 가슴이 콱 막혀오는 두려움과 우울에 오늘 나는 햇빛 아래에서 걸어가며 생각했다. 나는 도저히 더 살아갈 수가 없겠다고. 이런 감정을 느끼면서 앞으로 수십 년을 살아가지는 못하겠다고. 정말 그만하고 싶다고. 신이 나타나 나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준다면 나는 그 기회를 더 의미 있게 쓸 누군가에게 양도하고 싶다. 지금 원하는 건 리셋이 아니라 엔딩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