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7일 수요일 제주살이 17일 차. 화순금모래해수욕장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오늘은 제주올레 10코스로 화순금모래해수욕장에서 대정읍 화모체육공원까지로 15.8킬로였다.
9시경 도착한 화순금모래해수욕장에서 우리는 각종텐트를 비롯하여 다양한 캠핑카를 구경하였다.고급캠핑카를 부러워하며 왼쪽으로 조금 걷다 보니 썩은 다리 탐방로가 나왔다. 썩은 다리는 일명 사근이동산이라 부르기도 한다.신비로운 수성화산체로 오랜 시간 동안 파도에 침식되어 일부만 남은 화산이다.썩은 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썩은 다리는 야트막한 오름이지만남쪽절벽에는 황갈색 퇴적암층으로 형성된 절벽이 감탄을 자아냈다.퇴적암이 오랜 시간 풍화되어노란색으로 변한 것이 마치돌이 썩어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하였다. 오름아래로 내려가니 황우치해변 오른쪽으로 거대한
산방산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안산암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종상화산이리고 하였다. 제주를 홍보하는 사진에서 자주 보아온 실물을 바로 눈앞에서 보다니 이 거대한 화산활동 결과물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싶었다. 커피를 무지하게 좋아하는 남편과 조금 쉬고 싶은 나의 의견이 일치해서 산방산 아래 고급스러운 외형을 지닌 카페에서 우리는 각자의 마실거리를 앞에 두고 거만스러운 포즈를 잡고 앉았다. 뒤에는 산방산이요, 앞에는 거대한 바다가 넘실대고 있던 그 장면을 지금 이 순간 떠올려보니 아마도 그런 것을 누리는 것이 휠링이라 하고 싶다.다시 해변가를 걷다 보니
산방연대로 올라갔다. 횃불과 연기로 소통하던 통신수단으로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저 멀리까지의 경관이 다 보였다. 내려오다보니 하멜표류기탑도 보였다.멀리 사람들이 줄지어가는 것이 보여서 궁금했다. 바로 용머리해안이었다. 오랜 시간 퇴적되어 형성된 모습이 하늘에서나 멀리에서나 바라본 모습이 용머리를 닮았다고 하였다. 자연의 요술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엄청난 사람들로 붐벼서 바로 옆에서 부서지는 파도에 위험까지 느낄 정도였다. 구석구석 살펴보며 사진을 찍고 다시 걸음을 재촉하니 사계포구가 나왔다. 우리는 바닷가 바위에 걸터앉아 준비해 간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가 넘었다. 걷다가 주변 식당에 들러서 먹으면 되는데 메뉴가 거의 갈치나 돼지고기를 사용한 것이라서 땡기지 않을 뿐아니라 평소에 둘 다 외식 입맛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힘을 얻어 걸으니 사계해안에서 사람이나 새의 발자국이 남은 화석이 발견되어 문화재로 지정되어 출입금지가 되었다. 아쉬웠지만 도로옆으로 걷다 보니 약간의 화석을 보관해 둔 곳에서 구경했지만 우리 육안으로는 뭐지? 공부가 안되었다.
다시 오솔길로 걷다 보니 송악산이 나왔다. 보통 올레길을 걷다 보면 바로 눈앞에 보이던 목적지도 빙빙 둘러서 구석구석 탐방하게 되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송악산 올레길은 그야말로 우스갯소리로 속았다. 오늘따라 송악산 올레길은 무슨 축제가 있었는지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있었다. 관광차도 수십대가 넘었다. 산입구 아래에는 2차 대전때 일본군들이 파놓은 진지동굴이 수십 개 보였다. 입구부터 가파른 언덕길을 헉헉거리며 오르면서 눈을 사방팔방으로 돌리니 바로 옆에 앉아있는 수려한 산방산, 멀리 보이는 마라도와 가파도, 바로 눈앞에 누운 형제섬이 보였고 분화구에는 다양한 연초록의 식물들이 곱기만 했다. 그 멋진 장면들이 있었건만 수많은 계단으로 인하여 나는 은근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있는 그대로 길손들이 걷도록 두었으면 오히려 좋았겠다 싶은데 그 많은 계단이 사람을 압도하여 피로감이 너무나 크게 왔었다. 힘들게 올라서 내려왔더니 어허, 이게 뭔 일인가? 우리가 애써 오르던 입구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야말로 빙빙 돌아 다시 원점으로 회귀한 것이다. 속았다 싶은 것이다. 그냥 웃고 말았다. 그래서 올레길이기 때문이다. 내리막길은 식은 죽 먹기라며 씩씩하게 내려오니 야트마한
셋알오름이 나타나고 4.3 평화공원이 있었다. 그 옆으로 엄청난 크기의 평원이 나타났다. 2차 대전때 일본이 사용하던 마을아래 너른 벌판이란 뜻의 알뜨르 비행장 활주로를 비롯하여 격납고, 관제탑등의 흔적이 있었다. 이 잔재물들 앞에서 남은 후손들이 할 일이 없었다. 거대한 감자밭, 양배추밭을 지나니 하모해수욕장이 니타 났다. 거의 다 왔나 싶어서 발걸음이 가벼워졌지만 동네로 방향이 다시 바뀐 시그널은 계속 이어져 다시 몸이 묵직해지고 축 늘어졌다. 머리로 느낀 숫자거리가 실제 거리하고는 왜 그리 격차가 심했을까? 모슬포라고도 하는 대정읍 하모체육공원 종점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넘었다. 올레지원센터에서 안내자가 나와 고생했다며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오늘 또 해냈구나! 하는 성취감으로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스탬프를 찍고 기념품으로 올레 스카프를 하나 샀다. 생각보다 여러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진 읍내였다. 커다란 마트에서 장을 보고 택시를 타고 다시 우리 차로 오는데 기사님이 정치 이야기를 많이 하셨지만 우리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너무 피곤했기 때문이다. 거의 1시간 넘는 시간을 달려서 숙소로 오니 그 시간이 또 아깝다. 그래서 다음은 숙소에서 가까운 코스를 역으로 걷자고 하였다. 제주도를 반으로 나누어 보름씩 숙소를 잡는 게 맞는 것 같다. 우리는 서로 수고했다고 칭찬하며 차돌박이김치찌개로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오늘 하루 정리에 들어갔다. 나 자신과 그리고 함께 걷는 남편에게 뿌듯함과더불어 항상 건강하기를 빈다.