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단골집
개신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역마살이 껴있다는 토속신앙에는 일부 동의를 하는 편이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집에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익숙한 환경보다 낯선 곳에서 환기가 되는 편이라 늘 바깥으로 나다니곤 한다. 초반에는 돈도 없는 애가 뭘 그렇게 밖으로 쏘아 다니냐던 엄마도, 지금은 주기적으로 외출하라고 권장한다. 집에 있으면 한없이 늘어지고 울적해지는 탓이다. 아직 내게 집은 '쉼의 공간'이지, 생산적으로 뭔가를 하는 곳은 아니다. 또 밖에 나가더라도 한 곳만 다니는 게 아니라 방방곡곡을 돌아다닌다. 새로운 동네를 찾아 즐기다 돌아오고, 다음날 또 다른 동네를 찾아가 보고 하는 식이다. 그래서인지 여행도 이미 다녀온 곳을 또 가기보다는, 안 가본 모든 곳을 정복하겠다! 하는 욕심이 있다. 낯설고 새롭고 어색한 걸 좋아하는 성정을 지녔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단골집은 있다. 식탐은 많지만 미식가는 아닌지라 식당은 가던 곳을 자주 찾는 편인데, 서촌의 S 치킨집과 J 주점이 그렇다. 김광석의 노래가 주제가로 나오는 S 치킨집은 치킨 반죽이 얇고 맛이 담백해서 끝까지 느끼하지 않다. 게다가 생맥주는 또 얼마나 시원한지. 건강식을 시작하기 전 마지막으로 서윤과 그곳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앞으로 당분간 먹을 수 없겠지......' 하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더랬다. J 주점의 주력 메뉴는 소스를 얇게 펴 바른 순살치킨과 어묵탕. 여름에 야외 테이블에서 소주와 함께 먹는 어묵탕이 얼마나 맛있는지는 가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특권이다. 미식과 서윤과 식탐가 나에게 공통적인 취향은 '알던 맛이 무섭다'여서, 가던 곳을 또 가는 우리에게 두 식당은 가히 단골이라 부를 만하다.
카페는 조금 다르다. 역시 커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없고 좋은 공간을 대여한다는 취지에서 애용하기에, 반대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늘 새로운 곳을 찾아다닌다. 마침 내가 사는 왕십리는 서울의 어디를 가더라도 지하철로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기 때문에, 오늘은 종로구였다면 내일은 서대문구, 모레는 관악구 하며 떠도는 식이다. 적당한 거리감과 소음 속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시간을 사랑해서다. 맛집보다도 좋은 카페에 진심인지라 마음에 꼭 들어맞아 자주 찾는 카페는 (여행 간 지역을 제외하고는) 단 한 곳이다. 집 앞 3분 거리에 있는 D 카페다. 방명록이 90년도부터 시작되는 오래된 카페인 이곳은 낮은 조도와 책으로 둘러싸여 마치 요새 같은 분위기다. 첫 방문에 시집을 들고 갔었는데, 평일 오후의 해가 살며시 들어오는 편한 좌석에서 읽는 시는 정말이지 맛깔났다. 여기에 버터와 딸기잼이 올라간 스콘을 한 입 하면 그날의 행복은 온통 내 차지가 된다. 사장님이 가끔 폴라로이드나 디카로 사진을 찍어주시는 것 또한 D 카페만의 매력이다. 흥미로운 건 수십 번을 찾아갔음에도 나를 단골로 취급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초반에는 '아직도 나를 모르시나......' 하고 내심 서운했는데, 지금은 그래서 부담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이곳을 '나만의 아지트'라고 부른다.
살다 보니 단골집이 생긴다는 건 참 벅찬 일이다. 같은 풍경을 기대하게 된다는 뜻이니까. 늘 몰랐던 골목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풍경을 건져오는 나에게 '늘 정하여 놓고 거래를 하는 곳*'은 놀랍고도 특별하다. 이곳저곳 나다니면서도 믿을 구석 가지고 있는 스스로가 좋은 건 아마도 단골집들 덕분일 것이다. 20년이 지나도 같은 곳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방명록을 쓸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오늘도, 다시 그곳으로 향하는 것이다.
*네이버 사전, '단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