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린이 다이어리 26-2
※ 사진 설명: 홋카이도대학 교정을 달리는 모습
홋카이도대학의 산책 명소 중 하나인 '헤이세이 포플로 가로수길.'
말로만 듣던 포플러나무는 그 높이가 엄청 높았다. 족히 7m는 넘어 보였다. 거대한 나무들이 길을 따라 약 200m 정도 길게 늘어서 있는 경관이 장관이었다. 포플러 나무 사이를 달리니 마치 웅장한 마법의 성의 입구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탁! 탁! 탁! 탁!'
인적 없는 포플로 가로수길을 달리는 리드미컬한 발소리만 들렸다.
포플러 가로수길을 지나 길을 따라가자 실외 야구장이 나왔다. 이른 새벽인데도 운동부는 열심히 소리를 치며 운동을 하고 있었다. "캬! 역시 젊음의 열정!"이라고 감탄하기엔, 이 이른 시간에 꾸역꾸역 달리고 있는 나를 생각하니 단순히 젊음으로 포장하기에는 억지스러웠다. 아마 운동에 대한 열정이 아닐까? 무엇인가에 열정을 가지고 새벽부터 운동장에 나와 몰입하는 모습들이 멋있었다.
그리고 숲길로 이어졌다. 홋카이도대학은 교정에 나무를 지은 것인지, 숲에 교정을 세운 것인지 헛갈릴 정도로 곳곳에 다양한 나무들이 있었다. 그렇게 1km 정도를 더 달리자 홋카이도대학 교정을 길게 남북으로 관통하는 대로가 나왔다. 오른쪽(남쪽)으로 틀어 대로를 따라 삿포로역으로 가는 방향으로 달렸다. 이 대로는 길 폭이 3m~4m 정도 되는 왕복 2차선 도로로 양 옆에 푸른 잎을 풍성하게 피운 가로수 나무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포플러 나무 가로수길과는 또 다른 인상이었다. 푸른 나뭇잎으로 치장한 가로수 나무들 사이로 길게 뻗은 대로에 마치 빨려 들어가듯이 달리고 있었다. 경관이 멋있어서 잠시 발걸음을 멈춰 사진을 찍었다.
이 대로를 달리면서 홋카이도 마라톤 대회가 열렸을 때 맹렬한 속도로 홋카이도대학 교정을 질주하는 마라토너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대로의 폭이 넓어 10여 명의 마라토너가 나란히 달려도 여유가 넘쳐 보였다.
앞에 대로를 따라 달리는 두 세명의 러너들이 보였다. 외지에서 새벽 시간에 같은 코스를 달리는 러너들을 보면 반갑기만 하다. 낯선 길을 처음 달리면 아무래도 내가 달리는 코스가 위험하지 않을까 불안하기 마련인데, 함께 달리는 러너를 보면 한결 안심이 된다. 다른 러너의 존재가 위험한 장소를 달리는 것은 아니라는 신호로 다가왔다. 그리고 빨리 달리는 러너는 없었다. 조깅 속도로 여유롭게 달리는 이들이 더 많아서, 천천히 달려도 부담감이 없었다.
'흡! 후! 흡! 후!'
체감상 속도는 8.0km/h~9.0km/h 정도여서, 호흡이 힘들지 않았다. 여유롭게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즐기면서 달렸다. 길 양옆으로 큰 나무들이 풍성하게 피운 푸른 잎을 뽐내며 길가에 서있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상쾌하다. 그리고 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향이 청량함을 북돋웠다.
대로 중간에 사거리에서 왼쪽(동쪽)에 홋카이도대학 은행나무 가로수길로 빠졌다. 은행나무 가로수길이 어떤 길인지 궁금했는데, 샛 파란 어린 은행잎이 만개한 은행나무들이 도로 양옆으로 줄지어 서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수많은 은행잎들이 햇빛을 가리고, 그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은행잎들을 반짝 반짝이는 느낌을 주었다. 짙은 초록색부터 연한 초록색까지 다양한 초록빛이 어우러져 있고, 그 사이로 맑은 하늘이 보였다. 초록빛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모습을 보니 가을의 은행나무 가로수길이 기대됐다. 가을에 되면 노란 은행 잎들이 장관을 연출할 것 같았다. 은행나무길 끝에는 대학 교정에서 나가는 출구가 있었다. 출구에서 돌아 다시 대로 방향으로 와서 왼쪽(북쪽)으로 틀어 대로를 이어 달렸다.
대로를 따라 달리다 보니 왼편에 매점을 지나 홋카이도대학의 초대학장인 클라크 박사 동상을 구경하고, 교정 입구를 지나 호텔까지 쭉 달렸다. 전날 호텔 근처 패밀리마트가 폐업을 앞두고 있어 주변에 다른 편의점을 찾았었는데, 호텔 주변에 다른 패밀리마트, 세븐일레븐, 로손 등 편의점이 여럿 눈에 띄었다. 달리기를 안 했다면 삿포로역과 호텔 사이의 편의점 밖에 몰랐을 것이다.
이날 홋카이도대학 캠퍼스를 다양한 녹색 빛의 나뭇잎들이 내뿜는 청량함과 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향에 흠뻑 취해 달렸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출발점인 호텔이 눈앞이었다. 호텔 앞에서 달리기를 멈추고 심호흡을 하니 개운함이 밀려왔다. 이날 달린 거리는 대략 6.87km로 한 시간 걸렸다. 하지만 지도를 보니 홋카이도대학의 3/4 정도 달렸다. 아마 교정을 제대로 한 바퀴 달렸으면 10km는 나오지 않았을까?
홋카이도대학 교정의 푸르름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3박 4일 삿포로 일정 중 둘째 날부터 한국으로 떠나는 날까지 매일 아침 홋카이도대학을 찾았다. 셋째 날은 여자친구와 산책 삼아, 마지막날은 둘째 날과는 다른 코스인 대로로 홋카이도대학 교정을 관통했다가 돌아왔다. 3일 연속 방문했지만, 좀처럼 질리지 않았다. 교정을 가득 매운 자연이 주는 청량함에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오히려 시간만 더 있었으면, 교정의 곳곳을 달려보고 싶었다. 그리고 가을과 겨울에 다시 와보고 싶어졌다.
호텔 입구에 다다라 걸음을 멈춰 깊은 심호흡을 했다. 입가에서는 깊은숨과 함께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좋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