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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성명(通姓名)

2025.09.20

by 강준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세 번은 만나봐야지.”

흔히 ‘삼세판’이라는 말이 있다. 나 역시 그 말에 충분히 동의했고, 누군가에게 비슷한 조언을 하곤 했다.

그런데 막상 내 일이 되었을 땐, 그게 쉽지 않았다.
첫 만남에서 ‘아닌 것 같다’는 확신이 들면, 추가로 시간을 쓰고 노력을 기울여 내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기보다, 그 확신을 더 단단하게 굳혀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좀처럼 애프터 신청을 하지 않았다.
상대방이 제안하면 거절하지 못해 예의상 나간 적은 있었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만남에 스스로 시간을 내는 경우는 드물었다.

아마도 누군가를 만나려는 물리적, 혹은 마음의 여유 자체가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최근 인기 있는 연애 프로그램을 봐도, 사람들은 첫 만남에서 설렘, 이성적 호감, 혹은 ‘불편하지만 좋은’ 묘한 느낌을 찾는 듯하다. 물론 그런 도파민 같은 불쏘시개는 단기간에 불을 지피는 데 아주 좋은 재료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솔로> 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종종 의문이 들었다. ‘저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만큼 깊이 빠질 수 있을까?’ 입버릇처럼 모든 걸 다 내어주겠다고 말하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당장 결혼할 것처럼 보이던 커플들도 현실로 돌아오면 오래가지 못하고 깨지기 일쑤였다.


T이자 철저한 이공계 성향을 가진 나로서는 호르몬의 장난 같은 관계를 좋아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제대로 판단하려면, 오히려 그런 도파민이나 불쏘시개 같은 불이 꺼졌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온전한 모습을 알 수 있다고 믿었다.
요즘처럼 세 번 만나고 고백하는 것이 ‘국룰’처럼 굳어진 세상은 나와 맞지 않았다.
그렇게 빠르게 지쳐가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나와 맞는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다.

사실 나는 현대 사회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조금은 고집스러운 선비였다.


학업에서 일에서는 극도의 효율과 속도를 추구하는 것과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이런 나였기에 그 사람과의 첫 만남에서 상대방의 이름조차 묻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재밌는 사실은 상대방 역시 내 이름을 묻지 않았다.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도...


그 부분에서 호기심이 생겼다.

솔직히 말하면 그 첫 만남에서 엄청난 호감을 느꼈거나 도파민을 느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처음 느껴보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잘 모르겠는데 왠지 이 사람과 만나게 될 것 같다'


그렇게 생긴 호기심으로 애프터를 신청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한 번 더 대화해 보실래요?"

"네, 그래요"


며칠 뒤, 우리는 옥수역 근처의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사람이 거의 없고, 조용하고, 어쩐지 조금은 음침한(?) 분위기의 곳이었다.

그날의 대화 주제는 어린 시절이었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어떤 생각을 품고 살아왔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속에서도 묘하게 닮은 점이 많았다.


첫째, 내가 수능을 치른 뒤 집을 떠나 홀로 자취를 시작했던 것처럼 이 분도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혼자 살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우리 둘 다 옥탑방 같이 허름한 곳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었다.
또, 생활비를 스스로 벌기 위해 과외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돈에 쫒기면서 학창 시절을 보낸 것도 닮았다. 심지어 삼성 드림클래스 활동을 했던 경력까지 똑같았다.


둘째,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스스로 찾아 나섰다.
집에 손을 벌리지 않고 학자금과 생활비 대출을 받아가며 학업을 이어갔고, 그만큼 각자의 삶에 주체적이었으며 책임감과 욕심이 많았다.
그 ‘욕심’은 단순한 탐욕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강한 열망이었다.

그래서일까 둘 다 '가고 싶은 학교 vs 전액 장학금을 주는 학교'라는 선택지 중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에도 망설임 없이 전자를 택했던 것도 일치했다.


마지막으로, 오랜 자취 생활은 우리에게 절약을 습관처럼 새겨놓았다.
잦은 이사와 집주인과의 실랑이를 겪다 보니 ‘내 집 마련’이란 말이 인생에서 중요한 로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여러 대화를 나누었지만, 여전히 호기심과 신기함이 공존했다.
약 두 시간쯤 이야기를 나눈 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지 않은 채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쩐지 서로에 대한 경계심이 조금은 풀린 듯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명함을 주고받자는 제안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명함을 통해 통성명(通姓名)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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