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 고관절 Dec 28. 2020

집으로 찾아왔어, 바이러스가.

(4) 로봇의 시대가 앞당겨질까

뒤늦게 영화 <컨테이젼>을 봤다. 신종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수천만명의 인구가 사망한다는 섬뜩한 가정을 최초 질환자의 발병으로부터 시간순으로 잘 풀어낸 이 영화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존재가 이 세상에 알려지기 수 년전, 2020년을 뒤덮은 신종 바이러스의 공격을 정확하게 예측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만들었을 이 촘촘한 시나리오는, 백신이 이 땅에 도착하기도 전 감염돼 온 몸으로 이런 저런 증세를 경험하고 있는 나에게 아주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호흡기와 매개체를 통한 전염

영화가 초반에 주목하는 부분은 바로 매개체 전염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올 한해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던 타인과의 접촉은 전염의 직접적 통로다. 물컵과 엘리베이터 버튼, 핸드폰, ATM 기기 등 바이러스가 수시간에서 수일간 위력을 떨칠 수 있는 물체(의 표면) 역시 바이러스를 옮기는 통로가 된다. 코로나19로 우리가 여러번 학습하고 경계해온 부분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나 역시 최초 증상이 발현되기 전을 떠올려보면, 감염된 사실을 모르는 타인(하지만 이미 감염된)이 사용한 조리기구와 문고리, 식탁과 텔레비전 등 집 안 곳곳을 만졌다. 집 밖에서는 바짝 긴장해서 새니타이저를 손에 연신 발랐고 화장실에서는 항상 손을 30초 이상 씻었으며, 문고리 역시 휴지를 이용해 잡아 여는 매뉴얼대로 행동했지만, 집이라는 이유로 이런 과정을 모두 생략했다. 거기다가 가족과 다름없이, 매일 보는 사이의 베이비시터라는 이유로, 그에게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지 않았다. 이건 뭐, 그냥 코로나19 바이러스에게 날 잡아 잡수시오하고 무방비로 있었던 것과 다름없다. 그리고 바이러스는 아주 영리하게도 그 빈틈을 잘 공략해 최소 우리 가족 3명을 감염시켰다. 재생산을 기가막히게 성공적으로 해낸 셈이다.




영화는 마지막에 최초 환자(기네스 펠트로 분)가 어디서 감염되었는지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를 보여준다.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포크레인으로 밀어버리는 장면, 바나나 나무에 매달려있던 박쥐가 근처 돼지 농장에 배설물을 떨어뜨리고 돼지가 그걸 먹는 장면, 그 돼지를 맨손으로 요리하던 요리사가 기네스펠트로와 손을 잡고 사진을 찍는 장면. 야생박쥐가 가축인 돼지로, 다시 사람으로 바이러스를 옮기는 과정을 아주 명료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코로나19 역시 중국 우한에서 시작되면서 전 세계로 퍼졌는데, 그 시작은 야생동물을 도축해 조리하는 수산시장으로 알려져있다. 사스나 신종플루, 조류독감 등 다양한 전염병들이 그랬듯, 코로나19도 인류가 미처 면역을 획득하지 못한 바이러스를 품고 있던 야생동물을 통해 '어딘가'에 있다가 '우연한' 경로로 인류라는 다른 종에게 넘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를 쓴 네이선 울프는 그의 책에 이렇게 적었다. "농업의 도래와 동물의 가축화로 병우너균에게는 우리 조상을 공격할 세 가지 통로가 확보됐다"라고. 가축화된 동물들과 밀접하게 접촉하며 돼지나 닭 등과 긴밀하게 저복하면서 그 동물들이 갖고있는 병원균이 우리에게 건너오게 되었다. 그 다음은 가축화된 동물이 다시 야생동물들과 접촉하며 박쥐나 천신갑 같은 동물들에겐 큰 피해를 끼치지 않지만, 인류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는 병원균이 퍼질 통로가 만들어졌다. 마지막으로 네이선 울프는 인류가 농경 이후 모여사는 삶을 선택하면서 바이러스와 같은 병원균이 도시와 도시, 나라와 나라를 넘나들 수 있는 토대가 갖춰졌다고 설명했다. 올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네이선 울프는 사스와 신종플루, 코로나19 등으로 이어지는 바이러스 집단감염은 현대 인류의 삶이 만들어낸 토양 아래 언제든 또 겪을 수 있는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나 역시 이에 격하게 동의하는 바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될까


솔직히 내 한 몸의 감염 차단도 제대로 하지 못한 주제에, 인류의 미래를 거창하게 예측할 능력은 없다. 다만 코로나19에 따른 격리를 경험하면서 나는 AC(After Corona)라고 말하는 가까운 미래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됐다. 앞으로의 삶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는, 의도적인 관계 차단이다. 자 나는 미래학자는 아니니 내 이야기를 한번 해보겠다.


