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를 습득하는 유일한 방법
나는 대학 1학년 때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학점도 2.5였고 F도 1개 떴다.
아마 리포트를 기한 내에 내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87학번이다. 노태우 시절 6월 민주화 운동으로 학교는 거의 폐쇄되었다.
수업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든 수업은 리포트로 대체되었다.
아무튼, 그 당시에는 집으로 성적통지표가 날아왔었다.
아버지가 내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그때 처음 보았다.
성적통지표에 F를 보시고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담배만 피우셨다.
그때 깨달았다.
‘아! 내가 정말 잘못하고 있는 거구나!’ , ‘이렇게 살면 안 되는구나!’라고.
2학년에 올라가면 일본어 과목만 수업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덜컥 겁이 났다.
그때 나는 일본어 히라가나도 제대로 못 외우고 있었을 때였다.
다른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운 아이들이 많았다.
나는 불어를 배웠었다.
그래서 1학년 겨울방학 동안 일본어 문법책 한 권을 뗐다.
지금도 참 잘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문법책 한 권을 떼고 바로 원어민이 수업하는 S어학원에 등록한 일이다.
처음에는 정말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세계 최고 언어학자 스티븐 크라센(Stephen D. Krashen)은 <언어를 습득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강연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한 가지 방법으로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
그것은 심리적으로 불안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해할 수 있는 Input을 받을 때이다.”
그는 언어를 배우는 유일한 방법은 모국어든 제2외국어든 딱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한다.
언어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이해할 때 습득된다.’라는 것이다.
나는 이 말에 200% 공감한다. 나도 이렇게 일본어를 습득했기 때문이다.
모국어를 배우는 메커니즘과 제2외국어를 외우는 메커니즘이 같다는 것이다.
언어를 배울 때는 일정한 기간 듣는 과정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 외국어를 배운 나도 4개월 동안 원어민이 하는 수업을 거의 듣기만 했다.
듣고 무조건 들리는 것을 받아썼다.
그 뒤 조금씩 들리는 것의 조합으로 단어와 단어를 연결했다.
아이들이 모국어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이다.
한 음절의 단어부터 아이들이 내뱉기 시작한다.
그 뒤에 ‘엄마, 아빠’와 같은 두 음절을 말하고, 이후 ‘엄마, 암’ ,‘엄마, 물’ 과 같은 문장을 만들어 나간다.
나는 이렇게 일본어를 배웠다.
들은 단어를 받아쓰고 뜻을 찾아본 후, 입으로 뱉어보면서 단어를 익혔다.
들어서 이해한 단어는 완전히 내 것이 되는 경험을 이때 알았다.
수업 시간에 들리는 단어는 다 받아 적었다.
일본어로 안 옮겨지는 것은 한글로 썼다.
집에 와서 사전을 찾아보고 단어를 외워 나갔다.
수업 중 받아 적은 단어나 문장 중에는 사전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 반 이상 넘었다.
그래도 이렇게 익힌 단어와 문장은 절대 잊어 버려지지 않았다.
‘들어서 이해한 단어’는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학원에서 4개월 정도 다녔고 이 과정에서 귀가 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