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린이 다이어리 25
※ 삿포로시의 나카지마공원 전경(출처: 삿포로 관광협회 홈페이지)
"어디를 달리는 것이 좋을까?"
5월 마지막주에 여자 친구와 일본 삿포로를 다녀왔다. 이런저런 개인사로 인해 코로나 이전에 나가보고, 그 후 첫 해외여행이었다.
한 달 전에 항공권을 끊고, 호텔을 예약하고 나서 본격적인 여행지 공부를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블로그와 네이버 카페에 관광과 먹거리 정보가 많았다.
그러다가 문뜩 삿포로에도 달릴만한 곳이 궁금해졌다. 여행 가서까지 아침에 달리러 나가면 너무 심한가 싶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삿포로 러닝 코스'를 검색했다. 여러 블로그가 검색됐다. 그 결과가 놀랍고도 반가웠다.
해외에 나가서도 달리는 여행객들이 제법 있었다! 평소 습관처럼 해외에 가서도 새벽에 삿포로의 유명한 달리기 코스를 달렸다는 블로그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은 러닝을 위해 러닝화를 따로 싸갔다는 것이다! 이런 반가울 데가! 나만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삿포로 달리기 코스를 소개하는 페이지도 검색됐다.
지난 3월 말 경주 첫 원정에서 절반의 성공이 떠오르며, 삿포로에서는 유명 조깅 코스를 제대로 달려봐야겠다 싶었다. 이번에는 중도포기 하지 말고 원하는 코스를 제대로 달려보겠노라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그러다가 문뜩 미국 LA에 사는 친구가 떠올랐다. 야구를 좋아하는 그의 버킷리스트는 미국 곳곳의 모든 메이저리그 팀 야구장을 다 가보는 것이다. 마치 그 친구처럼 여행을 가서 각 도시의 유명 달리기 코스를 달려보는 것도 하나의 낭만이 아닐까?
마침 삿포로 공부를 하기 위해 산 홋카이도 여행 책자'리얼 홋카이도(이무늬, 이근평 지음)'에 '삿포로 러닝 코스'가 소개되어 있었다. 사실 이 책을 산 가장 큰 이유가 전체 350 페이지 중에 불과 한 페이지 밖에 안 되는 러닝코스 소개 때문이었다. 다른 이유로 여자 친구 역시 이 책에 알찬 정보가 많다고 좋아했다.
책에서 소개된 코스는 도요히라강 녹지공원, 나카지마 공원 순회 코스, 마루야마 공원 코스, 홋카이도대학 코스 4군데였다. 이 책의 소개에 따르면 각 러닝 코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도요히라강 녹지공원
도요히라강 녹지공원은 삿포로의 젖줄 도요히라강을 옆에 두고 달리는 러닝코스다. 도요히라강은 72.5km 길이의 상당히 긴 강으로 마치 서울의 한강처럼 삿포로시 동쪽을 관통하고 있다. 도요히라강 녹지공원은 일정한 간격으로 다리가 놓여있기 때문에 달리는 거리를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이며, 게다가 강변 길이 잘 정비되어 안전하게 달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 나카지마 공원
나카지마 공원은 삿포로역 중심가에서 남서쪽에 위치한 공원으로 규모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한 바퀴를 다 돌아도 1km 정도다. 다만 봄가을에는 풍경이 무척 아름다워 마냥 뛰지 못하고 멈춰 서서 풍경을 돌아보게 되는 단점 아닌 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 마루야마 공원
오르막 내리막 변주가 있는 달리기를 좋아한다면 마루야마 공원을 추천했다. 마루야마공원은 삿포로역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2.2km 떨어져 있으며, 홋카이도신궁과 붙어있다. 마루야마공원역에서 홋카이도 신궁을 거쳐 육상 경기장, 야구장으로 향하는 산길이 꽤 가파르지만 아침 새소리를 들으며 상쾌한 공기를 들이켜다 보면 어느덧 내리막길을 만나게 되어 달리는 재미가 있다고 한다.
◇ 홋카이도대학
1918년에 설립된 홋카이도대학은 일본 최상위권 명문 국립대학이다. 홋카이도대학 병원에서 출발해, 처음에는 대학 바깥쪽 길을 뛰다가 북쪽 입구를 통해 대학 안으로 달리는 코스를 추천하며, 홋카이도 대학 안에는 숲도 있고 달리는 길이 다채로워 뛰는 맛이 난다는 설명이다.
책에서 소개된 코스를 보고 구글맵을 통해 찾아봤다. 내가 고른 코스는 홋카이도대학과 도요히라강 녹지공원이었다. 이 두 군데는 삿포로에 가서 달려보고 싶었다. 삿포로역에서 홋카이도대학은 북쪽으로 1km 거리였고, 도요히라강 녹지공원은 삿포로역에서 동쪽으로 시내를 관통해서 2.4km~3km 거리에 있었다. 스스키노역에서 홋카이도대학은 2.4km였고 도요히라강 녹지공원은 1km였다. 내가 예약한 호텔은 삿포로역 바로 옆이었고, 홋카이도대학이 접근성이 더 좋았다.
그리고 삿포로역과 스스키노역 사이에 길게 위치해 있는 오도리공원도 달리기 좋아 보였다. 오도리공원은 삿포로시의 남과 북의 경계가 되며 도로를 따라 동서로 길게 뻗어있는 독특한 형태의 공원으로 이곳에서 삿포로 눈축제, 라일락 축제, 여름 축제 등 다양한 축제들이 열리는 곳이다. 오도리공원의 한쪽 끝인 삿포로 TV 타워에서 반대편인 삿포로시 자료관까지 약 1.6km 거리다. 그리고 오도리공원은 12개의 블록으로 연결되어 있어 11개의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 것이 단점이었다. 하지만 TV 타워에서 찍은 오도리공원의 전경은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근사했다.
그래도 평소에 실외를 많이 달려봐서 그런지 1km에 대한 거리 감각은 있다. 구글맵에서는 1.4km를 도보로 걷는데, 20분이 걸린다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더 짧게 걸리곤 한다. 그래서 구글맵으로 달리기 코스까지의 거리를 요리 저리 재보니, 그래도 가볼 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홋카이도대학, 그리고 가능하면 도요히라강 강변 공원을 달리기도 했다. 도요히라강 강변 공원이 여의치 않으면, 오도리 공원을 달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기온은 한국보다 위도가 높은 홋카이도 지방이다 보니 남색 긴 추리닝 바지, 바다의 날 기념 마라톤 대회 기념품인 녹색 스포츠 티셔츠, 그리고 혹시 몰라 회색 방풍 재킷을 챙겼다. 러닝화는 따로 챙길까 하다가 '미즈노 라이더 24'를 신고 가기로 했다. 일산호수공원을 달릴 때 신는 '아식스 매직 스피드 3'은 달릴 때는 폼나지만, 왠지 관광 다니면서 신기에 색상이나 디자인이 너무 튀는 것 같았다. 그래서 피트니스 러닝머신용으로 사용하던 회색 '미즈노 라이더 24'를 신고 갔다. 관광과 달리기 범용으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홋카이도대학, 도요히라강 녹지공원, 오도리공원 세 군데를 머리에 넣어두고 삿포로행 비행기에 올랐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