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는 죽도록 싫어하지만, 여름 더위는 낭만이라고 즐긴다.
칼같이 서늘한 겨울바람은 살기가 느껴져 마음도 함께 헐거워진다. 잔뜩 움츠러드는 모양새며, 기분 나쁜 정전기는 상대방과의 거리를 불안하게 한다. 겨울옷이 아무리 예쁘다고 한들 롱패딩으로 감싸고 나면 김밥 한 줄 그만이고, 아무리 춥다고 한들 수면바지나 스키바지를 입고 다닐 순 없으니. 나 같은 ‘추위 싫어’ 인간에게는 무지 혹독한 계절이다.
여름의 더위도 무섭지만, 겨울의 더위는 무겁다. 특히 지하철 안이라면 더 그렇다. 옷 속에서 점점 진득하게 달라붙어가는 살결. 얼굴은 추운데 몸은 뜨겁고, 벗을 수도 없을 만큼 사람이 많을 때. 더워서 잔뜩 예민해진 두피를 긁어본다. 잔뜩 열불 난 얼굴로.
여러 이유로 크리스마스와 생일만 기다리며 겨울을 버티고, 여름만을 훔쳐보는 사람이 됐다. 이 마음은 채 다가오지 않은 것을 미리 살피는 성질을 지녔다. 잘 익은 토마토, 초록, 햇볕, 자전거, 돗자리에서 즐기는 독서… 많은 이유로 여름을 흠모하지만, 그중 제일은 덜 말린 머리카락을 여름바람에 말려주는 산책을 하는 것. 여름의 푸른 향과 섞이는 샴푸 냄새, 약간 젖어있는 몸, 가벼운 옷까지. 그러다 보면 뛰노는 여린 생각이 폴폴 날아가는 감각을 느낀다. 유독 우울하거나, 초라해 보이는 자신을 묵도하는 날의 최후 보루. 그래서 일부러 아끼고 아끼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역이 돼서, 바깥으로 나가고 또 나간다. 여름엔 드라이기가 필요 없다. 어떤 부정적인 것도 낭만으로 치환되는 계절, 나의 여름.
…
죽어가는 나를 본다면 머리를 감겨주렴
그럼 머리카락 끝에 새 풀잎이 돋아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