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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추락사

by 이윤서

안 쓸수록 더뎌진다는 걸 알면서도 오랫동안 글에 손을 뗐다. 적을 수 있는 거라곤 일기 정도였다. 열정을 가지던 일에 '무의미'라는 마음이 쌓이면서 이전 목표는 보이지 않게 덮였다. 이별 이후로부터 전 애인에 관한 글만 쓰게 됐고, 그런 글이라면 쓰기도 내보이기도 싫었다. 쓰고 싶게 만드는 사람도, 이별도 아니었다. 사랑에 관한 수많은 의심을 품은 채 몇 개월을 험한 숲 한가운데 있었다. 한 사랑이 무너지고, 많은 우정과 애정과 사랑을 다시 두들겨보아야 했다. 영원, 지속, 믿음, 노력. 그런 언어가 푹 삭아 바닥으로 떨어졌다. 터지고, 바스러지고, 누군가의 신발 밑으로 사라졌다. 사랑이 빠져나간 자리엔 의심만 커져서, 다만 그것은 떨어지지도 않고 위태롭게 뚱뚱해져만 가서, 주변 사람들의 진심을 곡해하기도 했다. 지독하고 비열하고 치사한 마음이 사랑하고 애정하고 고마워하던 마음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사랑 없는 삶에 긴 몸살을 겪기도 했다. 잠을 자고, 악몽을 꾸고, 어슴푸레한 기억을 더듬으며 몇 줄을 남기고, 또다시 악몽으로 빠졌다. 한순간에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된 남을 꿈에 등장시키지 않으려고 벌벌 떨며 예능을 틀어두고 잤다. 사적/공적 공간 모두에 사랑을 소멸시키기 위해 열심이었다.


깊게 각인된 가을이 지나고, 해를 넘긴 겨울이다. 이제는 상대의 말에 3할 정도의 진심을 느끼고, 으스러지게 안기는 일에 감사를 전하고, 사랑의 문장을 피하지 않는다. 그리고 감히 같은 기도를 시작해 본다. "사랑을 포기하지 않도록 해 주세요. 지치지 않도록 차가워지지 않도록 해 주세요."*


타이머를 켜고 사랑으로 돌진한다. 가장 사랑했던 문장과 문장, 단어와 단어, 그리고 그걸 적는 찰나와 찰나 사이로.






* 김연덕, <액체 상태의 사랑> 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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