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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안의 세계

by 이윤서

어릴 적 가장 무서운 건 내 손바닥을 보는 일이었다. 잠에 들기 전이나 학원 숙제를 할 때, 재밌게 노는 중에도 문득 가까이서 오-래. 통통한 손바닥 안에는 여러 갈래로 가지치기 한 손금이 들어있었다. 짧게는 5초부터 길게는 1분까지 멍한 표정으로 손금과 그걸 이루는 손바닥을 구경했다. 그리고는 내가 사는 지금이 거대한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사랑하는 엄마아빠, 늘 함께 자는 젖소 인형, 함께 노는 친구들까지 전부 가짜라는 마음이 들면 불현듯 무서워졌다. 손바닥을 보고 무서운 생각이 들면 방 구조를 휙 둘러보았다. 이건 정사각형 속에 살아가는 나의 꿈이구나. 그럴 때면 등골이 서늘해져 엄마를 보러 달려갔다. 엄마에게는 귀신 생각이 났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모든 것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고 감각해야 불안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손바닥은 늘 몸에 붙어 있어서, 손금을 보며 꿈같은 현실에 사는 버릇이 들었다. 그러니까 곧 모든 게 사라지고 결국엔 혼자만 남으리라는 상상. 크다 보니 그런 상상은 짜릿하기도 했고, 진짜를 무력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 지옥 같은 슬픔도 다 꿈이다. 버티자. 혹은. 현실감 없는 사건을 몽상이라고도 여기며 피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꽤 소설적인 발상이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습관이 없어졌다. 불안하면 손톱 거스러미를 뜯는 버릇이 있긴 했지만, 손바닥을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현실이 현실이지. 하고 생각하던 게 아닐까 싶다. 모든 일이 정신없이 흘러갔고, 손바닥을 보면서 불안에 떨기엔 나이가 너무 차버렸다.


손바닥을 보면 펼쳐지던 세계. 그걸 다시 떠올린 건 얼마 전 독서모임에서였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공평함이 얼마나 무서운 기준인지, 문명이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폭력에 밀어 넣을 수 있는지 등을 이야기하던 중에 모임원 M이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다들 '이게 현실이구나'를 실감하게 되는 때가 언제예요?" 늘 현재를 살자고 제창하던 나에게는 현재가 아닌 게 무엇인지를 돌아봐야 했고, 그러다가 나온 이야기가 손바닥이었던 것이다. "저는 어릴 때 손바닥을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지금 내가 크고 오랜 꿈 안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 생각을 자주 했어요. 비현실을 감각할 때 반대로 가장 현실적인 걸 떠올리는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 답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손바닥에 잠겨 또 어떤 생각을 했을까. 손바닥 안에서 모든 세계가 굴러간다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북적이는 시장도, 물장구치던 바다도, 달리는 승합차도 모두 내 손안에 있는 거지. 그럼 바깥에서 손금을 구경하는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모든 걸 손 안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정작 자기 자리는 찾지 못한 불쌍한 신이 되어버린 기분이었을 것 같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 시절 내 모든 상상은 손바닥 속 자잘한 실금과 그것에 빨려 들어가던 눈에서 시작됐던 것이다.


한 세기가 지나 다시 내 손바닥을 그때처럼 가깝고도 천천히 바라본다. 그 시절 나의 전부였던 작은 손과 작은 가지의 손금. 초현실적인 풍경에서 나온 엉뚱하고도 심오하던 그때가 있어서 지금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은 훨씬 커진 손으로 페이지를 접고 두 손바닥 만한 글을 쓴다. 초현실적인 힘으로 가장 자주, 오래 바라본 그것이 지금은 '사랑의 마음'이었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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