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린이 다이어리 26-1
※ 홋카이도대학 교정을 달리는 모습
홋카이도대학 교정을 달린 첫 소감은 한마디로 '청량함'이었다.
삿포로에 도착하고 다음날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갈수록 새벽잠이 없어진다. 큰일이다.'
둘째 날은 오전에 오타루시를 가기로 했다. 삿포로역에서 JR급행을 타고 40분 정도 가야 한다.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이 되는 오타루시는 오타루운하, 오르골당 등이 주요 관광 명소다. 오전부터 먼 길을 나설 계획이지만, 홋카이도대학도 달려보고 싶었다. 그래서 눈이 더 일찍 떠 쪘다. 눈을 뜬 것이 아니라 떠진 것이다.
삿포로에 도착한 첫날 날씨가 생각보다 바람이 차고 추웠다. 첫날부터 긴팔 청자켓 위에 회색 방풍 재킷을 꺼내 입었다. 그래서 둘째 날 아침도 추울까 봐 걱정됐다. 일기예보를 보니 서울보다 아침 기온이 2~3도 정도 낮았다. 일단 반팔티 위에 방풍 재킷을 입었다. 찬바람만 안 맞아도 달릴만했다.
러닝화 끈을 묶고 방풍 재킷 지퍼를 턱밑까지 올린 후 호텔 밖을 나서니,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어제는 찬 느낌이었다면, 오늘 아침은 아주 시원했다. 그리고 공기가 맑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미 5시 이전부터 날이 밝아와, 달리기 딱 좋았다.
왼손에는 구글맵을 켠 스마트폰을 들고 홋카이도대학을 찍었다. 호텔에서 북쪽으로 1km가 조금 넘는 거리였다. 워밍업 할 겸 천천히 뛰었다. 삿포로에서는 관광 모드로 달리기로 했다. 천천히 느긋하게 길을 찾아가며 달리면서, 중간에 구경하고 사진도 찍는, 말 그대로 코스를 즐기면서 달리기로 했다. 해외까지 와서 초행길을 맹렬하게 달린 기억만 남기고 싶지 않았다. 사실 초행길이라 길을 찾아야 해서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자칫 속도를 내서 달리다가 길을 잃을 수 있었다.
이번에 달리는 홋카이도대학에서는 '헤이세이 포플러 가로수길'과 '홋카이도대학 은행나무 가로수길'을 달리는 것이 목표였다. 홋카이도대학 교정은 홋카이도 마라톤 대회 코스에 포함될 정도로 경관이 수려하기로 유명했다.
평상시 일산호수공원은 코스를 잘 알아서 내가 원하는 페이스로 달리면 됐다. 하지만 3월에 경주 보문호수, 5 월에 집 근처 경의누리길을 달리면서, 천천히 모르는 길을 찾아가며 달리는 관광 모드로 달려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일산호수공원을 달리면서 벚꽃 시즌이 되면 중간에 멈춰 사진도 찍고 싶었다. 하지만 달려야 한다는 강박으로 인해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달린 적이 여러 번이다. 뒤돌아 생각해 보면, 나는 아마추어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달릴 필요가 있나 싶었다. 이제는 내가 즐겁게 달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두 블록을 가니 홋카이도대학 교정이 나왔다. 우선 대학 캠퍼스 경계선을 따라 왼쪽(서쪽) 방향으로 달렸다. 캠퍼스 경계는 짙은 초록색 철로된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다. 내가 달린 초입구에는 울타리 안에서 자란 나무에 초록 잎이 우거져서 나뭇잎들이 울타리처럼 보였다. 인도를 따라 쭉 이어지는 녹색 빛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느새 몸에 열기가 올라오며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래도 천천히 달리니 호흡은 안정적이었다.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 홋카이도의 서늘한 공기가 시원하기만 하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철로 된 울타리가 나오고 그 너머로 넓은 논밭이 보였다. 아마 농업대학 부지인 것 같았다. 대학 캠퍼스에 이렇게 큰 농지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좀 더 달려 농지를 지나니 풀밭이 나왔다. 풀밭에는 양 10여 마리가 한가로운 아침을 즐기고 있었다. 어떤 양은 아직 자는지 엎드려 눈을 감고 있었고, 울타리 인근에 있던 2 마리는 철 담장 옆에 앉아 풀을 뜯고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 10여 마리의 젖소들이 유유하게 풀을 뜯고 있었다. 양을 자세히 보기 위해 울타리로 다가가니 특유의 동물 냄새가 났다.
그렇게 구경을 하면서 울타리를 따라 2km 정도를 달리다가 '헤이세이 포플로 가로수길'이 나오자 오른쪽(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교정에 들어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