00구 000번 확진자인 나는 베이비시터라는 누군가의 손을 빌려 해결했던 육아와 가사 노동을 앞으로 스스로 해결할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백신을 대다수가 맞는 어느 시점까지 말이다. 감염은 가능성의 문제이므로, 최대한 나는 그 가능성을 줄이려 노력할 것 같다. 그렇다면 워킹맘인 내가 일가정 양립을 위해 택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갑작스러운 이런 전개, 당혹스럽지만)


-일을 그만둘 것인가? ... 이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나는 차마 그렇게까지 할 용기는 없다. 백신이 나에게까지 배부될 1년을 어떻게든 버텨보겠다는 것이 나의 선택이다. 무모해보이지만 밥벌이는 생존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몇몇 통계에서 나왔듯, 많은 여성 양육자들은 코로나19를 겪으며 자발적으로든, 타의에 의해서든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돌봄에 대한 압박이 여성을 향하는 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노구의 부모에게 아이를 맡긴다? 매일은 아마 안될 것 이다. 이게 되었다면 애초에 나는 시터를 쓰지 않았다. 아니 그런가? 친정이나 시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워킹맘은 복이 많은 사람들이다. 나는, 그렇지 못하다.  


-또 다른 베이비시터를 다시 고용하는가? 아니.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내가 의료기관도 아닌데 음성 검사를 받은 확인증을 가져오라는 진상을 피울 수는 없다. 현재의 시터는 이번 일로 신뢰관계가 완전히 깨져버린 상황이기에 고용을 유지할 생각은 없다...........(나는 부끄럽게도 이런 인간이다.)


-보육기관은 대안이 될 수 있나? 그나마 서울시 산하 보육기관은 의무적으로 11월 대유행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종사자들의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실시했다. 선생님들은 최소한 내가 확진받은 시점에서는 음성이었다. 물론 앞날은 나도 그들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언제든 공권력이 진단검사를 명령할 수 있는 기관에 아이를 맡길 수밖에 없다. 그게 그나마 믿을만하고 안전한 방법이니까. 그렇다면 기관을 풀로 돌리고 나머지는 내가 땜빵을 한다. 정 안되면 재택하며 애 둘과 일을 한다(상상만으로도 식은땀이 나지만....아픈것보다는 나으니까...)




아무튼 격리된 방에서 매일 이런저런 고민을 거듭하다 나온 결론은 다음과 같다.

재택근무로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이 세상은 더욱 뚜렷하게 나뉠 것이다. 거칠게 보자면 말이다. 이전에도 우리 사회에는 그들을 나누는 선은 있었지만 코로나사태가 장기화 될 수록, 이 양극화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소득격차, 교육격차, 주거와 삶의 질 격차 등 모든 것은 코로나19로 더욱 골이 깊어질 것 같다.(이 양극화에 기름을 붓는 결정은 아마도 3단계 격상일 듯하다. 따라서 정부는 격상을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정책결정권자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한 집에 머물며 출근여부를 조절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가족이 아닌 타인을 되도록 만나지 않으려 할 경향이 높다. 친인척은 만날지라도 가사나 육아 도우미를 끊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 대신 뭐라도 도움을 받아야 한다며 식기세척기와 로봇 청소기, 각종 위생과 소독을 지원하는 가전을 사들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올 한해 가전회사들의 실적이 역대급으로 나오지 않았는가? 상반기 대구와 경북지역에서 줬던 신호보다, 현재 서울 수도권이 겪는 유행의 폭이 넓고 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런 이유 때문에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가전회사들은 아주 잘 될 것같다. 비단 이 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다같이 겪는 변화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결합된다면 사람이 아닌 기계에 의존하고, 그걸 통해 안전한 삶을 누리려는 특정 계층의 욕구는 앞으로 더욱 강렬해질 것이다. 비인간적이고 매몰차며, 전 사회를 고려하기보다는 내 가족만 위하는 이런 선택은, 슬프지만 한동안 아주, 아주, 강력하게 사람들을 휘어잡을 거라 본다.



너무 비관적인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온 몸으로 겪고(아직 ing이지만), 나보다 더 안전하길 바라는 아이의 확진판정을 받아 오열했던 한 사람이기에 진심을 담아 말할 수 있다. 분명 세상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암울하게 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더 나빠지기 전에 이 유행의 파도를 막아내야 한다고 말이다. 아이들이 마스크 없이 학교나 어린이집에 갈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아파트 단지 놀이터가 아이들의 웃음으로 다시 가득찼으면. 그리고 언젠가 다시 우리를 닥칠 또 다른 바이러스에 막아낼 능력을 인류가 미리 손에 쥐고 있기를.

작가의 이전글 집으로 찾아왔어, 바이러스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